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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oms di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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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Sep 02. 2020

엄마는 날 때부터 엄마였는지

엄마라는 이름

   

어제 아침, 회사로 출근하는 데 7살 딸아이가 졸린 눈을 비비며 손 편지를 건넸습니다.

     

“엄마, 이건 편지야. 근데 진짜 선물은 준비 못했어. 저녁에 줄게.”     


말이 7살이지, 만 5살인 아이가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는 것만 해도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엄마에게

엄마 이건 엄마에게 줄 선물이야.

엄마 요새 코로나 때문에 난리야. 힘들지?

엄마 오늘이 바로 엄마 생일이야.

엄마 오늘이 어떻게 지나갈지 모르겠지?

나도 엄마 생일이 어떻게 지나갈지 모르겠어.

엄마 진짜 진짜 사랑해.

엄마 그동안 수고했어.

엄마 오늘은 편히 쉬어.

엄마 그리고 나는 엄마 생일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

엄마 나는 엄마만 보면 힘도 나고 편해져.

엄마 난 모든 생일을 좋아해.

엄마 쉬어봐. 그러면 피곤했던 게 풀려.

엄마, 그리고 안녕.     




흰색 작은 종이에 빼곡하게 쓴 아이의 손글씨를 보면서 줄이 위로 갔다 아래로 갔다 하는 바람에 퇴근 후에야 아이 편지 내용을 제대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편지에 ‘엄마’라는 단어

모두 20번 등장합니다.


살면서 누군가 나의 이름을 이토록 간절히 불러준 적이 있는가.

돌아보면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엔 많은 것이 낯설었습니다.


내가 엄마가 된다는 것, 엄마가 됐다는 것 모두 처음 겪는 일이니까요.     


어린 시절 나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엄마는 날 때부터 엄마였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나와 같은 어린 시절이 없었고, 처음부터 어른으로 존재했던 사람?

내 기억에 엄마는 그런 모습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고 아이를 키워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모성애 역시 처음부터 있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더라고요.      


아무리 달래도 울기만 하는 아이가 어느 날 목을 가누더니 네발로 기어가고, 또 두 발로 걷고. 힘차게 달리고...     


아이의 모든 첫 날을 기억하면서, 문득 깨달아지는 게 있었지요.     


아. 하늘이 내 기억 속에 없는 나의 어린 시절을 아이를 통해 경험하고 기억하게 하시는구나.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홀로 선 사람이 없구나. 부모님을 원망하는 사람들도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오늘을 살고 있구나.     


고사리 같은 손으로 쓴 편지 속엔 코로나 걱정, 엄마 건강 걱정,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모두 담겨있었습니다.      




우리 딸은 유치원에서 엄마 직업을 이렇게 말합니다.     

“경찰이기도 하고, 검찰이기도 해요.”     


그래서 딸아이 친구들이 물어봅니다.     

 

“아줌마, 요즘은 경찰 해요? 검찰해요.”  

   

기자는 출입처로 출근하니까 딸아이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죠.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닐 땐 경찰 출입을 했고, 어린이집 고학년 반으로 가고 유치원을 갈 땐 검찰 출입을 했으니까요.      


거기가 뭐 하는 곳이냐 묻는 아이의 질문에

“나쁜 사람들을 찾아내 벌을 주는 곳”이라고 했더니 “그럼 엄마도 나쁜 사람을 잡아?”라고 묻기도 했었지요.     


아이가 성장하는 나이만큼, 엄마라는 이름의 제 나이도 함께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초보 엄마에서 이제 7년 된 엄마.


앞으로 아이가 나를 정말 필요로 할 시간은 길어야 13년이겠지요.     


최근엔 아이가 유치원에서 엄마 직업이 하나 더 생겼다고 말했답니다.     


“우리 엄마 이제 선생님 해요. 학생들 가르치는 선생님이요.”     


몇 달간 대학에 강의 나간다고 설명을 했더니, 아이가 “어떤 학생들인지 궁금하다”면서 사진이 없냐 물어보고, 엄마는 뭘 가르치냐 묻더라고요.   

  

코로나 상황 때문에 한 번은 토요일 아침에 집에서 줌으로 화상강의를 했는데 아이가 방 문에 귀를 대고 무슨 얘길 하나 들었다더라고요.     


“엄마, 나 엄마 수업하는 거 들었어. 근데 깜짝 놀랐어. 엄마가 학생들한테 존댓말을 하더라?

우리 선생님들은 나한테 존댓말 안 하는데. 그냥 다 반말해.”     


신기한 표정으로 말하는 아이를 보고 한참 웃었습니다.     


저는 딸아이에게도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새로운 장난감을 사주기보다는 집에 있는 물건들을 활용해 만들기하고, 그리기하면서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편인데요. 그렇다 보니 아이도 엄마의 말 습관이 그대로 묻어나더라고요.    

 

“엄마 미안해. 엄마 고마워. 엄마 사랑해.”     


어제 딸이 궁금해했던 엄마의 하루는 평범했습니다.


이른 아침, 검찰청 대신 회사로 출근해 내근을 했고. 검찰에서 브리핑한 자료들을 토대로 낮 뉴스 기사를 썼고, 메인 뉴스에 들어갈 후배 기사를 챙기고 저녁 8시 반쯤 퇴근했지요.    

 

퇴근한 엄마를 보자마자 아이가 기다렸다는 듯

말하더라고요.


“엄마, 선물을 준비했어.”     


자기가 아끼는 조개와 소라 모양의 구슬들을 작은 상자에 담아주더라고요.      


“고마워 정말. 아끼는 것을 엄마에게 줬네. 그런데 엄마에겐 채은이가 선물, 그 자체야. 이건 엄마가 받은 거니까 다시 엄마가 선물로 줄게. 예쁘게 잘 써~.”     


자기가 아끼는 것을 엄마에게 주면서 아쉬운 마음이 있었던 건가 봐요. 마음만 받고 돌려줬더니 갑자기 아이 표정이 더 밝아지는 거 있죠. ^^     




오늘은 노영심 씨의 ‘사진첩’이란 노래 가사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진첩       

                                                    노영심

     


어느 날 문득 펼쳐본 사진첩

아주 오래전 흑백사진 속에서

지금의 나와 똑같은 표정 지은

우리 엄마를 보았네    

  

아주 꿈이 많은 듯 그 소녀는

빛나는 머릿결이 탐스러워

가슴엔 사랑이 넘치는 듯

두 볼이 달아올랐네     


예전에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는 가끔 말하시는데

사진 속 그 소녀 함박 웃음보니

있었긴 있었던 건가 봐     


엄마는 날 때부터 엄마였는지

가끔 그런 의문을 가져보는 건

그저 늘 상 하시는 식구들 걱정

또 그 잔소리 때문이야     

 

하지만 나 또한 그런 내 엄마에게

늘 하는 내 철없는 투정

그럴 때 늘 우리 엄마 말씀

너도 내 나이 되어보렴      


난 이다음에 엄마처럼 안된다고

걸핏하면 그런 마음 먹지만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사실

나도 어마가 된다는 거

변하면서 변하지 않는 사실

나도 엄마가 된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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