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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May 13. 2020

세계를 들어 올린 장미란

“언니, 저 욕도 해요.”

 야구를 1도 모르던 체육부 기자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신문의 초판 마감은 오후 4시인데 야구는 6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멀리 지방으로 가는 신문을 위해 판 갈이용 인터뷰 기사를 쓰곤 했다. 당시 두산의 이종욱(도루왕), 고영민(고젯트) 등 몸을 아끼지 않고 뛰는 선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SK 정근우 선수는 부산 출신인데 롯데에 입단하지 못해 SK 유니폼을 입고 부산 사직구장에 처음 섰을 땐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팬이었던 롯데를 상대로 경기하는 게 심적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정근우 선수는 키가 너무 작아 당시 현역 프로 선수 가운데 가장 긴 방망이를 쓰고 있었다. 롯데 이대호 선수는 SK 원정경기 때 간석오거리의 한 식당에서 만났는데 “기자님, 술 좀 하시냐”며 갑자기 맥주잔에 소주를 부어 마시기에 “앗, 저는 사이다...”를 외쳤던 기억도 난다.     


 KBO 기자 신분증을 목에 걸고 처음 잠실구장에 가던 날. 내 눈엔 야구 티켓을 돈 주고 사서 경기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모두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보였었다. ‘아니, 야구가 뭐가 재미있다고 이걸 돈 주고 보러 와. 나야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왔지만.’  그런데 야구 선수를 한 명 씩 알아갈 때마다 조금씩 야구에 눈을 뜨게 됐고, 시간이 지나니 야구가 왜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됐다. 9회 말 2 아웃까지 정신만 바짝 차리면 역전의 드라마가 펼쳐질 수 있는 게 야구판이고, 그런 야구가 점점 더 좋아졌다.     


 야구를 좋아하게 되다 보니 선수별 징크스를 찾아보는 것도 재밌었다. 어떤 타자는 어떤 투수를 만날 때 삼진아웃을 많이 당하고, 비 오는 날엔 홈런을 때려 맞는 투수, 어웨이 경기에서 어떤 팀만 만나면 기를 못 펴는 4번 타자 등 데이터로 보는 야구도 신기했다.     


 날씨 변화에 둔감했던 나는 야구를 담당하면서 일기예보를 챙겨봤다. 비가 오면 경기가 취소되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하릴없이 앉아있는 것보단 다른 기획 아이템을 찾으러 나가야 했다.

주 종목이 야구인데, 야구를 안 하면 어디에 가서 기사 거리를 찾는담..              


어느 날 한 선배가 물었다.


“장미란 알아? 역도 장미란?”     


이름은 알지만 내가 그 선수를 알 턱이 있나.      

선배는 내게 장미란 선수를 만나보라고 했다. 장미란 선수가 모든 언론과의 인터뷰는 거부하고 태릉선수촌에서 훈련만 한다며, 장미란을 만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때부터다. 비 오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전철역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태릉선수촌에 갔다.

5호선 서대문역에서 6호선으로 갈아타고 지하철 노선이 끝나갈 때쯤 내려 202번 버스를 타면 태릉선수촌 입구에 내렸다.      

당시 태릉 선수촌장은 사라예보의 전설 이 에리사 전 국회의원이 맡고 있었다. 이 촌장님은 기자들의 취재 활동이 선수들의 훈련에 방해가 될 수 있다며 종목별 태릉선수촌 출입 카드를 제한했다. 예를 들어 탁구 취재를 온 기자는 탁구선수들이 있는 체육관만 출입할 수 있는 카드를 받았다.  하지만 촌장실 출입 카드는 프리패스였다.


-“선수촌장님 뵈러 왔습니다.”

-“약속은 하셨나요?”

-“아니요. 아무개 기자인데요, 잠깐 뵙고 갈게요.”     


이른 아침 기자가 용건 없이 태릉을 방문하는 일은 흔치 않았을 것이다. 이 촌장님은 항상 따뜻하게 맞아줬다.      

-“아니 미리 연락을 하고 오시지.”

-“예, 갑자기 생각난 김에 뵈러 왔어요.”     


촌장님은 태릉선수촌의 근황을 브리핑하듯 설명해주셨다.      


-“여기 멀리까지 오셨는데, 점심은 드시고 가셔야죠. 뭐 드시고 싶으세요?. 가까운데 나가서 맛있는 거 드시죠.”

-“아, 예. 태릉선수촌 선수 식당 밥이 그렇게 맛있다면서요. 촌장님, 저는 식당 밥이 먹고 싶습니다.”     


천하의 장미란 선수도 밥은 먹겠지. 처음 만나면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나. 어떤 표정이 좋을까? 촌장님께 ‘장미란 선수 보고 싶어서 왔어요’라고 말도 못 하고. ‘식당 밥이 맛있다면서요’라고 했는데...     

태릉선수촌 식당에 들어서자 TV로만 보던 국가대표 선수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보였다. 선수 식당은 마치 유명 호텔 뷔페처럼 해산물, 스테이크 등 정말 없는 게 없었다.      


-“임 기자님, 뭐 좋아하세요?”      


촌장님은 내게 맛난 음식들을 권해주시는데 나는 ‘장미란 선수 어디 있나’ 주변을 두리번.

아무리 찾아도 안보이길래 체념하고 촌장님과 나란히 자리에 앉는데 어디선가

중저음의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촌장님, 식사 맛있게 하세요.”

