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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Apr 18. 2020

유명 여배우의 죽음

자, 살자.

*이 이야기는 2008년 당시 수사기관 관계자를  통해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쓰였습니다.


*사건 발생당시 상황이 너무 자세히 묘사된

부분은 고인의 명예와 이미지를 고려해

일부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2008년 10월의 어느 날.

아침 7시쯤 서울 서초경찰서 형사 당직실에 전화벨이 울렸다.


“여기 잠원동 *번지인데요. 방 욕실 문이 잠겼는데 두드려도 안에 인기척이 없어요.”     


“아이.. 한 시간만 버티면 퇴근인데...

신고 전화를 받은 경찰은 수화기 너머로 느낌이 싸했다고 했다.


욕실, 화장실 문이 잠기는 경우, 특히나 야간 당직하고 교대시간 즈음 걸려오는 전화는 대부분 ‘퇴근이 불가한 상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잠시 후. 인터넷과 방송에 속보가 뜨기 시작했다.     


배우 A 씨, 집에서 숨진 채 발견     


A씨는 당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톱스타였다. 90년대 책받침이나 브로마이드로 A씨의 사진을 갖고 있었던 추억이 있는 사람도 꽤 됐으니.. 드라마면 드라마, 영화면 영화 무엇이든 잘 소화하는 A씨였지만. 결혼 후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연하의 운동선수와 결혼해 행복하게 잘 사는 줄만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작스레 발표된 이혼 소식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었다.      


A씨는 결혼 후 공백이 있었지만 이혼 후에 당당하게 안방극장에 복귀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다시 사랑을 받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와 CF 촬영도 이어졌으니, A씨 인생은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맞는 듯 해 보였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왜, 그것도 집에서..     


수사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A씨는 방 욕실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옷은 걸치지 않았으며, 목에는 손톱자국이 많았다고 했다.      


나체, 손톱자국은 그녀의 죽음이 계획된 것이 아니라 충동적인 선택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계획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 가족들이 사후 뒤처리하면서 받을 충격 등을 고려해 옷을 입고 있지만 충동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엔 나체로 발견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수시기관 관계자는 말했다.

“욕실은 A씨가 평소 대본 연습을 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대본을 외울 때 집중하기 좋아서라나..

A씨는 이미 차기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고. 숨진 시간이 자정 넘어 *시쯤으로 나온 것으로 봐서 전날 술 마시고 집에 들어와서 씻으러 들어갔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 같아요. 목에 손톱자국은 압박붕대가 조여오자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목에 손톱 상처가 났고, 몸은 더 아래로 내려가면서....”          


당시 나는 사회부에서 강남라인(강남, 서초, 송파, 수서 경찰서)을 출입하다 산업부(기업 및 정부부처)로 출입처가 바뀐 시점이었다. 여배우의 극단적인 선택이 발생하고 얼마 안 된 시점에 전 출입처 취재원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사건의 뒷얘길 들을 수 있었다.

     

A씨 방 안에선 그녀가 평소 전 남편에게 썼던 일기장도 발견됐다고 한다.

“**아빠. 애들하고 이번에 **여행을 다녀왔어. 다녀오면서 당신 선물도 샀어. 우리는 비록 헤어졌어도 당신은 영원한 **아빠고 나는 ** 엄마야.”     


어쩌면 그녀는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전 남편과 재결합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녀가 극단적인 결정을 할 즈음, 한 여성잡지 11월 호에서 A씨 전남편이 재혼해 잘 사는 이야기와 운동선수로 은퇴한 이후 시작한 새로운 사업의 성공 스토리들을 담아 보도할 예정이었다고 했다. A씨는 여성잡지 편집장과 가까운 사이였고, 사전에 전 남편 관련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A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역 추적하는 과정에서 CF 촬영도 거론됐다. 그날따라 A씨 얼굴이 화면에 잘 받지 않았는지 촬영 팀이 “전에 찍어둔 영상을 찾아보겠다”라며 일을 중단했다고 했다. 그리고 당시 그녀는 다른 동료 배우의 남편의 죽음과 관련해 이런저런 루머에 시달리며 괴로워했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뒤 경찰 출석을 며칠 앞두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술. A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던 날 밤 술을 마셨다고 한다. 차라리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만취한 상황이었더라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그날따라 그녀의 술 약속 제안을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녀는 어느 정도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간 상태에서 가족으로부터 루머와 관련한 이야기의 실체적 진실을 들었다고 했다.   

