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오퍼>와 인간 관계의 아이러니
인생 영화 중 하나인 <베스트 오퍼>를 학생들에게 추천했다가 난처하게 만들었었다.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는 구성과 통찰이 담긴 메시지, 시적인 화면 연출에만 집중한 나머지, 중간에 베드신이 나온다는 걸 깜박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여학생이 부모님이랑 보다가 순간 민망했다고 말해서 미안했었다. 하지만 괜히 헛기침하게 되는 그런 상황이 연출될지라도, 사회로 진출하는 학생들이라면 한 번쯤 영화를 보며 인간관계 날 것의 복잡다단성을 깊이 생각해볼 만하다. 그리고 이 글에는 결말을 다 포함하고 있으므로, 소박한 글을 읽느라 섬세한 영화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먼저 감상하시길 추천 드린다.(넷플릭스에서 감상 가능)
이 영화에서 중요한 소재는 주인공의 직업과 성격이다. 위작 감별사이자 경매사인 주인공은 식사 자리에서도 장갑을 끼고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는다. 미술계에서는 누구보다 능숙하지만, 인간관계, 특히 여자에 대한 태도는 단절에 가까운 정도의 폐쇄성을 보인다. 그래서 이름도 무려 버질 올드만, 노인 총각임을 연상시키듯 비튼 듯한 이름이다.
이 사람의 2가지 직업은 인간관계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먼저 위작 감별사라는 직업을 생각해 보자. 진품인 줄 알았던 작품이 위작임이 밝혀지면, 감동은 사라지고 가치는 폭락하며, 엄청난 분노와 실망이 남게 된다. 사실 전문가가 아니면 겉으로는 거의 구분을 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인간관계에서도 친밀하고 신뢰했던 사람이 배신했다든가 부정을 저지르면 행복했던 모든 순간들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면 변질이든, 내가 바라던 진품이 아닐 때 우리가 느꼈던 감동은 그저 기만이었을 뿐일까?
인간관계에 대한 두 번째 비유는 경매다. 짜고 치는 상황이 아니고선, 경매에서 이후 더 좋은 물품이 나올지, 지금 매물이 그날 최고 가치일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작중에서도 주인공에게 결혼을 경매에 비유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이것이 나에게 가장 값진 것이라 믿으며 최고가 입찰을 제안하는 최선의 선택(best offer)인 것이다. 인간관계도 상호작용이므로, 어떻게 돌아올지는 불확실성에 기반해서 내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진짜 진짜 좋은 건 오지 않았어’라고 미루기만 하다간 경매가 끝나버리고 만다.
위작을 잡아내고 경매에선 남을 속이던 주인공은 결국 처음으로 마음을 열었던 상대에게 속아 모든 것을 잃고 만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이카루스나 <스카페이스> 토니 몬타나처럼 닿을 수 없는 욕망과 몰락이라는 구도로만 보기에는 더 많은 생각거리를 남긴다. 헛된 욕망을 좇던 노인이 무너진 이야기로 마치기엔, 태엽 시계가 많은 프라하 카페 엔딩 장면이 너무나 인상 깊기 때문이다. 영화는 오프닝 타이틀 직후 주인공이 고급 식당에서도 장갑을 벗지 않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마지막 장면은 카페에서 맨손으로 메뉴판을 받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첫 장면에서 깐깐해 보이던 주인공의 표정은 어쩐지 최종 장면에선 한결 회한보단 평온함이 읽힌다. 그래서 단순히 정신적, 물질적 파산을 겪은 자의 미련으로 보기에는 어렵다고 생각된다.
핵심적인 관계인 클레어와의 만남은 사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위작이다. 주인공에게 마음을 연 줄 알았던 여러 사람들은 그를 속였다. 인간관계에 누구보다 폐쇄적이던 주인공은 결국엔 타인에게 기만을 당하고 만다. 인간관계는 결국 그런 진품을 흉내 내는 위작이던가?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위작인 인간관계를 맺고 나서야 그는 자신의 폐쇄성을 내려놓게 된다. 완벽하고 불확실하지 않은 명화 속 여인들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왁자지껄한 만남을 이루는 카페 속에 함께 하게 된다. 역설적으로 일방향적인 완전성이 아닌 상호적인 불완전성이 있는, 그래서 기만도 당하고 호의의 불균형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 진정한 인간관계였던 것이다. 적어도 작품에선 위작이 진품인 모순적인 인간관계의 측면을 보여준다.
인간관계는 때로는 야속하리만치 얄팍하고 모순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 불확실성 속에서 혼란한 청소년들이 ‘진짜 친구’를 찾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청소년만 그런 게 아니라 청년도 그렇고, 중년도 그렇다. (아직 안 겪어봤지만, 작품에 의하면 노년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인간관계의 모순을 잘 간파하는 사람일수록 외로움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결국은 통상의 인간관계조차 진품의 진심과 위작의 기만이 섞여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온유하고 완전한 인간관계는 방 안의 그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알아도 외로운 걸 어떡하냐고 묻는 학생이 있다면 해줄 말은 없다. 그냥 그 달콤씁쓸한 희한한 맛을 음미하는 수밖에.
이번 한 주도 사람들 사이에서 일희일비하면서 보냈다. 어떨 때는 혼자 든든하고 어떨 때는 괜히 서운했다. 원망하며 방어기제를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약속을 잡고 먼저 전화를 걸어본다. 그 속에서 때로는 기만당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어느 정도 당한다고 해서 그리 치명적인 것도 아니다. 가끔은 메시지 하나를 쓰는 데에도 이 브런치 글보다 주저와 고민이 담기지만, 섭섭함에 침전하기보다 버브의 <Bitter Sweet Symphony>나 들으면서 외쳐본다. 에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