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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tda Jul 30. 2023

[편지] 작은 나무

오늘 밤엔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아, 일단 펜을 들었어. 아침에는 잔바람이 불어와 창문을 두드렸어. '혹시 너인가' 했지만 창밖엔 실레의 그림처럼 작은 나뭇가지에 이파리만이 몇 개 남아있을 뿐이었어. 언젠가 가장 가고 싶은 나라를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오스트리아라고 답하던 때를 아직 기억해.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실레라며,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문이라고 말하는 너의 눈이, 아직 빛나고 있어. 미련은 이미 떠나보낸 감정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림자처럼 제 발 밑으로 숨어 들어와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거였어. 이토록 나는 나약한 존재였던 거야.


얼마 전에는 실레의 그림을 보러 오스트리아에 다녀왔어. 아쉽게도 빈에 머물던 때에 실레의 특별전이 도쿄에서 진행 중이더라. 때문에, 자화상- Self-Portrait with Chinese Lantern Plant, 1912-을 비롯한 실레의 주요 작품들이 바다 건너 도쿄로 넘어가 있었어. 그래도 다행인 건, 레오폴드 미술관에는 실레의 그림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었어. 실레를 느끼기에 충분할 정도로. 하지만, 여기에도 작은 나무-Little Tree: Chestnut Tree at Lake Constance, 1912-는 없더군.


네가 떠나던 밤, 비가 내리던 그 밤에 광야에 내비치는 숨결처럼 찬란하고 잔혹한 이야기는 시작되었어. 오지 않는 유월의 봄을 기다리며 작은 나무는 그렇게 백색의 매를 품었어. 하지만 흰 매는 그 누구도 감히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더 높은 곳으로 날아갔어. 그렇게 작은 나무는 혼자가 되었지. 그래도 작은 나무는 백색의 매를 원망하지 않았어. 흰 매란 본디 자유로운 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이기에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기에 잠시라도 품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작은 나무는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야.


지난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쉽게 답을 하지 못했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데 우연히도, 최근에 이와 비슷한 질문을 다시 받게 되었어. 그리고 이번 질문에 답을 하고 나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보다 선명하게 그려지는 기분이야.


Q1. 현재 가장 관심 있는 주제가 무엇인가요?

A1. "너에 대한 나의 마음". 얼마 전까지 너는 '업(業)'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멈춤'이었다가, 지금의 너는 온전히 '한 사람'입니다. 이렇듯, 지금의 저는 온전히 한 사람에 대한 온전한 나의 마음을 더 명확하게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금은 음악을 듣고 있어. John Field의 Nocturne. 종종 잠이 안 올 때, 이 곡을 듣곤 해. 눈을 감고 들으면 몸을 휘감던 잡념들이 모두 사라지고, 품고 있던 모든 긴장이 이완되는 위안을 받거든. 하지만 지금 내가 품고 있는 이 생각을, 이 곡으로 씻어버릴 수 있을까. 그래서 전 지금 이 보내지도 못할 편지에 쏟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이렇게 편지에 담아 아무도 뜯지 못하게 밀봉하고 나면, 그렇게 함으로써 정말 모든 게 깨끗이 사라진다면.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나는 나에게 남은 한 그루의 작은 나무를 열심히 돌볼 생각이야. 언젠가 이 작은 나무가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고, 그렇게 커다란 세계수가 된다면, 백색의 매도 언제 어디서든 이 나무를 볼 수 있게 되겠지. 그럼 그때를 위해, 안녕.


이천십칠 년, 가을 그리고

이천이십삼 년,

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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