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은 당연한 것인가?

잇기 - 소년이 온다, 엔트로피, 액트 오브 킬링, 계엄과 법원 난동

by 이끼

잇기 - 두 점을 이을 때, 두 선을 이을 때, 두 면을 이을 때. 우리는 새로운 차원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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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당연한 것

"민주화 운동"이라는 단어는 대한민국에서 사라졌다.

그 단어의 필요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완전하든 완전하지 않든, 민주주의가 그 사회에 당연한 것이 되었기에, "민주화 운동"이라는 단어는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멸종 위기의 단어가 되었다.

민주주의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고 또한 당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 국회에 군인들이 총을 들고 난입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소년이 온다

계엄이 해제되고 탄핵 소추가 국회를 통과하는 것을 보며 미뤄두었던 "소년이 온다"를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한강 작가의 섬세한 묘사가 어린 시절의 기억에 닿아 그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오르게 만들었다.

눈물을 쏙 빼놓던 사과 모양의 최루탄, 수많은 깃발들과 함성, 달려드는 백골단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치던 대학생들. 무엇보다 대학가에 전시되었던 광주의 사진들은 충격으로 다가와 어린 마음에도 대학생들이 무언가 소중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그 사진들은 한강 작가가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라고 말하는 사진집의 것들이었을 것이다.

한동안 잊고 지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았던 그 시절,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는지. 2024년 계엄 소식에 국회로 곧바로 달려가 계엄 해제를 도왔던 많은 국민들. 그들을 움직이게 한 것은 그 때의 끔찍했던 기억이 아닐까?


당연한 것 당연한 것인가?

그들이 법원을 부쉈다. 그들은 위법으로 이루어진 계엄을 옹호하고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구속영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합법적인 조사 요구를 무시하면서도 '민주주의 수호'와 '애국'을 논하는 그들의 대통령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빨갱이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독재라도 좋다는 듯이.

'빨갱이'. 독재와 냉전이 끝나면서 사라져간 또 하나의 단어. 독재자들이 대중을 조종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던 단어. 그 단어가 악몽처럼 되살아나고 있다. 심지어 지나간 과거를 모두 부정하면서 말이다.

이 시점에서 다른 생각을 해보게 된다.

당연한 것은 당연한 것인가?

아니다. 지금 당연한 것은 당연히 존재하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다.


엔트로피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엔트로피는 보통 '무질서', '폐기물' 등으로 해석된다. 열역학 제1법칙에 의해 모든 에너지는 보존된다. 열에너지, 운동에너지, 전기에너지 등 형태만 바뀔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무언가 태워서 발생했던 열은 정말 다 보존이 되는걸까? 열역학 제2법칙은 이러한 에너지가 점점 무질서해지면서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고 말한다. 이때 무질서한 정도를 엔트로피라고 말하며 엔트로피는 별도에 에너지를 가하지 않는 이상 늘 증가하기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쌀과 모래가 반반 나눠져 있던 통을 섞어 흔들면 어떻게 될까? 섞여서 쌀로도 모래로도 쓸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쌀 한톨도 모래 한점도 사라지진 않았지만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둘을 다시 사용하려면 쌀과 모래로 나누는 노력, 즉 에너지를 투입해야한다. 이것이 지구가 태양의 지속적인 에너지 공급 없이는 살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인간 사회에도 이러한 엔트로피의 법칙이 적용되는 건 아닐까?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누렸던 것들은 돌아보면 누군가의 노력으로 일궈낸 것들이다. 그런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순간 사회의 엔트로피, 무질서는 조금씩 올라가는 건 아닐까?


액트 오브 킬링

엔트로피가 커져버린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에서도 2014년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Act of Killing, 2012)'을 통해 옅볼 수 있다.

엑트 오브 킬링 을 소개하는 영상

1965년 인도네시아, 구데타를 일으킨 군은 '반공'이라는 명분으로 100만명이 넘는 공산주의자, 지식인, 중국인들을 비밀리에 살해하였다. 이 영화는 그 때 고문, 살인 등의 역할을 했던 한 프레맨의 현재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4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는 국민영웅으로 추대받으며 호화스런 생활을 누리고 있다. 감독은 그를 부추겨 그당시의 고문, 살인 장면을 재현해보자고 한다. 희생자 역할을 맡는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를 그에게 잃은 한 시민.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장본인 앞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 웃으며 얘기한다. 온 마을 사람들이 프레맨에게 고통받았지만, 그가 내미는 돈을 받고 서슴없이 그 당시 장면을 재현한다.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정부는 프레맨들을 고용하고, 국민들은 선거운동을 하는 정치인에게 돈봉투를 요구한다. 국민들은 더이상 사회의 변화에 대한 어떤 의욕도 없어 보인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쿠데타는 한국에서도 있었다. 그 당시 누군가의 노력, 누군가의 고통이 없었다면 겪게 되었을지 모르는 이야기 아닐까?


소년이 온다

그러니까 형, 영혼이란 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아니, 그건 무슨 유리 같은 건가.
유리는 투명하고 깨지기 쉽지. 그게 유리의 본성이지. 그러니까 유리로 만든 물건은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거지. 금이 가거나 부서지면 못쓰게 되니까, 버려야 하니까.
예전에 우린 깨지지 않은 유리를 갖고 있었지. 그게 유린지 뭔지 확인도 안해본, 단단하고 투명한 진짜였지.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유리는 깨짐으로써그것이 얼마나 투명한지, 얼마나 조심해서 다뤄야하는지, 부서지면 못쓰게 되는지 알려준다. 1980년대의 희생자들은 그들이 깨짐으로써 독재와 폭력의 위험성을,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민주주의는 그저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1980년대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그저 문제가 있고 뜯어고쳐야 하는 걸로만 보이는 건 아닐까? 답답하고 고상한 척하는 민주주의보다는 강력하고 시원시원한 독재자를 원하는 건 아닐까? 산산히 부셔지는 걸 본 적이 없으니 그 모습을 다시 보아야만 하는걸까?

그러한 일이 있기 전에, 당연한 것이 당연할 수 있도록 무언가 해야할 때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