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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May 10. 2020

현정화, 유남규 그리고 김택수

“내가 지금 여기에 당신 딸 자격으로 서있습니까?”

*우리나라 탁구계의 전설, 현정화 유남규 김택수 감독과의 인연을 소개합니다.     



우리나라 기자는 두 부류로 나뉜다.

공개채용으로 소위 언론고시라 불리는 관문을 통과한 기자와 아닌 기자.

(언론사 규모가 작거나 해외 언론사인 경우는 채용 방식이 조금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기자 공채 모집 인원은 보통 6명 안팎인데 지원자는 수천 명이 몰리니 ‘언론고시’라는 말이 붙을 정도다.

매다 신문, 방송할 것 없이 먼저 공채 공고가 뜨는 곳엔 모든 기자 지망생들이 몰려든다.  1년에 한 번 채용 공고가 뜨거나, 언론사 사정에 따라 채용을 건너뛴 해도 있었다. 그러니 지원자는 많은데 얼마나 기자 되기가 힘들었겠나.      


2006년엔 경향신문 채용공고가 언론사 중 가장 먼저 떴다. 1차 필기시험, 2차 합숙평가, 3차 임원면접을 마지막 최종 합격을 했다. 취재기자 7명 가운데 여기자 4명, 남기자 3명. 여기자 중엔 내가 제일 고령이었다.


2007년 2월.

서울시내 경찰서를 돌면서 취재하는 사회부 경찰팀에서 수습기자 생활을 반년 가까이 마치고 다들 어느 부서를 희망하는지 적어냈는데, 나는 ‘사회부 스테이’를 썼던 것 같다.


하루는 인사 방이 붙기 전  당시 송 아무개 편집국장이 국장실로 불렀다. 06 사번 동기들 중 내가 간사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종종 국장실로 불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묻고, 답해주시곤 했었기 때문에 그날도 그냥 그런 줄 알았다.      


-“임 차장.”

(국장은 수습인 나에게 ‘차장’ 기자 포스가 난다며 항상 '임 차장'이라고 부르셨다.)

-“임 차장, 운동 좋아해?”

-“운동요? 좋아하죠. 잘하는 건 없지만, 좋아해요.”

-“그럼 잘됐네. 임 차장을 체육부로 보낼까 해. 체육부 가면 필력이 많이 늘어. 신문 판이 바뀔 때마다(일명 판갈이) 기사를 계속 새로 써서 보내야 하고, 지면을 한 면 이상 쓰는 경우도 있고. 임 차장한테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사회부에서 탈수습하고 처음 발령받은 출입처는 ‘체육부’     

솔직히 고백을 하자면 언론사 시험 준비를 할 때 두 과목은 아예 포기했었다. 한자와 스포츠.

시사 상식이나 논술 작문, 한국사, 국어 등은 여러 책과 신문을 통해 습득이 가능했지만 스포츠에 대한 이해는.. 정말 좋아하지 않는 이상 나에겐 ‘암기 과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포기했다.     

힘들게 기자가 됐는데 첫인사에 기자를 그만둘 수도 없고..

     


체육부엔  자타공인 최고의 전문 기자 선배들이 계셨다.

내 바로 위에 선배가 나보다 연차가 7년이나 높았고, 부서에 유일한 여기자는 나 하나였다.     

배워야 하는데,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여름과 겨울 스포츠 종목 중 야구, 농구, 축구 등 메이저 종목으로 1,2,3진이 나뉘어있었고

탁구, 역도 같은 종목은 맡은 기자가 거의 차장 데스크께 직접 보고하는 시스템이었다.     

근무 첫날,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시작됐다.

사무실 내 TV 중계 화면을 틀면서 차장 선배가 내게 물었다.


-“야구 룰 좀 알아? 스트라이크와 볼이 뭐야?”     

(...... 정말 야구를 1도 몰랐다. 러시아에 살면서 야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스트라이크는 1점을 얻고, 볼은 못 얻는 거 아닌가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배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심각하네... 자. TV 중계에서 심판 사인을 잘 봐봐. 심판이 볼과 스트라이크 사인을 할 거야.”

-“저.. 근데 심판이 어디 있어요?”

-“심판이 안 보여? 계속 심판이 사인을 하잖아.”

-“제 눈엔 심판이 안 보이는데요.”

-“포수 뒤에 있는 사람이 심판이잖아.”

