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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May 15. 2021

로즈가든

꽃은 핀다, 반드시 핀다.


모스크바에서 유학을 하다,

2003년 12월 캐나다 밴쿠버 UBC로

어학연수를 갔습니다.
해외 생활만 몇 년을 했는데, 영어권이면

 더 잘 적응하겠지 자신했지만 오판이었죠.


전혀 다른 생활권에서

오히려 모스크바에 대한 향수만 더 짙어졌습니다.
사람이 익숙한 환경에 길들여진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체감했던 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 수업을 듣기 전에 UBC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는데요. 학생증만 있으면 캐나다 돈으로 2달러?

정말 싼 값에 운동을 했죠.

밴쿠버에선 한 겨울에도 우리나라 가을처럼

 날씨가 따뜻해서 가벼운 점퍼 정도 걸치고 다녀야 하니
처음엔 마냥 좋았습니다.

겨울이 우기여서 비가 오고 날씨가 안 좋았지만,

산에는 눈이 내려서
스노보드나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죠.

모스크바에서 긴 겨울 눈길을 걸어 다닌 것에 비하면, 차라리 우산 쓰고 빗 속을 걸어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데. 몇 날 며칠 비만 내리면 사람이 우울해지더라고요.

빗소리와 함께 영어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다 보면 가끔 나도 모르게 사람이 축 쳐지고 힘이 빠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럴 때마다 UBC 내 캠퍼스 끝에 로즈가든을 걸어갔지요.

한 겨울에 로즈가든은 앙상한 가시만 있었습니다.

어딜 봐도 꽃이 필 것 같지 않지만
로즈가든이라고 쓰여있으니, 봄이 되면 이 곳에 예쁜 장미꽃이 피겠구나 혼자 상상을 하며 지켜보다
처벅처벅 다시 교실로 돌아오곤 했지요.

한 번은 에세이 시험을 보는 날인데. 영작문이 막혀서 내 생각을 글로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의 벽에 부딪혀 좌절감을 맞봤습니다. 영어는 이렇게 공부해선 늘지 않겠구나, 너무 늦게
영어 공부를 하는 자신을 탓하면서 어깨가 축 처졌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로즈가든으로
걸어갔던 것 같습니다.




"로즈가든?

근데 넌 언제 정말 네 모습을 찾니?

난 한 학기 수업만 듣고 돌아갈 거라서 네가
활짝 핀 모습은 볼 수 없겠구나.


너도 긴 겨울 이 자리에서 비 맞으면서

 견디려니 많이 춥고 힘들겠다.

그래도 네 이름은 로즈가든이잖아.

이 시간을 버티고 견디면 언젠가 꽃이 피겠지?


사람들은 네가 활짝 핀 모습일 때 너를 찾아오겠지만, 네가 꽃을 피우지 않았던 시간에도 너를 찾았던

나를 기억해줘."




마치 친구와 대화하듯 아주 작은 로즈가든을 보면서 혼자 중얼거리고 돌아온 기억이 나네요.

겉으로 보기엔 전혀

장미꽃이 필 것 같지 않았던 로즈가든.
하지만 때가 되면 예쁜 꽃들로 가득할 그곳을 보면서, 저도 당시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을
로즈가든처럼 버티고 견디는 것이라 위로했던 것 같습니다.


“꽃은 핀다. 반드시 핀다.”


그 시절엔 힘들 때마다 로즈가든을 친구 삼아 찾아가면서 저도 저의 꿈을 키웠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반드시 이루어진다.”

세월이 흘러 원하던 직업, 원하던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요. 사람들은 말합니다. 일이 뭐 그리 재미있냐고. 회사가 왜 그리 좋으냐고.

로즈가든처럼 긴 시간 인내하며 때를 기다린 세월이 없었다면 아마 일의 소중함, 직장의 소중함을 잘 몰랐을 것 같습니다. 소중한 가치는 간절히 원했던 사람이 더 느낄 수 있잖아요.
 
제가 출입하는 서초동 검찰청과 법원 사잇길에도

 요즘 장미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법원 삼거리에서 하도 집회 시위들을 많이 해 장미꽃을 심었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장미꽃을 볼 때면, 로즈가든은 잘 있나?

 어떤 모습일까? 활짝 핀 꽃들은 얼마나 예쁠까?
가끔 상상해보곤 합니다.




꽃은 핀다. 반드시 핀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생각하는 때와 다를 수 있다.

아직 때가 아니라면 조금 더 기다리자.
비바람이 불어 나를 때리고 흔들어도.
꽃은 핀다. 반드시 핀다.

-오늘의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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