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 남편의 세상>
“일어나, 일어나라고!”
남편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귀에 대고 조용히 소리쳤다.
남편은 아이들과 함께 자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마흔넷,
2살, 4살 아이 둘에 육아도우미, 직원 1명과 남편까지
혼자 힘으로 이들을 책임져야만 했고,
1200만 원이라는 돈을 매달 벌어내야만 했다.
경제적 부담감 때문에
하루 4시간 이상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남편에게 일자리를 찾을 것을 요구했지만
남편은 찾고 있다는 말만 할 뿐
그 어떤 적극성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남편에게 더 많은 화를 내지 않기 위해
늦은 밤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집안을 정리해 놓을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니
남편은 또 자고 있었다.
남편에게 그토록 화를 내며
약속을 단단히 받았던 전날처럼
집안은 똑같이 어지러웠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남편의 무책임함에 대한 나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남편을 보기만 해도 화가 났다.
아이들 앞에서 화를 내면
아이들의 정서에 심한 손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였기에
화를 참으려고 애썼지만
남편의 사소한 실수에도 나는 화가 났다.
참을 수 없는 화,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 불안한 미래
매일매일이 캄캄한 터널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남편에게 나는 아주 이상한 여자였다.
자는 남편을 깨웠으면
남편에게 집안일을 시켜야 옳았다.
하지만 화만 내었을 뿐
지금이라도 집안일을 하겠다는 남편을 내가 막았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난 매일 15시간 이상 노동을 하고 있었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도 힘든 것이 분명했을 텐데
그렇다면 쉬어야 했을 텐데
남편에게는 일을 시키지 않고
다음날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내가 집안을 다 정리했다.
왜 그랬을까.
나에겐 남편과의 대화가 필요했다.
남편에게는 속마음을 몽땅 다 꺼내놓아도
그냥 편했고,
대화 후에도
나를 어떻게 볼까, 나를 욕하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남편의 시선은
나에겐 항상 그냥 안심되는 편안함이었다.
그래서 남편의 사과를 받고 나면
남편과 두세 시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이야기의 내용은
화가 나는 내 마음에 대한 것과
화를 내게 할 수밖에 없는 남편에 대한
이해에 가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남편도 나와 같은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달랐다.
남편은 사소한 실수에도 안절부절못하며,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더 큰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잦았다.
당시에는 남편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남편이 잘 이해된다.
남편은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신경 쓰며
나의 시선을 늘 의식하고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것,
그런데 그 누군가가 늘 함께 있는 가족일 때
불편감은 상당했을 것이고,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잠으로
남편이 도망갔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말한다.
이제야 당신을 오롯이 믿을 수 있다고.
자신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사람들로만 차있던 남편의 세상에
그냥 편안하게
자신을 내보일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생긴 것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