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 이방인과 메이커 모르는 남자

<Englishman in New York>과 <Nerdy Love>

by 가장귀해하고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나에게 스팅의 노래 <Englishman in New York>의 가사 legal alien은 무척 어색하게 느껴진다. 에일리언이라는 어감이 주는 연상적 의미도 있거니와, 대응할 우리말을 찾기도 어렵다. 합법 외국인? 적법 이방인? 뭔가 불법체류자, 불법이민자라는 말은 있어도, 그 반대편 개념에 합법이라는 말은 굳이 잘 쓰지 않으니 말이다. 찾아보니 legal alien은 우리로 치면 등록외국인 정도의 행정용어이고, 그때 미국에서는 일반 대화보다는 법이나 행정용어에 쓰였다고 한다. 하지만 마치 공식 용어인 ‘쉬었음 청년’의 미묘한 어감이 청년세대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듯, 노래의 화자도 ‘legal alien’이라는 시스템 용어에서 미묘한 뉘앙스를 느꼈나 보다. 법적으론 문제 될 건 없지만(legal), 그 속에서 심적으로 이질감을 느끼는(alien) 자신의 처지를 투영하며, 어색한 말인데 이상하게 적절하다고 느끼지 않았나 싶다.


합법이방인


커피 안 마시고 홍차 마시고, 한쪽만 구운 토스트를 먹고,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자신의 행동을 언급하는 걸 보면,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도 적잖이 눈치를 받은 모양이다. 현실에 대입해서 우리나라 동네 카페에 가서 굳이 티백 말고 내린 녹차 마시겠다고 하고, 중절모 쓰고 다니는 일본이나 중국 사람 있으면 눈꼴 시릴 것 같긴 하다. 그럼에도 화자는 자기 스타일을 지키면서, 무시를 감당하고 매너를 지키라고 한다. 그리고 유명한 후렴구를 반복한다.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


스팅의 멋진 목소리와 영국인, 뉴욕이라는 요소 때문에 가사를 생각해 보기 전까지는 그런 소외감과 자기를 지키는 일에 관한 노래일 거란 생각도 잘 안 들었다. 하지만 영국 신사조차도 아시아권 사회에서 사회적 눈치를 견디는 사람이랑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하니 새삼 의외란 생각이 든다.

가사대로 주변 사람이 뭐라건 나답게 행동하기란 쉬운 게 아니다. 명시적으로 암묵적으로 되먹임(이때는 피드백이라는 말보다 더 적절한 듯하다)이 돌아오기도 한다. 암묵적으로도 관습과 아비투스가 있고, 자체 결성된 비공식 동료 평가단이 존재한다. 그런 환경이 형성되어 학창 시절부터 직장 생활까지 타자의 시선을 학습한다. 그 덕분에 친하지도 않은 직장 동료의 축의금을 내는 것을 온갖 시뮬레이션을 돌리다 자의 아닌 자의로 내는 사람이 되어버리곤 했다. what they say를 상상하는 일은 항상 yes matter했던 것이다.



메이커 잘 몰라!


스팅의 노래가 눈치를 받아도 단단하게 자신을 잘 지켜낸다면, 래퍼 pH-1의 노래 ‘Nerdy Love’는 조금은 더 의기소침해진 모습을 보인다. 화자는 멋지지도 않고 Real Man도 아닌, 가진 것 없고 남자답지 않은 남자친구다. pH-1 말고 백예린의 팬이어서 들은지라 가사를 귀담아 듣지 않았는데, 흘려드는 와중에도 유독 귀에 감긴 구절이 있다.


어제 골라 놓은 옷을 Dress up / 그냥 단정해 잘 몰라 메이커 난


해질녘을 좋아한다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며 예쁜 옷을 차려입는다. 이때 메이커는 잘 모르고 그냥 단정한 옷을 입는다는 단순한 문장이 나에게는 신선한 일침으로 다가왔다.


<레이디 두아>만큼은 아니어도 남자들 사이에 청소년기, 청년기에 어떤 스타일에 대한 열위는 존재한다. 유행과 브랜드가 캐주얼과 정장 사이에 소위 계급과 티어 식으로 정리되곤 한다. 잘 모르는 입장에서는 난해하기도 하고, 주눅이 들기도 한다. 정장에 이어지는 구두의 스타일을 논하는 걸 들을 때에 나는 까막눈의 부끄러움 같은 걸 느끼기도 했었다. 비슷하게 흉내를 내보려고 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그런데 <Nerdy love>의 화자는 아주 간결하고 명쾌한 해답을 내놨다. 그냥 기세로 모른다고 당당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면 되는 걸, 왜 주눅 들거나 감추려고만 했나 싶었다.


가치관이나 신념은 차치하더라도, 복장과 화법 같은 부분에서도 내 것을 고수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이 이질적이거나 세련되지 못할 때에 꽂히는 남들의 미묘한 시선을 견디는 것도 쉽지 않다. 물론 갖추면 그들에게 동화되는 데에 도움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걸 못 따라잡는다고 자책하고 위축되며 지낼 필요는 없겠다. alien이지만 legal하고, nerdy해도 은근 자기 스타일이 있는 두 화자처럼 어울리는 건 어울리는 대로, 서툰 건 서툰 대로 둬야겠다. 그럼에도 오래된 습관이 있어서 쉽진 않겠지만,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를 만트라처럼 외워 볼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외국인을 외국인으로 보지 않게 하는 외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