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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da Jul 27. 2023

[서평] 사람다운 것은 무엇입니까

구병모 《한 스푼의 시간》


아들이 무너졌다. 무너진 아들을 대신해 바다 건너 로봇이 왔다. 분명 로봇인데, 은결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샘플의 한계에서 오는 기계적 결함 혹은 오류로 치부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모여 은결을 더욱 사람답게 만든다. 사람. 한 스푼의 세제처럼 은은하고 조그만 슬픔이 녹아있는 이 소설은 수백 수천 번을 해도 모자란 질문들, 그러나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들을 로봇을 통해 스스로에게 묻게 한다. “사람다운 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1. “그렇게 부서지기 쉬운 거라면 사람들은 어째서 가족을 이룹니까.” (p.51)

사람과 사람. 유대(紐帶)라는 끈으로 맺어진 관계. 어째서일까. 우리 인간은 하루에도 수많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려 애쓴다. 하지만 ‘관계란 물에 적시면 어느 틈에 조직이 풀려 끊어지고 마는 낱장의 휴지에 불과하다.’ (p.51) 풀리지 않는 매듭이 없듯, 관계란 결국 소멸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관계를 이루는 것은 너무나 소모적인 일처럼 보인다. 수학적으로 생각하면,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더 효율적인 셈이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인간은 관계를 맺는다. 왜일까. ‘인간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로봇 덕에, 그동안 당연하게만 받아들였던 가치관들과, 온몸의 근육에 배어 있어 의문을 가져본 적 없는 습관들 하나하나가 새삼스레 당혹스러워지며, 무엇보다 인간으로 한평생을 살아왔지만 인간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곤 실상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p.54)

 

2. “무너져 내린다는 느낌은 어떤 것입니까?" (p.111)

건물이 무너졌다. 은결은 그 정도로 밖에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 반숙된 달걀노른자처럼 ‘데어버리도록 뜨겁고 질척거리며 비릿한 데다, 별다른 힘을 가하지 않고도 어느 결에 손쉽게 부서져버리는 그 무엇.’ (p.115) 그런 점에서 인간과 기계 사이의 갭은 너무나 깊고, 그 갭을 메우기엔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짧다. ‘오빠’가 ‘너’가 되는 시간으로는 메울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이 무너지면 무너진 그 사람이 죽나요. 아니면 옆에 있던 그 사람이 숨을 거둡니까.’ (p.227)라는 은결의 질문이 더욱 먹먹해지는 까닭이다.

 

3. 그를 온몸으로 책임질 수 없다면, 그의 짐을 나눠지지 못할 것 같으면 그에 대해 궁금해해서는 안 된다. (p.203)

섣부른 위로는 무엇 하나 위로가 될 수 없다. 세주가 한 생명을 전적으로 책임지게 되면서 알게 된, 조금은 슬픈 사실이다. 이렇듯 사람은 살아가면서 그리고 조금은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면서 사람다움을 잃어 간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배려는 베푸는 게 아니라 그저 실행하는 것’ (p.161)이라는 간단한 사실조차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기계는, 은결은 사람다움을 얻는다. 은결은 ‘그녀가 견디고 있는 그 열기와 고통이 어떤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그녀를 미소 짓게 하는지…… 알고 싶다.’ (p.67) 그렇게 0과 1 사이의 간극 깊숙이 숨어있던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4. “괜찮아. 형태가 있는 건 더러워지게 마련이니까.” (p.156)

세탁소. 삶에 치이고 지친 때를 씻겨주고 구겨짐을 펴주는 곳. 하지만 새것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래도 사람들은 지우고 또 지웁니다.” (p.156)라는 말처럼, 우리는 현재를 보다 새롭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완전한 암전이야말로 로봇이 꿀 수 있는 유일한 꿈’ (p. 229)인 것과는 달리 인간의 꿈에는 밝고 환한 조명이 가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힘이 들면, 잠시 쉬었다 가도 된다. 꿈은 지친 몸을 뉘일 수 있는 꿀 같은 공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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