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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squeen Oct 23. 2022

불편할 용기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발됐다.



<불편할 용기>


2008년 6월 25일 밤 11시 30분.

서울 광화문 금강제 앞에서 시민 3백여 명이 중년 남성  명을 둘러싸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행진을 하는데 어떤 남성이 전화통화를 하며 '폭도' '시위대' '전경버스

탈취'란 말을 한 것을 누군가 듣고 해당 남성에게

강하게 따져 묻고 있었다.


"전경버스 끌어내는 게 왜 탈취냐"

"혹시 경찰 프락치 아니냐"


남성은 시민들에게 '기자'라고 답했고, 시민들은

 "어느 신문 기자냐, 혹시 조중동 기자 아니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남성에게 기자 신분증을 요구했다.


그날 나는 하필 그 타이밍에 그곳을 지나갔다.

중년 남성이 3백여 명의 무리에 둘러싸여 입을

열지 못하는 그 상황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


'못 본 척 지나칠까?'

'아니, 기자라고 하는데 진짜 기자면 어떡하지?'


나는 중년 남성에게 다가갔다.


"저, 경향신문 기자인데요. 정말 기자 맞으세요?

신분증은 있으세요?"


남성은 조용히 말했다.

조선일보 부장이고, 퇴근길 집회 상황을 회사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통화 내용을 누군가 듣고

문제제기를 하면서 이 상황이 발생했다고 했다.


나는 조선일보에 전화를 걸었다. 아무개 부장이

그곳에서 근무하는 게 맞는지. 조금 전 퇴근한 게

맞는지. 이 남성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시민들에게 내 기자 신분증을 보여주며 말했다.


"저는 경향신문 기자입니다.

조선일보에 확인했더니 이 분은 조선일보 기자가

맞습니다.

이제 신원 확인을 했으니 이 분을 돌려보내 주시죠."


하지만 시민들은 계속해서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기자가 돌아가서 어떻게 기사를 쓸지도 모르고,

폭도, 시위대, 전경버스 탈취에 이어 자기들이

폭행했다고 기사를 쓸 수도 있다며 그냥 보낼 수

없다는 취지였다.


나는 시민들에게 다시 말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폭도입니까? 시위대예요?

누가 시켜서 여기 촛불집회에 나오셨습니까?

아니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여러분들이 물리력을 행사하시면

폭도가 되고 시위대가 됩니다.

신문의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기자에게

물리력을 행사하시면 순수하게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도, 폭도가 되고 시위대가 됩니다.

이 분을 돌려보내 주시죠."


3백 명의 무리는 조용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날 밤 사건은 다음날 아침 일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https://www.nocutnews.co.kr/news/465320?c1=191&c2=193


지금 돌아보니 그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됐던 시점이었다.


3년 차 경찰기자로 강남라인을 출입하면서 낮엔

강남에서, 밤엔 광화문 시위 현장에서 촛불집회를 취재했던 기억이 난다.


워낙 시민들의 항의가 거셌기에, 기자도 시민들

틈에 끼어서 최루가스와 물대포를 맞기 일수였다.

집회 참석 인원은 늘 주최 측 추산과 경찰 추산

차이가 나는데 면적당 그 안에 몇 명 들어가는지

계산을 해서 주최 측과 경찰 추산 중간 범위 내에

참석 인원을 대략적으로 썼던 기억도 난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무렵, 경향신문 구독 운동이 일었다.

구독자가 많이 늘길래 이제 회사 경영도 좀 나아지나 싶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출입처 사람들로부터

'광고 탄압'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신문에 광고를 하고 싶어도, 지면으로 회사 광고가 나가면 000에서 전화가 와요."

"기업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눈치 보며 광고를 끊을 수밖에 없네요."


한 해가 지났다. 회사 광고 수익은 점점 줄어들었고, 월급도 덩달아 줄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은 아니었지만, 돌봐야 하는 가족이 있었기에 얇아진 지갑으로는 도저히 생활하기가 어려운

상황까지 됐다. '기자를 그만둬야 하나' 참 많은

고민을 했다.