-“미란아, 밥 맛있게 먹었니? 컨디션은? 인사해. 여기 *** 기자님이셔.”     


나는 속마음을 들킨 어린아이 마냥 부끄러웠다. 수줍게 “안녕하세요” 한 마디만 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때부터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태릉에 갔다. 촌장님과 나란히 식판을 들고 밥을 먹으면 장미란 선수는 늘 다가와서 먼저 인사를 했다. 물론 나는 투명인간이나 다름없었고, 촌장님과 장미란 선수의 대화가 이어졌다. 하루는 장 선수가 훈련하다 허리를 삐끗한 이야기를 했고, 촌장님은 걱정을 많이 하셨다. 나도 마음이 쓰였다. 중요 대회를 앞두고 부상이라니, 본인은 얼마나 힘들까.. 오랜 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지만 기사는 쓰지 않았다. 그게 장미란 선수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기사 한 줄에 선수들 멘탈이 영향을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202번 버스를 타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엔 항상 문자를 남겼다.

‘장미란 선수. *** 기자예요. 오늘 반가웠어요.’

늘 답장은 없었다.     


그해 가을, 장미란 선수가 태국 치앙마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연패 기록을 달성하고 한국에 왔다. 역도 대표팀 감독은 담당 기자들을 태릉으로 초대했다. 장미란 선수가 짧게 코멘트를 하고 체육관을 나서는데 갑자기 나를 보며 말을 걸었다.     


-“기자님!”

-“저..저요?”

-“네, 기자님. 저 좀 잠깐 봐요.”     

장미란 선수는 여자 기숙사 앞 벤치로 나를 인도했다.      

-“앉으세요. 기자님. 저 솔직히 기자님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저 사람은 뭐가 궁금한데 맨날 태릉에 오나.. 근데 기자님을 계속 보니까 이상한 사람은 아닌 거 같아요.”

-“......”

-“저, 사실 기자들을 정말 싫어합니다. 제가 원주에서 고양시로 팀을 이적할 때,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는 한 방송사 기자님이 원주까지 찾아왔어요. 저는 수업 중인데 저희 엄마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서 녹음을 하신 거예요. 저보고 팀 옮기냐며. 아니라고 했더니. 어느 팀에 있든 운동은 열심히 하셔야죠?라고 묻길래, 당연히 열심히 해야죠. 라고 답한 걸 ‘장미란 고양시청 이적. 당연히 열심히 해야죠’라고 목소리 편집해서 보도하더라고요. 그때 기자들에 대한 불신이 생겼어요.”

-“아.. 장 선수 마음 이해해요. 내가 대신 사과할게요. 그건 기자가 잘못한 거예요. 저는 그런 기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게요.”     


그 해 크리스마스는  ‘이 에리사 촌장님과 장미란 선수, 나’ 이렇게 셋이 태릉에서 함께 보냈다. 장 선수는 책을 많이 읽어 아는 것도 많았고,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반전 매력은 유머 감각.

    

-“제가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땐 사람들이 제가 역도하는 것을 아는 게 부끄러웠어요. 여자가 역도한다고 하면 좀... 한 동안 운동하는 사실을 주변에 숨겼는데. 어느 날은 교회에 친한 언니에게 말해야겠다 싶어서 큰마음을 먹고 고백할 게 있다며 운동한다고 말을 했어요. 저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푹 쑥이고 있는데. 이 언니가 제 등을 토닥이면서 계속 괜찮다는 거예요. 그래서 얼굴을 들고 ‘뭐가 괜찮냐’고 물으니, 이 언니가 하는 말이 뭔 줄 아세요? 나도 욕도 해.... 제가 ‘언니, 저 욕도 해요’라고 말한 줄 알았던 거예요.”     


장미란 선수와의 인연은 내가 사회부로 간 후에도 계속됐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세계를 들어 올리던 그 순간. 손에 땀을 쥐며 경기를 봤는데, 폐막식도 전에 전화벨이 울렸다. 장미란 선수였다. 대회 일정이 앞에 있던 선수들은 조용히 먼저 귀국했다는 것이다. 근데 기사는 나면 안 되기 때문에 외출은 자제한다며 내가 살고 있던 오피스텔로 찾아왔다. 베이징올림픽 기념품과 주화 등을 챙겨 왔다면서 꼭 주고 싶어서 왔다고... 집에 먹을 게 없어 둘이 오피스텔 1층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내가 “미란아, 먹고 싶은 거 다 골라. 맘껏 골라.”라고 했더니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눈이 동그래지면서 “장미란 선수 아니세요?...”     


2008년 가을, 그리고 2009년 가을엔 장미란 선수도 나와 함께 야구에 푹 빠져 한국시리즈를 직관했다. 장미란 선수와 야구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장미란 선수와의 인연은 이 에리사 의원님이 맺어주신 거나 다름없다. 넓은 선수촌장실을 항상 선수들에게 개방하면서 “훗날 이 자리가 너희들 자리가 될 거라”며 앉아보라 하시고, 매의 눈으로 태릉 곳곳을 살피셨던 이 에리사 촌장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인생의 좋은 동생을 하나 얻었습니다!


위 사진은 2008년 10월 30일 장미란, 사재혁 선수와 셋이 몰래 야구경기를 보러갔다가 스포츠 신문에 찍힘...ㅠㅠ 장미란 선수 우측에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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