   

STAR. 스크린 속에 빛나는 배우들의 화려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들의 몸짓과 표정, 말투 하나에 시청자들과 관객들은 울고 웃으며 감정이입이 되니까. 그런데 그런 화려한 이면엔 배우도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자식이다. 자식을 낳아 기르며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일반인과 크게 다지 않을 수도 있다.     


2006년 가을.

처음 기자가 된 이후 국과수에 가서 시신 세구 부검하는 것을 봤다.

당시 나는 신문기자였고, 해당 신문사와 MBC 두 회사의 수습기자들이 함께 국과수 일정이 잡힌 날이었는데. 내 기억엔 목욕탕에서 때밀이 아줌마에게 몸을 맡길 때와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한 명은 한강에서 건져내 몸이 퉁퉁 불어있는 청년, 한 명은 중년의 트럭 운전사인데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숨진 사람, 또 다른 한 명은 화재 현장에서 발견돼 팔다리가 숯덩이처럼 붙어만 있는 사람.    

  

코끝을 찌르는 지독한 냄새는 난생처음 맡아보는 냄새였다.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가까이 서서 부검하는 과정을 보는데. 커다란 세숫대야 같은 것을 시신 옆에 두더니 정육점 아저씨가 고기를 가르듯 몸 구석구석을 가르고, 몸 안에 기관들을 내서 어딘가에 담고 또 담는다.


나는 갑자기 궁금했다.     


“다른 분들은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 부검하는 것은 이해하겠는데요. 화재 현장에서 불에 탄 사람은 이미 화재로 숨진 것인데 굳이 부검을 하는 이유가 있나요?”     


국과수 관계자는 말했다. 부검을 해서 식도 등이 검게 그을렸으면 화재로 숨진 게 맞지만, 깨끗한 경우엔 보통 타살을 사고로 위장하기 위해 불을 질렀을 수 있다고.

(나중에 MBC에 입사한 후 동기 기자와 얘길 하다 국가수 얘기가 나왔는데, 그 친구 왈.

"그때 그 쓸데없는 질문한 게 너였냐. 빨리 끝나길 바라는데 계속 질문해서...." )

      


죽음.

사람의 죽음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고, 사연들이 있다는 것을 기자가 되기 전엔 알지 못했다.     


2007년 어느 여름. 대전의 한 구장에서 A씨의 전 남편을 만난 적이 있었다.

큰 키에 훤칠한 외모. 50m 거리까지는 참 미남인데. 가까이서 보니 피부가 ‘술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었다. 몇 마디 나눠보지는 못했지만,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이후  A씨에 이어 전 남편의 안 좋은 소식도 접했을 땐

더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2006년 9월 처음 기자가 됐을 때 종로 라인으로 배정을 받았다.

당시엔 결혼식장 방명록처럼 형사 당직실에서 반장님이 사건 관련 내용을 수기로 작성했는데, 처음 보는 삼촌뻘 경찰들에게 “형님. 기록 좀 보여주세요.”라며 너스레를 떨던 때가 기억난다. 종로라인 수습 첫 날 종로경찰서 성북경찰서 종암경찰서까지 택시로 밤새 두세 번을 돌면서 사건사고 챙기고 일진 선배에게 첫 보고를 했다.

     

“종로라인 수습 ***입니다. 저희 라인엔 밤사이 쌍피 *건, 단순폭행 *건 화재 *건 있었습니다. 쌍피는..”     


일진은 전화를 받자마자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야먀가 뭔데? 야마 잡아 다시 보고해.”

     

동기 중 가장 똘똘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마가 뭐야?”     


“어, 주제를 잡에서 보고하라는 거 같은데”     


다시 사건을 정리해 보고를 했다. 선배 왈.     


“변사는? 변사는 한 건도 없어? ”

“.....” (나는 그때까지 변사가 뭔지 몰랐다.ㅠㅠ)

  


경찰서를 출입하면서 처음으로 ‘안녕’이란 단어의 무게를 알게 됐다. 밤사이 안녕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지금도 우리가 ‘안녕’할 수 있도록, 일선에서 땀 흘리고 있는 고마운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소중함을...

    

“자-살자-살자-살자-살자...”     


같은 낱자가 쓰여도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생과 사가 나뉜다.

인생의 무게도 저마다 다르지만 그 안에서 겪는 희로애락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때론 힘들고 지치고, 넘어져도.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오나 싶은 순간도 있지만.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환경이라면, 내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는 명확하다. 스스로 마음을  고쳐먹는 것. 마음가짐을 바로 잡는 것이 어쩌면 내 환경을 바꾸는 것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 모르지만, 내 힘으로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한 일 아닌가.

   

“자,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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