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에 등장하는 노랫말처럼 “또 하루 멀어져 간다…” 같이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떠나 온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느낄 수 있겠지만 시간은 늘 앞으로만향해 가니까 그 소중함, 가치를 매일 피부로 느끼긴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럼, 카이로스는?
인생에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있지만 그 순간을 '기회'라고 알아챈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늘 준비되어 있는 사람은 기회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있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을 수 있겠지만요.
#어느 직장인.
저는 올 해로 16년 차 직장인이 됐습니다.
기자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발을 내딛고 살아온 시간이 벌써 16년이 된 겁니다.
삶의 현장에선 "기자님" "차장님" "선배" "아무개야"… 다양한 이름들로 불리지만 저에겐 또 다른
이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엄마"
평일엔 업무와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저녁도 하고 술도 마시지만, 집에 가면 아이 책가방을 열고 알림장 내용을 확인하며 보호자 란에 '서명'하는 엄마입니다.
작년에 서초동 검찰청으로 다시 복귀했을 때 한 가지 스스로 다짐했던 게 있습니다.
일과 삶의 경계를 더 이상 허물어뜨리지 말자.
내 삶, 내 생활, 내 시간의 우선순위를 너무 직장에만 두지 말자였습니다. 초반엔 잘 지켜지는 듯했습니다. 저녁 약속 잘 안 잡고, 주 2회 정도는 내 업무 마치면 퇴근해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심지어 주말엔 대학에 나가 강의도 했습니다.
그런데 현장 상황이 신문 지면 1면을 도배하듯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니까 어느 순간부터 감당이
안됐습니다. 일과 삶의 경계가 조금씩 무너지면서
자연스럽게 머릿속 뇌 구조가 업무에만 맞춰지기
시작한 거죠.
두 달 전, 선택의 순간이 왔습니다.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회사에서는 맡은 업무에 후배들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를 맡게 된 겁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보통, 일반 직장 엄마들도 그렇지만 기자 엄마들도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쯤엔 남은 육아휴직이나 개인 휴가를 모두 몰아서 사용합니다. 정말 휴직을 고민해도 모자란 상황에 직장에서 업무는 '빈틈'이 허용될 수 없는 현실에 놓인 겁니다.
망설였습니다. 검찰 법원, 취재 현장을 책임지는 자리를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도 됐습니다. 올해 학부형이 됐는데, 아이에게 손이 많이 가는 시간인데. 휴직을 고민해야 할 상황에서 하필 업무적으로도 손을 놓을 수 없으니.
흔히 <경. 단. 녀.>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은 아마도 이런 선택의 순간에서 깊은 고민 끝에 직장보다 아이를 택한 경우일 겁니다.
직장에선 매일 성과를 내야 하고, 칭찬보단 욕먹고 깨지는 일이 더 많으며, 어떤 일이든 잘해야 현상유지? 같고 매일매일 힘들게 자존감을 지켜가고 있는데, 집에 오면 간절한 목소리로 "엄마"라 부르며 나를 찾는 아이가 있습니다. 나에게 어떤 업무 성과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요, 그저 엄마로서 옆에만 있어달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자는 게 전부인 아이입니다.
절대적인 시간을 함께 해줄 수 있는 전업맘과
늘 함께하는 시간의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는 워킹맘 사이에 저는 특단의 조치가 있지 않는 한 늘 후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선택지가 없는 셈이죠.
“1학년 때 친구가 평생 간다더라”
“전업맘들의 정보력을 워킹맘이 따라갈 수 없다”
“요즘 애들은 친구도 엄마가 만들어준다”
하나같이 마음이 콕콕 박히는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고민이 됐습니다.
매일 열 심히 잘해야 본전인 직장생활과, 존재 만으로도 행복해야 하는 엄마라는 위치에서 무엇이 더 소중하냐를 단편적으로 놓고 비교하긴 어렵습니다.
내가 우리 딸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부터 살아왔던 시간과, 엄마가 된 이후의 시간의 무게를 단편적으로 측정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만나는 지점에서 저는 일단 둘 다 최선을 다해 보기로 마음먹고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습니다.
평일엔 퇴근 후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 더 많지만,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아이의 책가방을 열어보며 알림장에 보호자 서명을 하고, 알림장에 매일 몇 문장씩 아이와 지킨 일들을 적습니다.
