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에 월백하고>와 봄 노래들
밤 산책을 하다가 걸음을 늦춰본다. 조명에 비친 벚꽃이 만개한 걸 보니 반갑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과 하얀 벚꽃의 조화를 감상해 보면, 흑백만으로도 이렇게나 화려하고 매혹적일 수 있음이 새삼 감탄스럽다. 수묵화마냥 색을 덜어냈기에 그 위엄이 더한다.
벚꽃이 흰빛으로 만개하는 기간은 생각보다 짧다. 같은 봄이더라도 한로로의 <입춘> 같은 초봄부터 김윤아의 <야상곡> 같은 늦봄까지 그 양상이 다양해서, 자연색에서도 드문 흰색으로 만개한 시기는 봄 중에서도 아주 일부이고, 금방 붉은 빛이 돈다.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이 시기는 놓치지 않고 밤 산책을 챙기는 편이다. 작년에는 그런 의미로 야간 방과후를 듣는 아이들을 카페에 데리고 나가 해지기 전까진 수업하고, 해진 뒤에는 벚꽃 아래를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눴었다.
이 계절을 찬미하는 노래와 시가 많지만, 나는 고려시대의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를 떠올린다. 형제들이 백년, 천년, 만년, 억년이고(실제), 그 다음 단위로 이름 지은 이조년의 이 시조는 다정가라고도 불린다. 종장에서 다정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원문을 쉽게 풀어보면 다음과 같은 느낌이다.
배꽃에 달빛이 하얗게 빛나고, 은하수가 흐르는 자정에
나뭇가지 끝에 걸린 봄 기분을 접동새가 알까 싶지만
정(감성)이 많은 것도 병인지 이 밤에 잠 들지 못해
수업을 준비하며 곱씹어보니, 다른 시조들과는 결이 많이 달랐다. 충효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고전시가들 사이에서, 그 감각이 너무나 현대적이다. 가령, 이름부터 봄을 즐기는 노래인 <상춘곡>조차도 봄을 즐기는 방식이 정형화되어 있고, 처사적인 생활모습을 드러내는 성격이 강하다. 반면 이 시조는 이미지를 확 환기하며 시작한다. 가로등 빛에 빛나는 벚꽃도 화려한데, 달빛에 빛나는 하얀 꽃은 오죽할까. 게다가 은하수까지! 그러다 나뭇가지 끝에 닿는 세심한 시선도 꽤나 높은 감수성이라 세련되었다. 그리고 가장 하이라이트인 종장에선 다정도 병이라 잠들지 못한다는 자기고백이 있다. 다른 시가에서 ‘봄 좋아. 임금님 좋아. 만족만족. 굿굿. 하오하오’라고 하거나, 임금님 걱정, 나라 걱정에 잠 못 든다고 하는 것이 보통인 걸 생각해보면, 이렇게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노래가 있나 싶고 그래서 귀하고 반갑기도 하다.
물론 전형적으로 해석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하지만 나는 달을 보는 소년의 동경 같은 감수성이 있는 시라고 생각했다. 알 수 없는 이 떨림과 함께 이 거리를 둘이 걷는 <벚꽃엔딩>과 다르게, 어느 인적 드문 주택가 골목에 담장 너머로 핀 벚꽃 나무를 보며 느끼는 감성에 가깝다는 감상이 들었다. 그래서 노래도 <꽃송이가>의 분위기보다는 유키 구라모토 <Meditation>가 더 어울리지 않나 생각했다. 이처럼 철저히 주관적으로 즐길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는 점이 이 시의 매력이다. 어떤 좋은 영화는 너도나도 해석과 관련 경험을 얹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작품에 대한 기계적인 해석과 투박한 정답이 없으면 사실상 유지되지 않는 구조에서 일하고 있으면서, 이런 자유를 즐기는 게 모순이기도 하다. 아주 유명한 우리나라 사립대 국문과 교수님도 작품을 소개하며 김C라는 가수의 노래를 함께 제시했더니, 국문과 전공 학생마저 시큰둥해서, 실망감에 차게 식었다는 일화를 들려준 적이 있다. 하기사 학생들은 아무리 감수성이 풍부한 나이래도 공부할 게 너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아 음미해 볼 여유가 없을 것이다.
학생들은 볼 작품이 너무 많고, 일반인은 생업으로 바쁘다. 그럼 작품을 편하고 자유롭게 특권은 나한테나 주어진 것인가 싶다. 만개한 벚꽃을 보면서 느끼는 지금의 기분이, 700년 전 어떤 수염 기른 고려시대 성리학자와 비슷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심지어 배꽃은 4월 말에 피는데도 말이다). 마치 종이 양 끝에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만날 일 없던 점이 둥글게 말아 만난 듯하다. 고려 시대 사람도 그럴진대, 하물며 정장 입은 연구관님, 식당 사장님, 민원실 직원 등도 이 풍경을 보며 같은 기분일 것이다. 같은 공간이지만 나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타자들도 같은 걸 보고 즐기는 마음은 하나일 거라 생각하니, 말 그대로 공통의 감정, 공감이겠다. 이런 게 벚꽃의 힘이고, 문학의 효용이지 않을까.
만개한 벚꽃을 보며 내 맘대로 생각할 자유가 금세 지나가기 전에 또 시간 내어 다정하게 바라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