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세계 미숙아의 날'을 앞두고 미숙아들의 인큐베이터 확보 전쟁 문제를 다뤄보고자
취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섭외였습니다.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인 현대아산이나 삼성, 세브란스 등 몇 곳만 미숙아들을 위한 인큐베이터를 확보하고 있었고, 병원 당 인큐베이터도 많아야 50개 정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병원 측 설명은 인큐베이터 유지비용이 워낙 많이 들기 때문에, 인큐베이터를 늘리면 늘릴수록 병원에 경제적 부담이 크다고 했습니다.
미숙아들의 맘 카페에 가입을 했고, 기획 취지를 설명하며 사례자를 모집했는데, 인터뷰 당일에 취재가 엎어지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결국, 아이템을 접어야 했습니다.
1년 후.
2014년 초가을, 국제부에서 내근을 하며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국제부 기자는 직접 리포트를 하는 날도 있지만, 해외 특파원들의 기사가 방송으로 나가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캐쳐)도 합니다. 그날도 워싱턴 특파원이 오디오(목소리 녹음)를 보냈는지
확인하며 편집자와 영상 구성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배가 돌처럼 단단해지더니 통증이 시작됐습니다.
결국 바로 병원을 갔는데, 병원에선 조산기가 있다면서 인큐베이터가 확보된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예정일이 3개월 이상 남아있던 상황이었는데 지금 응급조치를 하지 않으면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되면 산모도 아이도 위험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곧바로 신촌 세브란스에 입원을 했고, '고위험 산모'로 분류돼 5주 동안 병원에서 하늘만 보고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 병실 창가 옆 작은 창문으로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이 보이더니, 하나둘씩 떨어지고, 그렇게 2014년 가을은 병원에서 누워만 지냈습니다.
신촌세브렌스 신생아 병동에 고위험 산모를 위한 병상은 4개뿐입니다. 산모들의 나이는 2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하고, 직업이 없는 사람부터 전문직 여성까지 다양한데 누구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인큐베이터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엄마의 뱃 속이다.”
“하루라도 엄마 뱃속에서 아이를 지키는 게 제일 좋다.”
의사 선생님들의 말씀은 구구절절 옳았습니다.
그래도 일단 세브란스에 입원해 있으면 조산이 되어도 인큐베이터는 확보할 수 있으니 마음은 놓였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병원에서 자책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이슬람 무장단체 IS 관련 리포트를 많이 할 때인데, 참수에 화형까지 원본 영상을 찾아보고 리포트한 게, 무의식 중에 스트레스로 작용한 건가?.. 건강하게 자연분만으로 출산하겠다며 매일 몇 분씩 걸으며 운동한 게 무리가 된 건가?.. 국제부에서 영어를 좀 해보겠다며 오후 출근인 날 영어학원 가서 수업 듣고 했던 게 원인인가...
병상에 누워서 화장실 갈 때 외엔 일어서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시간을 5주 가까이 보냈습니다.
그 5주 동안 '목소리'로만 인사한 산모들이 10명은 족히 넘을 것 같습니다.
고위험 산모들을 집중 관리하는 병실이다 보니 5주 동안 정말 수많은 아이들이 엄마와 작별하는 시간들을 목격했습니다. 한 번은 쌍둥이를 임신한 지 5개월이 좀 넘은 산모였는데, 변비가 심하여 관장을 하다가 아이 한 명이 잘못돼 다른 한 명을 살리고자 몇 주를 버텼지만 남은 아이마저 잘못돼 통곡을 하며 병실을 떠나던 산모의 목소리도 기억이 납니다.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는데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있었습니다. 갑자기 하얀 생크림 케이크가 너무 먹고 싶었습니다. 병원 생활할 때는 외부 음식 반입도 안됐고, 제한이 너무 많았었거든요. 그렇게 맛있게 케이크를 먹고 이틀 뒤, 아이가 예정일보다 한 달 더 빨리 세상에 나왔습니다.
병원에 처음 입원했을 당시 아이가 태어났더라면 1kg도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병원에서 견디고 견뎌 아이를 2kg대로 낳았는데, 어찌나 감사하던지.
미숙아여서 출산 후에도 신생아 집중 관리실에 있느라, 산후조리원도 엄마 혼자 가서 지내고 아이를 일주일 가까이 기다렸던 기억도 납니다.
그렇게 힘들게 태어났던 아이가, 오늘 7살 생일을 맞았네요.
이제 석 달 뒤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잘 먹고 잘 자라서 키도 초등학교 1학년 언니 오빠들만큼 큽니다~
피아노도 잘 쳐서 체르니 100번을 치고, 그림도 잘 그립니다.
단순히 기사로 미숙아 문제를 접근했을 때와, 막상 내가 미숙아 엄마가 되고 보니 느낀 문제점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기획기사로 문제를 접근했을 때, 왜 산모들이 당일에 인터뷰를 거절했는지도
이해가 됐습니다. 단순히 기사가 몇 번 나온다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거나, 인큐베이터 문제를 개선할
수 없다는 현실도 깨달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큐베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작은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이동하며 힘들게 고생하고 있을 수많은 미숙아 엄마들, 모두 힘내시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