선생님께서 봄에 피는 꽃과 나무를 알아보라고 하셨을 땐, 아이와 함께 길을 걷다가 꽃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어 꽃 이름과 꽃 말, 특징을 알아보고, 엄마와 함께 해야 하는 공지사항이 있으면 칼 같이 퇴근해 아이가 지금 해야 할 경험을 놓치지 않게 노력하는 중입니다.
지금은 사실 일과 양육의 밸런스가 업무에 2, 양육에 1로 많이 일쪽에 기울어져있는 상황입니다.
주말에 근무가 없을 때도 뉴스 모니터를 하는 엄마, 회사에서 전화 오면 조용히 서재로 가서 전화를 받고 한 참을 통화하는 엄마지만, 그래도 주말이면 아이가 학교에서 무얼 배우고 있는지 살펴보고 학교 숙제 학원 숙제, 학습지 밀린 숙제들을 같이 풀어보며 휴일을 보내는 평범한 엄마입니다.
7살 예비초등학교 단계부터 일반 노트에 아이와 주간 계획표를 세워서 실천했습니다.매일 해야 할 일을 마치면 칭찬 도장을 찍어주고, 그 날의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어떤 날, 엄마 손 편지가 필요한 날엔 노트 한편에 큼지막한 글씨로 딸에게 전하는 마음을 담아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마치 학창 시절 제일 친했던 친구와 교환일기 쓰듯이 그렇게,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가 8살이 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생각보다 스스로 잘 적응을 하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은 그날그날 마무리하고, 엄마와 함께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얘길 합니다.
#지구의 날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죠.
저녁 8시부터 10분간 전기를 끄고 지구를 한번 더 생각하자는 알림장 글을 읽고, 그날은 정말
칼같이 퇴근해 아이와 거실에서 불 끄고 무릎 담요를 덮으며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지구가 우리에게 해 준건 뭐가 있지?
“우리가 지구를 아프게 한건?”
“그럼 우리가 지구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뭘까?”
초등학생이 되더니 나름 논리적으로 바뀌어서, 마지막 생각 정리 때는 쓰레기 줍기, 분리수거, 재활용의 필요성을 아이가 강조하더군요.
한 번은 아이가 주간 계획표를 보고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엄마, 근데 이 계획표는 내 계획표가 아니라
엄마 계획표 같아. 내가 짜는 게 아니잖아.”
“그래? 그럼 직접 한번 만들어볼래?”
공책에 자로 그어서 요일을 나누고 시간대별 학원이나 해야 할 일을 적는데 어느 순간 아이가 멈춥니다.
“아, 힘드네. 난 여기까지~”
아이가 직접 계획표를 짜 보기 전엔 투덜대는 일도 있었습니다.
“엄마는 맨날 엄마 마음대로 하고~ 계획표도 엄마 마음대로~”
학습지 몇 장, 영어 숙제 어디까지, 피아노 체르니 100번은 몇 번 쳤는지… 주말마다 숙제 검사하듯 자기의 일정관리를 해주는 엄마가 딸아이에겐 조금 불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절대적으로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한데, 엄마가 마치 선생님처럼 확인하는 게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일주일 동안 다른 과제 하나도 안 내주고, 영어 읽고 녹음하기 20분 정도만 내줬는데. 아이도 스스로 느낀 것 같습니다.
“이제 조금 더 내줘도 돼. 전 같이 너무 많이는 말고~”
함께 계획표를 만들며 바쁘게 보냈던 일주일이나, 사실상 무 계획에 가까운 시간을 보냈던 일주일이나, 우리에게 똑 같이 주어진 일주일은 흘러간다는 걸
느낀 걸까요?
#가이드
며칠을고민하다가 아이에게 조용히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전에 비행기 타고 여행 간 적 있지?”
“응”
“그런데 우리가 또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간 거야.
엄마는 그 나라를 여러 번 다녀봐서 길을 알고, oo 이는 모르는데. 우리 두 사람이 여행을 가면 길 안내는 누가 맡는 게 좋을 까?”
“어. 그건 당연히 엄마지.~”
“왜?”
“엄마가 길을 나보다 더 잘 아니까.”
“길을 더 잘 알아서 안내를 돕는 사람을 ‘가이드’라고 불러. 엄마가 정답일 순 없는데, 엄마가 조금 먼저 인생을 살아봐서 oo이 길을 안내해주는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뿐이야. 엄마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고~”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합니다.
“그럼, 엄마가 내 가이드네~”
40대, 워킹맘.
전문직이라면 전문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매일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습니다.
조금 피곤한 날도 많이 있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아직 할 만하다는 겁니다.직장생활도, 엄마 역할도 아직 감당하는 데 큰 무리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