-“앗. 포수 뒤에 있는 사람, 포수랑 같은 팀 아니었어요? 투수가 뭘 던지는지 알려주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체육부 생활을 시작했다. 야구를 몇 명이 하는지 포지션별 특징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스포츠 기자’라니... 보름 가까이 사무실에서 중계를 보면서 이른바 '땅 표'(야구 기록지)를 작성했다. 룰을 배우고, 경기를 보면서 직구와 체인지가 어떻게 떨어지는지 조금 감이 잡힐 때쯤 잠실구장 취재를 같다.     

내가 맡은 아마추어 종목은 역도, 탁구와 동계 스포츠 피겨스케이팅.     

김포 수리고에 다니는 김연아, 역도 선수 장미란 선수보다 나에겐 탁구 현정화 감독의 이름이 더 크게 다가왔다.      

‘아니, 그 현정화?...’     


탁구도 수십 년째 탁구만 취재한 기자들이 있었다. 사실 전문기자 영역에서 내가 설 자리는 좁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을 하다 나름 답을 찾았다. 그래, 발 품 팔아 현장에 가고, 사람을 좋아하니 사람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 내가 스포츠를 취재하며 할 수 있는 게 그거였다.   




한 번은 탁구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리는 단양군청으로 갔다. 당시 탁구 협회엔 갈등이 있었다. 협회장인 천 아무개 씨가 탁구 용품을 수입하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선수들 가운데 협회장이 운영하는 업체 라켓을 쓰지 않으면 선수들에게 불이익을 줬다. 또 천 회장이 협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탁구협회를 위해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금액도 내지 않는 등 문제가 있었는데 협회 관계자도 취재 기자들도 모두 쉬쉬하던 상황이었다.      

단양군청에서 경기가 한창인데 강단 위에 앉아서 선수들을 보는 협회장 가까이 갔다. 이런저런 문제점에 대해 물었고, 이 부분은 젊은 국가대표팀 감독들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했다. 당시 현정화 유남규 감독이 남녀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었다. 천 회장은 말했다.     


-“다음 달에 국가대표팀 감독을 경질할 겁니다.”

-“현정화 유남규 감독을 동시에 경질하신다고요?”

-“네, 실업팀 감독을 하면서 대표팀도 맡고 있으니 집중하기도 어렵고, 스타플레이어로 쌓은 업적은 인정하지만 지도자로서 자질도 부족하고...”     


갑자기 국가대표팀 감독 경질이라니, 그것도 자신의 비리와 문제에 대해 올바른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감독들을 교체한다?...  현정화 감독, 유남규 감독은 이 사실도 모르고 상비군 선발전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동안 내가 탁구협회 비리에 대해 취재하고 있는 게 분명 협회장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또 내가 천 회장보단 감독들을 더 신뢰하고 있다는 것도 어림짐작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회사에 전화로 보고를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팀 감독을 그것도 둘이나 바꾼다니... 부장은  현정화, 유남규 감독의 입장을 물어보라고 했다.      


단양군청 체육관 밖으로 현 감독을 조용히 불러냈다. 취재 내용과 이를 기사화해야 할 것 같다고 했고. 여기에 대한 현 감독의 입장을 물었다.


현 감독은 조금 놀랐지만 협회장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며 덤덤한 표정이었다.

현 감독은 선수들 경기가 끝나면 군청 앞 사거리 2층 다방에서 보자고 했다.     


1차 가판 기사를 송고하고 약속된 장소에서 현정화 감독을 기다렸다.

다방 문이 열리더니 마치 어벤저스 영화의 히어로들이 등장하듯 현정화, 유남규, 김택수 감독이 동시에 들어와 테이블 앞에 앉았다. 다방 주인은 놀란 눈치였다. 20대 젊은 여자 한 명이 누군가를 기다리더니 갑자기 탁구계 전설의 영웅들이 그것도 셋이나 다방에 온 것 아닌가.     


요는 이렇다. 탁구협회장에겐 자신의 일에 사사건건 문제 제기하는 젊은 세 감독이 눈에 가시였다. 그래서 올림픽을 1년도 안 남긴 시점이 국가대표팀 감독 교체란 초강수를 두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인데, 젊은 감독들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나름 우리 넷은 머리를 맞대고 작은 다방에서 ‘대책회의’ 아닌 대책회의를 했다. 협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누구도 앞에서 얘기하지 않고, 누구도 기사화하지 않았다. 젊은 세 감독은 어떠한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나타냈다.     


