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개념 있게>
집을 짓고 나서 1년 후쯤인가? 누군가가 집을 방문했다. 정화조를 점검하러 왔다고 했다.
정화조를 열어보고 나더니 왜 이렇게 화장지가 많냐며 정화조를 청소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화조는 어떻게 청소해야 하나요?”내가 물었다.
그는 팸플릿하나를 주며 마음이 가는 업체로 전화해 보면 된다고 했다. 전화를 했다.
“정화조를 청소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예약을 하시면 됩니다. “
“가격은 얼마일까요?”
“정화조에서 나오는 용량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것저것 물어본 결과 만만히 않은 금액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뭔가가 이상했다.
집이 2 채여서 정화조도 2개인 데다가, 2개 모두 일반 주택용 정화조보다 오물처리용량이 큰 근린시설용 정화조였다. 또 집을 짓고 1년 동안은 일주일에 이틀도 채 사용하지 않았고 이 집을 사용하는 사람도 세 사람뿐이었는데 두 개의 정화조 모두에 화장지가 가득 찼다고? 손님이 많이 왔었나? 기억을 되짚어보고 또 되짚어봤지만 많은 손님이 왔던 기억이 없었다. 그럼 왜 이런 일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정화조 속 화장지….
.
정화조 속 화장지….
.
화장지라…..
.
갑자기 변기가 떠올랐다.
집에서 나와 서울에서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화장실에 휴지통이 있는 것이 싫었다. 화장실에서 내가 사용했던 휴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치우는 일은 나에게 곤욕이었다. 다른 쓰레기 냄새는 그래도 참을 수 있는데 정말이지 화장실 쓰레기 냄새는 너무 역했고, 설사 냄새가 나지 않더라도 냄새가 상상이 되어서 화장실 쓰레기통을 볼 때마다 곤욕스러웠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사용한 화장지 이외의 쓰레기들은 화장실에서 챙겨 나와 따로 버렸고, 손님이 올 때에만 화장실에 휴지통을 두었다. 이 습관을 전원주택에서도 그대로 유지했다.
정화조 뚜껑을 열어보았다. 화장실에서 쓴 화장지들이 정말 많이 쌓여있었다. 화장지는 시간이 지나면 물에 다 녹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니면 화장지들이 물에 녹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 남편과 내가 썼던 화장지들이 계속 적체되었는지도 모른다. 정화조 청소를 하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내가 화장실에서 사용하고 있는 화장지를 물에 넣어 확인했다. 진짜 잘 녹지 않았다. 폭풍 검색 후 물에 녹는 화장지를 찾았고 화장지가 도착하자마자 물에 넣어 녹는 속도를 확인했다. 과연 금방 녹았다. 화장지를 바꾸고 몇 달이 지나 정화조 검사원이 우리 집 정화조를 열었다.
.
.
.
“정화조 청소 하셨나 봐요.”
정말 기뻤다. 목돈을 아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욕실 청소할 때 귀찮아서 가끔씩 넣곤 했던 머리카락도 변기에는 절대 절대 넣지 않고, 설거지할 때 곰탕 기름이나 삼겹살 기름처럼, 뜨거운 물에서는 녹지만 상온에서는 굳어버리는 것을 하수구로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며 산다. 하나 더! 하수구에서 좋은 미생물들이 살게 하기 위해 주방세제에는EM용액을 타서 사용하고, EM용액으로 섬유유연제를 대신한다. 내 책임이 아니었을 때는 실천하기 힘든 것들이 온전히 내 책임이 되면서 습관이 저절로 바뀌었다.
내가 돈이 많았다면 그냥 편하게 돈으로 해결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쓰지 않아도 되는 돈을 쓰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재력이 나에게는 없는 탓에, 환경에 대해 더 개념 있는 여자가 되었다. 나쁜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