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 남자가 연인을 믿지 못하는 이유

<회피형 남편의 세상>

by 나은진

시골의 한 구멍가게.

엄마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어린 아들은 돈 통에서 돈을 꺼내 무작정 뛰었다.

뛰는 이유는 단 하나.

딱 한 번이라도 과자를 사 먹고 싶었다.


어린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자

엄마는 닥치는 대로 물건을 들어 아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아팠다. 아프다고 해도 엄마는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때리고 욕을 하다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엄마의 분은 풀렸지만

어린 아들의 세상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엄마를 사랑했지만

누구보다도 두려운 존재가 엄마였고,

어떻게 해도 폭력을 피할 수 없음에

아이는 점점 무력해져 갔다.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듣기까지 30년이 걸렸다.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들여주면

내가 떠날까 봐

내가 무시할까 봐

겁났다고 했다.

나를 믿지 못해서였다.


결혼 전

엄마에게 받는 용돈을 아껴

엄마 몰래 6700만 원을 준 것도 나였고,

결혼 전부터 결혼 후까지

한결같이 도시락을 싸준 것도 나였으며,

나를 아는 누구에게도

단 한 번도 남편을 숨긴 적이 없었는데,

무려 30년 동안이나

이런 나를,

온전히 못 믿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하며,

남편이 했던 행동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내가 사기꾼으로 몰렸을 때에도,

내가 수술을 했을 때에도,

내가 마흔 살에 첫 아이를 가지고

하루 15시간씩 일을 했을 때에도,

그는 언제나 타인이었다.

그저 내 뒤에만 있을 뿐,

적극적으로 나를 방어해 주거나 돕지 않았다.

무언가가 내 머리에 스쳐지나갔다.


남편은 무력함과 하나였던 것.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는 폭력 앞에서

맞는 걸 견뎌내는 삶을 택할 수밖에 없었고,

지독한 무력함이

그를 당해도 그저 참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그에게 적극적인 행동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고,

이것이 남편의 숨기고 싶은 비밀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미안해요. 당신의 비밀을 공개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