대책회의를 마치고 다시 체육관으로 돌아갈 때쯤 인터넷에 가판 기사가 먼저 올라왔다.

나와 현정화 감독 등이 걸어가고 있는데 천 회장과 협회 임원진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임 기자, 아니 기사가 올라왔던데. 그걸 그렇게 바로 쓰면 어떡해!”

-“회장님께서 몇 시간 전에 하신 말씀이잖아요. 그럼 그렇게 중요한 일을 아무 생각 없이 기자한테 말씀하신 거예요?”

-“아니 지금 어디서 눈을 똑바로 뜨고 큰소리야. 내 딸보다도 어린 사람이!”

-“회장님. 제가 회장님 딸 보다 어린 게 지금 이 상황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제가 지금 여기에 회장님 딸 자격으로 서있습니까? 저는 언론사를 대표해 취재를 나온 기자입니다. 나이가 뭐가 중요합니까.”     


그 뒤로 회장은 말을 못 이었다. 훗날 현정화 감독에게 들은 얘기지만 협회장을 비롯해 간부들이 나를 둘러싸듯 압박하는 상황에서 조금도 기죽지 않고 “내가 당신 딸 자격으로 서있냐”라고 얘기하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고...   


할 말 한 기자, 할 일 한 기자인데. 당시엔 그랬다.

우리가 알고 있던 탁구계 전설 현정화, 유남규, 김택수 감독들은 협회장이란 큰 바위에 맞서 작은 계란을 던지는? 그런 상황...     


한 번은 현정화 감독 집에 초대를 받아갔다. 자취하는 기자가 안타까웠는지 집밥도 먹고 김장김치도 가져가라고 불렀다. 현 감독 방에서 앨범 속 사진을 보면서 1991년 일본 지바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이 구성됐을 당시 북한 리분희 선수와의 만남도 들었다. 앨범 속 현 감독은 당시 피겨 ‘김연아’의 팬심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민의 많은 사랑을 받던 톱스타였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현 감독이 말했다.

      

-“나는 언젠가 리분희 선수와 함께했던 그 경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

-“꼭 그렇게 되길 바라요.”     


<4년 후>


2011년 3월의 어느 날.

경기도 안양의 한 체육관을 찾아갔다.     

현정화 유남규 감독이 하지원 배두나 선수에게 탁구를 지도하고 있었다.

영화 ‘코리아’ 주연 배우들과 조연배우들을 몇 달간 가르치는 그 현장이었다.     

당시 나는 ‘시크릿 가든’이란 드라마를 통해 하지원 씨의 매력에 푹 빠져있을 때여서 하지원을 보자마자 핸드폰으로 찰칵 찰칵 찍었더니, 덩치 큰 매니저가 와서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 앞에서 사진 지워주세요.”


그날 저녁 안양의 한 허름한 닭발집에서 현정화 감독, 유남규 감독, 그리고 지금의 신랑인

당시 남자 친구였던 우리 남편과 넷이 닭발에 막걸리 한 잔 하며, 단양군청 앞 다방에서 있었던 추억들을 얘기했다.      


-“임 기자가 천 회장한테 어찌나 당차게 얘길 하던지. 내가 나서서 도와야 하나 싶었는데.

오히려 상대가 말문이 막혀서...”                                                                                          



<며칠 전>

현정화 감독이 MBC 복면가왕에 출연했다.

방송 후 현 감독과 통화했다.


"언니, 우리 회사 왔다 갔으면 신고를 해야지!"

"(하하하) 보안 유지를 해야 한다고 해서. 나 노래 좀 잘 부른 거 같아? 어때? 보컬 트레이닝도 받고 열심히 준비했어."

"강 다니엘에게 고기 살 때 나도 불러요~"


체육부 시절 현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현 감독은 서른아홉, 내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나이는 달라도 '같은 띠'라며 좋아했고, 소주 한잔 기울이며 살아온 이야기를 한 추억들도 많다.

2008년 사회부로 다시 돌아갔을 때 현 감독은 "나 이제 마흔 됐어. ㅠㅠ"라며 느낌이 이상하다고 했는데.

이제 내 나이가 그때 현 감독 나이가 됐다.



(위 사진은 2007년 12월 유남규 감독 결혼식 날 현정화 감독과 찍은 사진. 유 감독은  직계가족 석  바로 뒤 테이블에 현정화 감독과 내 자리를 마련해줬다.)


(위 사진은 10년 전쯤, 서울 압구정동 화전민이란 막걸릿집에서 현정화 감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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