기자이기 이전에 생활인이고, 생계는 유지해야

하는데, 그 조차 쉽지 않았다.


그때 주변에 타사 선배들이 기자를 그만두기엔

너무 아깝다면서 이직 제안을 했다.

그렇게 <한국일보> 경력기자로 직장을 옮겼고,

산업부와 법조팀에서 근무하다가 <중앙일보>

경력기자로 이직해 법조팀 근무를 이어갔다.


이명박 정부 집권 1년 차 때, 경찰 출입기자로

현장 취재를 했던 기자가 집권 3년 차, 4년 차 때

검찰을 출입하며 경험한 세상은 너무 달랐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탈로날 거짓말>


경력기자로 이직을 할 때는 기자가 그동안 썼던

기사들을 포트폴리오로 작성해 제출을 한다.

신문기자의 경우 1면 단독, 사회적 파급력이 있는

기사를 얼마나 썼는지를 보고, 신문에서 방송으로 이직할 때는 '방송 전달력'보단 '취재력'을 중점적으로 본다. MBC 경력기자로 이직할 때는 중앙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에서 썼던 기사들을 제출했다.

경력기자로 이직할 때 중요한 또 한 가지는

'평판조회'를 한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출입처에서 동료 기자들의 평가가 좋지 못하면

'평판조회' 때문에 불합격되는 사례를 여러 번 봤다.


2011년 가을, MBC 최종 면접을 앞두고, 나는

그동안 썼던 기사들을 리뷰하며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했다. '어떤 질문이 나오든 솔직하게,

진실되게 말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자신 있었다.

그리고 기다렸던 최종면접 당일.. 정말 예상치도

못한 질문에 말 문이 막혔다.


"만약 MBC에 입사한다면, 입사해서 노조가 파업을 할 때 참여하시겠습니까?"


상상도 못 했던 질문이었다.


기자의 업무 능력에 대한 평가가 아닌 '파업 참가

여부'를 묻는 질문이 나올 것이라곤 전혀 예상을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 질문하는 임원은 "절대 파업에 참가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답변을 듣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탈로날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저는 지난 5년간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빈 지면으로 독자를 만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MBC에 입사해서 동료들이 파업을

결정했다면, 그 파업을 결정한 이유가 타당하다면

저 혼자 회사에 출근해서 책상을 지키고 있을

자신은 없습니다."


솔직한 내 생각이었다.




<좌표 찍기>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순방에서 비속어 발언

논란이 일었다.

나는 여당(국민의힘) 출입 기자로 그날 국회에서 내근을 하고 있었다.

정오뉴스에 대통령 발언에 대한 여야 반응을 묶어서 종합 리포트를 했는데, 인터넷상에서 비속어 발언을

최초 보도한 기자는 글이 올라오더니 일주일 가까이 신상 털기와 협박성 메일에 시달려야 했다.

처음엔 내가 최초 보도한 기자가 아니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고 이수현 씨의 '의인 이수현 재단'에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당시 의인을 발굴했다며 감사패를 수여해서 받게 된 수상 인터뷰 기사

내용을 바탕으로 기자에 대한 인신공격이 시작됐다.


태어나서 딱 한번 가봤던 '전라도 광주'가 는 고향이 되어있었고, 러시아 유학 이력은 '사회주의' '공산주의'사상에 물든 기자가 됐으며 급기야 6.25 전쟁의 전범의 후예라는 글까지...


결국 회사 차원에서 기자에 대한 인신공격에 대해 입장문을 냈고, 변호사를 선임해 법적 대응을

준비하게 됐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의힘은 MBC가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사장, 보도국장, 디지털 국장과

내 이름까지 적어...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이 사건을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순 없지만 검찰의 지휘를 받는 경찰이 수사하겠지만, 난생처음으로 수사기관의 수사대상이 된 건 썩 유쾌하진 않았다.

 

동아일보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이 사건의 답은 나와있다고 보도했다.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928/115708752/1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는 수사기관에 협조하며

앞으로 지난한 시간들을 보내야 한다.


분연히 대응할 것이다.

그리고 훗날 이 과정들을 기록으로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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