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슨과 카르페디엠
한 20대 중반쯤에 시외버스에서 지갑을 잃어버려서 그 버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 적이 있다. 기다리다 엉뚱한 궁금함이 들었다. 버스 기사님들은 일하는 게 재미있을까. 사회적 지위와 대우를 떠나서, 반복적으로 운전하는 일이 무료하고 권태롭지 않을까 싶었다. 아직 학생이던 시기에, 아침 일찍 일을 나가서 저녁에 돌아와 TV를 보다가 일찍 주무시는 부모님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인생이란 원래 일만 하다 잠깐 시시하게 쉬는 건가. 그렇다면 너무 허망한 일인데, 왠지 그럴 거 같아서 맥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애니메이션 <심슨>에는 이런 시각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S23 E19 「A Totally Fun Thing Bart Will Never Do Again) 심슨 가족의 철부지 아들 바트 심슨이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 꿈에 그리던 크루즈 여행을 갔지만, 다시 시시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게 두려워 소동을 일으키고 남극 어딘가로 일가족이 쫓겨난다. 그 와중에도 바트는 펭귄을 보면서 새끼를 기르려 모든 시간을 소비한다며, 얼음에서 미끄럼 타는 펭귄을 보고는 네 여생이 얼마나 지루할지 보여주는 짧은 순간이라고 냉소한다. 그러자 가족들은 저마다의 성향대로 바트에게 한 마디씩 해준다.
“그래. 물론 인생은 고통과 고난으로 가득해. 하지만 요령은 순간에 주어진 몇몇 완벽한 경험들을 즐기는 거야”(리사)
“그래 멍청아. 재미에 대해 생각하는 건 그만두고 즐기는 거야!”(호머)
이어 가족들은 얼음 위에서 미끄럼을 탄다. 이후 공원에서, 언덕에서, 눈길에서, 뭔가 비상 상황이 발생한 비행기에서도 미끄럼을 타며 즐기는 바트를 보여준다. 그리고 아까 중간에 나왔던 노년의 바트가 그 사진들을 끌어안으며 말한다. “어찌나 대단했는지”
다들 인생을 즐기라곤 하는데, 못 즐기는 것 같아 겁이 날 때가 있다. 청춘은 빛나는 것이라는데, 아무리 용써봐도 나는 희미한 빛인 것 같아 두려울 때가 있었다. 인생을 즐기고 감상하는 것은 매번 유예하고, 업무만 신경 쓰거나 반대로 도피하여 타임킬링하며 즐기는 것에선 멀어진다. 그러다 지금 잘 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 물으면, 주저하고 주눅이 든다. 하지만 호머의 말대로 뭘 해야 더 좋은 인생인지 나누고 고민하는 것보다 일단 가능한 선에서 즐기는 게 더 나은 답이다. 오히려 그 문제를 애써 풀지 않으려 하면서, 즐길거리를 찾는 자세가 훨씬 정답에 가까운 일인 것이다.
그래도 진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힌트가 하나 있다. 로마 시대의 호라티우스가 쓴 송시 1권 11편에 있는 내용이다.
묻지 마라, 아는 것이 불경이라, 나나 그대에게
레우코노에여, 생의 마지막이 언제일지 바빌론의
점성술에 묻지 마라. 뭐든 견디는 게 얼마나 좋으냐.
유피테르가 겨울을 몇 번 더 내주든, 바위에 부서지는
튀레눔 바다를 막아선 이번 겨울이 끝이든, 그러려니.
현명한 생각을. 술을 내려라. 짧은 우리네 인생에
긴 욕심일랑 잘라내라. 말하는 새에도 우리를 시새운
세월은 흘러갔다. 내일은 믿지 마라. 오늘을 즐겨라(carpe diem).
carpe는 원래는 수확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지금 열매가 무르익은 것을 미루지 않고 따는 것이다. 계절마다 다르겠지만, 미루다간 제때를 놓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한창 공부하던 시절에는 어떻게 ‘현재를 즐기는 삶’이 가능할 수 있는지 의아했다. 그럼 내일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공부는 포기하고, 게임이나 하라는 건가라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지금만 할 수 있는 어떤 크고 작은 즐거움, 그마저도 항상 있는 건 아닌 ‘몇몇 완벽한 경험’을 관조하거나 뛰어들어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상의 업을 하면서도 현재를 즐기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 깨달음 덕분에 무난을 약간 벗어나 즐기는 태도가 생겼다. 마을 공연에 노브레인이 왔을 때, 30대 후반에 앞자리에서 스탠딩도 해봤다. 시작할 땐 좀 창피하고 쭈뼛거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몇 번의 주저 끝에 앞으로 나가서 뛰어보니 남들의 시선이고 뭐고 마냥 즐거울 뿐이다. 이번 주에도 일이 몰리지 않는 시간에 외출 써서 벚꽃터널로 유명한 길까지 운전했다. 동네의 앵그리 레이서들조차 만개한 벚꽃나무길에선 다들 규정 속도의 절반으로 간다. 끽해야 벚꽃이지만, 벚꽃을 만끽한 것이기도 하다. 덕분에 퇴근시간보다 1시간 더 일하고 귀가했지만, 어쩐지 어깨는 덜 무겁고 발걸음은 평소보다 더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