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 남편의 세상>
남편과 사귀기 시작할 무렵,
나의 키는 168cm, 몸무게는 90kg이었고,
남편의 키는 174cm, 몸무게는 63kg이었다.
남편과 함께 다니면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했다.
하지만 남편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남편은 내게 늘 많이 먹으라는 말을 했고,
내가 좋아하는 빵을 책상에 자주 올려놨다.
나를 향한 남편의 눈빛은 항상 따뜻했다.
세상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남편이
내 눈에는 정말 용감해 보였다.
2년을 서울과 부산에서 떨어져 지내다
남편이 서울로 왔고, 그는 취직을 했다.
취직 후 남편동료와의 회식자리에
나는 항상 동행했다.
가도 되냐는 질문에
남편은 항상 당연히 된다는 말을 했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했다.
알고 보니 사람들은 나를 불편해했고,
외부인이
내부 행사에 참여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술자리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밤에 혼자 있기를 싫어하는 나를 위해
직장에서 눈치가 보이면서도
꿋꿋이 똑같은 행동을 강행할 수 있었던 그가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나의 판단을
의심하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학원을 함께 운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학부모 한 분이 나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고,
상대적으로 남편에 대해서는 감사함을 표현했다.
이 상황을 나에게 전해주는 남편의 표정에는
말할 수 없을 만큼의 큰 기쁨이 가득 차 있었다.
당시에는
나의 불편한 감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기쁜 감정에만 충실한 남편에게
아주 화가 났고 배신감이 들었지만,
남편에 대해 알아가면 갈수록
화는 의심으로 바뀌었다.
남편은 정말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맞을까?
이후로 나는 남편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나를 편안하게 생각하면서
남편은 조금씩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신에 대한 험담을 전해 듣기라고 하면
남편은
내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의 화를 표현했다.
험담을 곱씹고 곱씹으며,
험담을 했던 사람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옛날이라면 그는
입을 다물고 괜찮은 척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진짜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남편의 세상 속 타인은
믿을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고,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나의 약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약점을 빌미로 언제든 공격받을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길은
약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
약한 부분을 숨기는 것.
스스로 약한 사람이 아니라는
착각에 빠져 사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약한 감정을
자신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괜찮은 척하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