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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Jun 20. 2021

함께, 또 같이 살 수는 없을까?

마루 밑 아리에티

<마루 밑 아리에티> *스포 주의

  

가끔 주말에 집에서 아이와 영화를 본다.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을 좋아하고, 특히

히사이시 조의 영화 음악을 좋아한다.


<이웃집 토토로, 천공의 성 라퓨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마녀 배달부 키키...>


지브리 작품들을 보고 또 보고, 음악을 듣고 또 듣지만 

영화와 음악이 언제나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볼 때마다 다른 지점에서 생각해보고, 돌아볼 수 있어서다.


오늘은 11년 전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마루 밑 아리에티>에 대한 얘길 하고 싶다.




#자연과 인간, 배려와 공존


어느 한 가정집 마루 밑에

아리에티 가족이 살고 있었다. 


키 10cm, 엄지공주보다 조금 큰 소인, 아리에티. 


아리에티는 14살이 된 기념으로 아버지를 따라 처음으로 마루 위 인간세상으로 올라간다.     


"인간과 절대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   


아버지는 아리에티에게 인간을 '두려운 존재, 공포스러운 존재'라고 강조한다. 


작은 소녀가 처음 마주한 인간세상.

그런데 그곳에서 아리에티는 쇼우라는 남자아이와 눈을 마주친다.


우연일까, 아님 운명적 만남일까.


쇼우는 말한다.

"낮에 정원에서 너를 봤다"라고. 


<마루 밑 아리에티>는 자연과 인간, 배려와 공존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빌. 려. 온. 다


쇼우의 할머니께서는 말씀하셨다.


집안 어딘가에 소인들이 살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며, 할머니 아버지께서는 소인들을 보시고

그들을 위해 인형의 집처럼 소인들을 위한 집을 유럽에서 특별 주문 제작해놓으셨다고.


하지만 소인들이 나타나지 않아 이 집은 주인 없이 그대로 있다고.     


아리에티 가족들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인간에게 들키면 집에서 쫓겨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마루 밑에서 삶을 유지해왔다.


생필품이 떨어지면 가끔 마루 위로 올라가 인간 세상에서 무언가를 '빌. 려. 온. 다.'고 했다.


아리에티 가족에게 당장 필요한 건 각설탕과 휴지 한 장.

아무리 봐도 아리에티 가족들은 각설탕과 휴지를 갚을 능력이 안 되는 데..

너무 자연스럽게 '빌려온다'고 말했다.  

     

쇼우 가족에게 각설탕 한 조각 휴지 한 장은

정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쇼우 가족들은 집에서 조금씩 사라져도 전혀 눈치채거나 아까워하지 않을 그 무엇이, 하지만 누군가에겐

정말 절실했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누군가는 위험을 무릅쓰고 마루 위 세상으로 올라가야 했다.


만약 아리에티가 쇼우를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두 사람이 서로를 일찍 알았더라면 굳이 아리에티 가족이 위험을 무릅쓰고 벌레와 쥐에 쫓겨 가며 마루 위에서 물건을 빌려오지 않아도 됐을까? 어쩌면 아리에티 가족들이 쇼우 방에 있는 소인들을 위한 집에서 편하게 살 수 있었을까?


영화를 보면서

'쇼우는 알지만 아리에티는 모르는', '아리에티는 알지만 쇼우는 알 수 없는 상황'을 놓고 잠시 생각했다.


편견, 혹은 선입견에 대하여.


인간을 경험하기 전에 막연히 인간을 공포스러운 존재로 규정 지은 소인들의 삶.

그들은 인간이 두려운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집 어딘가에 소인들이 살고 있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오는 쇼우의 집안.

그들은 소인들이 편하게 생활할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충만했던 것 같다.

오랜 시간 소인을 기다리며 간절히 찾았던 모습에서 소인을 생각하는 인간의 배려, 따뜻한 마음을 소인들은 알 수 없었다. 


이 영화의 끝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쇼우의 할머니 집에서 일해 주시는 분에게 마루 밑 아리에티 가족이 살고 있는 공간에 눈에 띄어 위기의 순간을 맞게 된다.    

 

마치 소인을 벌레 보듯 대하며, 집에서 쫓아내려는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

그로 인해 쇼우와 아리에티는 서로에게 마음을 열자마자 이별을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퍽 인상적이다.     


멀리, 아주 먼 길을 떠나는 아리에티와 작별 인사하기 위해 있는 힘껏 달리는 쇼우.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에서, 쇼우는 아리에티에게 각설탕을 챙겨준다.


그리고 이런 대사가 나온다.


"힘낼게. 네 덕분에 살아갈 용기가 생겼어."


아리에티가 쇼우에게 한 말이 아니다.

쇼우 아리에티에게 한 말이다.




사실 쇼우는 심장이 좋지 않았다. 오랜 시간 아팠고, 얼굴엔 어딘가 모르게 그늘이 보였다. 

그런 쇼우 앞에 나타난 10cm도 안 되는 아리에티는 어떤 의미였을까.


"너는 내 심장의 일부야. 잊지 않을게."


쇼우는 빨래집게로 머리를 질끈 묶고 세상을 당차게 살아가는 아리에티의 모습에서 자기도 

누군가에게, 어쩌면 자기보다 약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삶의 의미를 느끼며, 살아갈 용기를 얻은 것 같다.     



쇼우와 아리에티, 두 사람의 관계를 보면서 한 가지 느낀 게 있다.

     

자연이든, 사람이든

제대로 알지 못할 땐 함부로 판단하고, 확신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과


제대로 알았더라면 함께, 또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아프리카 속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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