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국인 원어민 교사의 편지
우리나라와 가까운 중국 도시는 비행기로 2시간이 채 안 걸리지만, 첫 중국 방문은 유럽이나 미국보다도 늦었다. 가까운 일본과 달리 특유의 심리적 장벽으로 인해 미뤄왔었다. 구글이나 여러 앱들이 되지 않고, 지하철에서도 이루어지는 소지품 검사 등이 낯설고 어색했다. 그래도 관광도시를 표방하며 공안의 경계가 삼엄한 상하이에서 며칠 있으니 적응이 되었는데, 인근 도시인 쑤저우를 가니 또 달랐다.
반문경구라는 관광지에서 디디택시를 부르려 하는데, 어떤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눈치로 파악해보니 표 2장을 한 장 가격에 팔겠다는 말인 것 같았다. 이미 보고 온 나는 ‘워 쓰 한궈런’이라고 말해봤지만, 전혀 아랑곳 않고 중국어로 더 강하게 나와서 당황했다. 중국 아저씨의 갑작스러운 압박에 생존 본능인지, 10년 전에 배웠던 중국 단어들이 생각났다. 워 칸 러. 이미 봤다고 하니까 판매왕 아저씨도 그제서야 물러났다. 역시 외국어 학습은 생존 외국어가 가장 효과적인 모양이다.
짧은 중국어를 배웠던 건, 10년 전에 같은 교무실에 중국인 원어민 선생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원어민이 있어도 처음 인사나 하고 금방 어색해지기 쉽다. 왜냐면 나는 중국어도, 영어도 뭐 하나 자신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나이 지긋하신 노선생님께서는 한자로 와서 필담도 하고 그랬는데, 한자마저 자격증만 따고 다 잊어버린 나는 전반적으로 어색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러다 나의 자세를 고쳐잡게 한 건 한 학생이었다. 명랑하지만 성적은 매우 낮은 녀석이 와서 ‘하이’ 외치고, 맥락 없이 자기 말만 하다가 가는 것을 관찰했다. 아차 싶었다. 외국어는 그렇게 배우는 거라고 학생들에게 말했는데, 정작 나는 실천하지 못했던 것이다. 말로만 주장하는 나와 달리 행동으로 옮기는 제자에게 가르침을 얻어 나도 어색하지만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파파고로 문장을 번역해서 어설피 말을 걸었다. 성조 같은 건 진작에 포기했다. 일단 말 거는 시뮬레이션만 머릿속에서 몇 번씩 돌리고서야 다가갔다. 문제는 그렇게 말을 걸어도 돌아오는 대답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아~’하고 어색하게 다시 돌아가야 했던 것이다. 특히나 다른 선생님들의 시선이 있어서 말을 건다는 게 여간 민망한 게 아니었다. 남들이 신경 쓰는 가운데 어설픈 외국어로 말을 거는 것도 부담스럽고, 심지어는 이성적인 호감 있냐는 억측까지 견뎌야 했다. 정작 나에게 모범을 보인 우리 제자 스승은 흥미가 떨어졌는지 더 이상 말 걸러 안 왔지만, 그래도 나는 일년 내내 불편함을 꾹 참아가며 아주 조금씩 대화를 해갔다.
원어민 선생님도 중국어 교사말고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없었기에 이런 시도를 반갑게 받아줬다. 가끔은 내가 포청천 주제가 불러서 반가워도 하고, 우리말과 중국어의 우산이 발음이 똑같다는 말도 해줬다. 자신의 출신 도시에 대해서도 말해줬는데, 삼국지를 좋아하는 나는 옛 도시 강하라는 사실에 반가웠다. 손견 사망한 곳이라고 신나서 얘기했는데, 오히려 그 선생님이 삼국지를 몰라서 머쓱했던 기억도 있다. 참고로 그 도시는 중국 우한이다. 10년 전에는 삼국지 도시로 공감했었지만, 지금은 다른 의미로 유명해지긴 했다.
그렇게 해서 1년이 지났다. 원어민 교사가 돌아가는 날이 되었을 때, 인터넷 번역으로 편지를 썼다. 별로 늘지 않은 실력으론 편지를 쓸 수 없었기에, (지금만큼의 자연스러움은 부족했던) 구글 번역과 파파고를 이용했다. 그랬더니 원어민 선생님도 나에게 편지를 써 주었다.
○○○ 선생님 안녕하새요. 나는 중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분도 한국어가 어려웠는지, 한 문장 만에 말 놓는 사이가 되어버리긴 했다. 편지에는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솔직하게 적었고, 말을 걸어주고 챙겨줘서 고맙다고 했다. 살면서 외국인과 편지를 주고 받을 거란 생각을 해보지 못했기에 감동을 받았다. 조악한 문장이 때론 유려한 문장보다 큰 울림을 줄 수 있음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 김에 중국어 자격증인 HSK를 따야겠다는 계획도 세웠지만, 그 다음 해에 사드 분쟁과 한한령이 생겨서 괜히 화가 난 중국어 공부를 포기했고 그 결과 지금까지도 실력이 늘지 않았다.
그래도 그 덕에 나에겐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전까진 중국은 짱×, 대만은 섬짱×라는 식으로 멸칭을 종종 쓰곤 했다. 뉴스와 인터넷을 통해 유발되는 분쟁을 보면서 외집단에 대한 욕설을 하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듯하다. 하지만 일 년 간의 교류를 통해 원어민 교사 역시 낯선 곳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재미있는 것에 흥미를 보이는 같은 인간임을 느꼈더니 그런 말을 쓰기가 어려워졌다. 아마 어설픈 중국어를 쓰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생각의 전환이 가능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중국어를 배웠더니 중국인이 아니라 같은 사람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영어 학원도 다녀보고, 토익 시험도 보고, 영어 앱도 결제해봤지만, 결국 산발적인 시도로만 끝나긴 했다. 그럼에도 영원한 숙제처럼 외국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매년 갱신하곤 한다. 다시 사람 간의 교류가 이뤄지길 기대하면서, 그리고 14억 인구 사이를 오가다 우연히 원어민 선생님을 만나서 덕분에 외국어 공부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상상하면서, 1년치 결제해놓고 2달 이용한 외국어 앱을 또 즐겁게 결제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