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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Aug 31. 2020

두 번째 스무 살

마음의 소리와 마주하다

# 동시대인  (러시아어 : 사브레멘닉)

    

나는 러시아 이동파 화가 중에 이삭 레비탄(1860~1900)을 좋아한다. 레비탄은 러시아의 자연을 서정적으로 잘 묘사했다. 모스크바에 위치한 트레찌야코프 미술관에 가면 레비탄 그림을 볼 수 있는데, 레비탄의 그림 앞에 서면 풍경화 속에 드러나 있지 않은 레비탄의 성장 스토리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뭉클해질 때가 많았다.     

레비탄은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모두 잃고 뒤늦게 그림을 시작했다. 가난했기에 물감을 살 돈도 없었다.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아 물감과 붓을 샀고, 힘들게 미술학교에 입학 해 그림을 전공하게 됐을 때는 좋은 스승을 만났다. 그리고 레비탄 인생에 처음으로 ‘사랑과 우정’을 일깨워준 친구, 안톤 체홉(1860~1904)을 만난다.   

   

레비탄의 그림을 하나의 색깔로 표현하자면 ‘회색’에 가깝다. 러시아의 긴 겨울이 끝나갈 무렵 얼어붙었던 시골길 모습과 풍경, 언덕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볼가강을 바라보며 그린 그림 등 레비탄의 그림은 회색 빛깔 자연의 모습을 캔버스에 담았다.  밤이 길고 낮이 짧은 긴 겨울, 6개월이란 긴 시간의 터널 끝에 마주한 봄의 소리를 레비탄의 그림을 보면 느낄 수 있었다.      



세계 3대 드라마 작가인 안톤 체홉은 글을 썼지만 의사이기도 했다. 20살 무렵, 친구 레비탄을 만나 그의 불우한 사정을 듣게 됐고, 이를 안타깝게 여겨 친구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당시 체홉은 글을 써서 돈을 벌고 가정의 가장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레비탄에게도 친구이자 후원가, 보호자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도 별장(러시아어 : 다차) 이 있다. 빈부의 격차와 상관없이, 누구나 세컨 하우스 개념의 시골집을 갖고 있는데 체홉은 여름이면 자신의 별장으로 레비탄을 초대했다. 그리고 그가 그림을 포기하지 않고,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왔다.





"자연의 장엄한 아름다움 속에서 신비를 느끼면서도 그 웅대한 느낌을
 표현해 낼 수 없는 나 자신의 무능력함을 깨닫는 것보다 더 비극적인 일이 또 있으랴!"
 -이삭 레비탄




레비탄의 회색 빛깔 그림은 체홉과의 만남과 우정, 사랑을 통해 점점 밝은 빛의 그림으로 바뀐다.

그리고 1895년, 서른다섯의 나이에 ‘황금빛 가을’이란 작품으로 러시아의 화려한 가을 풍경을 그림으로 표현해 당시 유럽의 큰 대회에서 입상하는 등 인생에도 밝은 빛이 비치기 시작한다.   

  


그런데 참, 하늘도 무심하시지. 레비탄은 37살 젊은 나이에 심장병을 앓게 된다. 그리고 몇 해 지나 마흔이 됐을 때 세상을 떠난다. 얼마 뒤 안톤 체홉도 병을 앓았고, 4년 뒤 레비탄의 곁으로 갔다.  


나는 러시아어로 ‘동시대인(사브레멘닉)’이란 단어를 참 좋아한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가치를 공유하면서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어서다. 막상 내 나이가 레비탄이 세상을 떠났던 그 나이가 되고 보니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사람은 각자 처해진 상황이 다르지만, 그 사람의 삶을 깊숙이 들어가 보면 그 안에 고민과 번뇌,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질 수도 없지만, 욕심내서도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을 때는 나 스스로 불편해 벗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레비탄과 체홉처럼 같은 나이 친구끼리 동시대인으로서 힘이 되어준 사례도 있지만, 나이차가 많이 나는데도 친구가 된 경우도 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와 음악가의 얘기다.

    

레프 톨스토이(1828~1910)와 표트르 차이코프스키(1840~1893)다. 두 사람은 띠동갑이고, 각자 전문분야도 달랐지만 동시대인으로 서로에게 힘이 됐다. 내가 모스크바에서 유학하던 시절 가끔 모스크바에서 전차를 타고 2시간 반쯤 남쪽으로 내려가면 나오는 톨스토이 생가를 여행하곤 했는데, 톨스토이 생가인 야스나야 빨랴나에 가면 당시 톨스토이가 차이코프스키와 함께 주고받은 편지, 두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찍은 사진 등을 볼 수 있었다.     


한 번은 어느 겨울, 학교에서 견학 프로그램으로 차이코프스키 생가를 방문했다.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버스를 타고 몇 시간 이동하면 나오는 페름이란 도시에 차이코프스키 생가가 있었다. 나무로 된 작고 낡은 집 2층엔 거실 하나를 다 차지하는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있었다.      


톨스토이도 툴라라는 지역의 영주로서 집 안에 호수가 있을 정도로 넓은 면적의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막상 본인이 먹고 자고 글을 쓰는 공간은 좁은 공간이었다. 그가 작업을 하다 잠든 침대는 요즘 시대의 라꾸라꾸 수준이었다.      



내가 러시아를 사랑하는 이유는 러시아에서 유학하면서 '경제적인 가난함이 절대적인 가난함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 희로애락은 누구나 겪는 것이고, 그 가운데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내 인생을 회색빛으로 끝낼 것이냐 황금빛으로 마칠 것이냐가 나뉜다.     


내 힘으로 환경을 바꿀 수 없을 때,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본다. 그러면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된다. 내 경우엔, 환경을 받아들이고 내 마음을 고쳐먹는 일이었다.          


오늘, 나의 마흔 살 생일을 하루 앞두고 동시대인들의 삶을 추억해봤다.

내 인생의 두 번째 스무 살. 내 인생에서 만난 '동시대인'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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