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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쟁마미 May 20. 2016

편식하는 아이는 없다

아이의 결핍에 집중하기 보다는 가능성에 집중하자

오늘 아침에 '순두부 김치청국장'을 끓였다.


실은,

나는 요리를 ''하는 주부도, '즐겨'하는 엄마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맛있게 먹고, 웃으면서 먹을 수 있는 요리는 주부인 나의 손에서 나와야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잘하지 못하는 요리이지만 '기꺼이 하는' 엄마 그리고 주부에 가깝다.


우리집 주방 조리대 한쪽 켠에는 작은 독서대가 하나 서 있다. 신혼 때부터 요리책을 보는 습관이 들어서 십년 넘게 책을 보면서 요리하고 있다.


새댁일 때에는,

각 재료들의 그램수를 일일이 저울로 재어서 음식을 할 정도로 많이 서툴렀다.


결혼 전에 친정에서 살 때는 엄마가 해주는 밥에 숟가락만 얹어서 먹던 딸이었으니 할 줄 아는 요리가 하나도 없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요리는(요리라 이름 붙이기도 민망하지만)고작 달걀후라이정도가 다였다. 오죽했으면 김치찌개에 설탕을 넣었을까! (<성장하는 엄마 꿈이 있는 여자>에 에피소드 참고.)


하지만 세월의 힘은 정말로 무서운거다.

무엇이든지 하고자하는 마음으로 달려드는 사람에게 이 세상은 길을 내어준다.


이제는 요리책을 안보고도 할 수 있는 요리가 생긴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아마 다른 주부 그리고 엄마들도 그러지 않을까?


평상시 먹던 밑반찬이 반갑지 않을 , 아이들이 "엄마, 뭐 다른 반찬 없어요?" 할 때 나는 요리책을 열어서 평소에 안 먹, 특별한 음식을 해서 내곤 한다.


오늘은 그게 바로 '순두부 김치청국장'이었다. 이제는 요리책을 열고 휘리릭 한 번 읽은 다음, 들어갈 '양념의 종류, 갯수'만 보고도 만들어낸다. 물론 예전에 비해서 조리시간도 많이 단축되었다.


앞으로 십 년이 더 흐르면 아마 요리책을 보지 않고도 만들어낼 수 있는 음식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지지 않을까하고 나 자신에게 기대해본다.


평소에는 자주 안 먹는 찌개라

오늘 아침상에 내놓는데 '아이들이 먹지 않으면 어떡하나'하고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아이들의 앞접시에 순두부만 큼직하게 덜어서 내놓았다. 거기에 촉촉해지게 국물을 넉넉히 담아서.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이 부드러운 순두부를 먹고, 국물에 목을 축이고 밥이 잘 넘어가길 바랐던 마음도 있었지만 먹고난 설거지를 하면서 나에게 찾아온 생각은 조금 달랐다.


우리 아이들, 익숙하지 않은 음식에서도

자신들이 먹을 수 있는 것부터 먹으며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던거다.


아이가 골고루 먹길 바라는 엄마의 욕심이 앞서

청국장 알갱이랑 김치며 대파를 듬뿍 떠줬다면 분명 아이들은 먹기전부터 눈살을 찌푸렸을 거다.


그리고 이내, 

"엄마, 이거 안 먹을래."했을거고. 그럼 는 무심코 이렇게 내뱉었을지도 모른다.


"편식하지 말라고 했지."

"음식은 골고루 먹어야지."


만약 아이들이 '먹지 않는 것'에 더욱 집중하고 있었다면, 그들의 '결핍'에 대해서 자주 언급을 하고 아이들을 편식쟁이로 몰아갔을 것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 마음 속에는

은연중에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잡을지도 모른다.


'나는 음식을 골고루 먹지 않는 사람이야.'

'나는 건강하지 않을거야.'

'나는 언제나 골골하겠지. 음식을 골고루 먹지 않았으니...'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키가 작을 게 분명해.'


하지만 오늘 아침 나는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것', 그 '가능성'에 더욱 초점을 맞춰서 음식을 떠 주었다.


순두부와 국물.


하지만 그 요리 안에는 청국장 특유의 맛도 들어가 있고, 대파에서 우러나온 영양소와 김치에서 나온 좋은 요소도 함께 어우러져 있다.


그걸 아이들은 먹어낸것이다. 그리고 식탁에서 이러한 긍정적인 경험의 횟수가 늘어갈수록 아이들의 입에는 익숙한 엄마의 맛 그리고 영양가 있는 밥맛이 자리잡게 될 것이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며 편식을 걱정한다. 아이가 먹지 못하는 것을 먹여보려고 갖은 노력을 한다. 조리법을 바꿔도 보고, 음식 재료를 아이와 함께 손질해보고 요리를 같이하기도 하고, 급기야 채소를 함께 키워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아이를 골고루 먹게하겠다고 하는 일련의 모든 활동들은 결국 아이에게 음식에 대한 좋은 기억, 긍정적인 경험을 키워주려는 것이다.


오늘 아침 엄마로서 나의 행동은 다른 엄마들에게는 어쩌면 아이들로 하여금 편식을 조장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아이가 먹는 것만 골라서 떠줬으니 말이다. 그것도 엄마가 자처해서.


하지만 엄마는 '부정'보다는 '긍정'의 힘을 믿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긍정의 힘으로 희망을 가지고 아이를 바라보아야 한다.


언젠가 해낼 수 있다고 믿으며,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어린 시절에 먹지 못하는 음식들이 꼭 하나 이상은 있었다. 질겅질겅, 물컹물컹, 오독오독한 식감이 싫어서 먹기전부터 순살을 찌푸리고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음식. 다들 있었지 않은가!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떠주며 마음으로 응원하는 엄마, 엄마의 편식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 언젠가는 골고루 먹게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아이와 식탁에 마주하는 엄마, 그 모든 마음은 출발점이 같다.


바로 '엄마의 사랑'이다.


Love is everything.


엄마의 깊은 사랑은 내 아이의 존재만으로도 감사하게 한다.


살아있어줘서 고맙고, 웃어줘서 고맙고, 자신이 먹을 수 있는 것, 먹을 수 있는 양만이라도 먹어줘서 고맙다.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그들의 마음 안에서 참사랑을 느끼며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 행복이 넘쳐서 자녀와 배우자에게까지 흘러가기를...그래서 그녀의 가정이 웃음으로 넘쳐나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 편식하는 아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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