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좀 읽고 살아야 하는데

독서 한탄과 콩나물 독서법

by 가장귀해하고


“선생님, 요새 애들이 문해력이 많이 떨어진다면서요? 저희 애도 책을 너무 안 읽는데 어떡하죠”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님이 고민을 말씀하셨다. 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다음 수로 ‘부모님은 많이 읽으시나요?’라고 움직일 걸 미리 읽었는지, ‘그래도 애 아빠는 많이 읽는 편인데’를 첨언하셨다. 부모님이나 자녀나, 그 쪽이나 내 쪽이나 우리 모두 독서 부재 상황인 건 마찬가지인데 뭐라고 말해줘야 하나. 그래서 그냥 이론대로 주제별 어휘 이해, 내용 구조화, 요약 등의 습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말하면서도 속으론 제동 장치가 걸리고 있었다. 너무 ‘수율 좋은’ 독서를 하는 것은 자칫 흥미만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을.


멀어졌지만 헤어질 순 없는


전공에도 불구하고 요새는 책을 잘 안 읽는다. 그렇다고 게임도 잘 안 한다. 집중해서 뭔가를 풀어간다는 게 피곤하고 귀찮기도 하다. 가끔 야구를 틀어놓지만, 감상도 아니고 백색소음으로 틀어놓고 홈런이 나오거나 치명적인 실책이 나올 때나 가끔 쳐다본다. 유튜브나 인스타도 뭔가를 흥미롭고 진득하게 보기보다는 마치 레버 당기는 원숭이처럼 새로고침을 하거나 피드를 내리기를 반복하며 따분해 한다. 그렇게 어느새 지루한 고자극 속에 도달해 버린 한 달의 말미에서 그런 한탄만 한다. 아, 책을 좀 읽었어야 했는데.


책 읽기는 영원한 과제 같은 것이다. 수도 없이 미루지만, 포기할 순 없고 하긴 해야 하는 과제다. 지식 습득의 채널이 너무나도 다양한 지금이지만 책을 전부 대체하긴 쉽지 않다. 글자만 존재하고, 내가 이해 안 되더라도 조정해주지 않고, 조명도 적당히 밝아야 하고 그래서 잠들기 보기 전에는 기립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으며, 두 팔이 자유롭지 않게 되고, 들자니 팔이 아프고 내려놓자니 목이 아픈, 이 불편한 지식의 도구는 고유한 영역이 있다. 정보 전달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이 형성되고, 가치가 바뀌고, 행동이 바뀐다. 그야말로 읽는 것이 내가 되는 것이다. 물론 SNS 속 돈 잘 버는 얼치기 강사나 설교자들에 의해서도 세상 보는 눈은 만들어지긴 하겠으나, 너무 자극적이고 피상적이어서 독서만큼의 깊은 맛은 없다.


콩나물 독서


하지만 독서를 너무 진중하게 따지다 보면, 무거움에 가라앉고 만다. 내가 고등학생 때 사서 선생님께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책은 읽었는데, 생각보다 머리에 많이 안 남는다는 하소연이었다. 그때 사서 선생님께서는 콩나물에 물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시골에 자라서 콩나물에 물을 주는 게 뭔지 잘 알고 있었다. 콩나물을 구멍 뚫린 채반이나 소쿠리에 담고, 아래에는 고무대야 내지 볼 같은 걸로 받친다. 그리고 물을 계속 그 위로 붓는다. 쪼르르 붓기만 하면 며칠 사이에 쑥쑥 자라는 것이다. 물에 담긴 것도 아니고 샤워처럼 지나치기만 하는데, 어느새 크게 자라 있다.


그때 만약 선생님께서 도해 조직자니 대치, 창출이니 하는 이론적인 방법을 제시하셨더라면 독서에 멀어졌을 수도 있을 듯하다. 그 조언은 이후에 고등학교와 대학, 직장에서까지 독자로서의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줬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부담감에 시작을 못하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스치듯이 만남을 반복해나가는 것이 습관이 되고, 그래야 나 자신도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종종 학생들에게 그 말을 인용하곤 한다.


때로는 갈팡질팡이 정도


그런데 동시 한편으로는 상충되는 조언을 한다. 구조화, 요약, 쓰기와 결합한 통합적 활동 등 효율은 좋고, 부담은 큰 방법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래야 피상적인 오독 대신 정독과 창의적인 오독도 가능해진다. 브런치에 있는 이 수많은 독서감상문만 봐도 좋은 독자가 되기 위해선 결국 정교화와 고도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독서에 관한 조언을 하면서 나부터 갈팡질팡하다보니, 정작 실제로 독서를 하는 것에서 멀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어느 하나를 콕 집어, 본질로 돌아가자고 외칠 수도 없다. 여전히 지금 보기에도 둘 다 중요한 독서 태도이기 때문이다. 나도 헷갈리는데, 듣는 학생이나 그걸로 훈계하셔야 하는 부모님은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가늠도 어렵다. 그래서 결국은 어떤 경지를 지향한다기보다 어떨 때는 가볍게 읽고, 어떨 때는 진지하게 파고 들고, 또 어떨 때는 독서를 외면한 채로 지내길 반복할 것 같다. 때로는 갈팡질팡이 정도(正道)가 된다. 그래도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독서를 하며 콩나물에 물을 붓던 그 청량함을 느끼기를 소망하며 책상 위에서 며칠째 넘어가지 않은 책 한 페이지를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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