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대문이 없다.

<이상한 전원주택살이>

by 나은진

내가 끌리는 곳이 있었다. 차를 세우고 주위를 돌아봤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 결국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에 집을 지었다. 2차선 도로가 있는 곳. 마을의 중심에서는 좀 벗어나있는 곳. 경치가 좋은 곳. 이것이 내가 부지를 선택한 조건이었다.


집이 다 지어졌다는 연락을 받고 8개월 된 큰 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함께 도착했다. 원래부터 펜션처럼 쓰려고 했었던 곳이어서 잠만 잘 수 있게 되어있으면 되었다. 그런데 새 싱크대, 새 세면대, 새 옷장, 새 벽지 등등 모든 것이 새것이었고 쓰던 물건 그대로의 삶을 살아왔던 나에게는 기대 이상의 기쁨을 주었다. 이때 처음으로 알았다. 사람들이 신혼집을 알아보면서 새 가구를 들이고 인테리어를 하는 이유를.


그런데 다음 날, 내 마음에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왔다. 집 안에서 보는 풍경이 좋았고 새 집이 좋았지만 집에 있는 내내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익숙했던 아파트 생활이 아닌 낯선 환경, 낯선 집에서 오는 불안일까?’

‘집 주변에 사람이 살지 않는 것에서 오는 불안일까?’

‘외진 곳에서 어린 아기에게 생길지도 모르는 예측불허의 사건들에 대한 불안일까?‘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해 가며 불편한 내 감정을 읽어내려 애썼다. 불안을 느끼는 내 감정을 읽어내기까지는 했지만 허전함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문득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보았다. 우리 집에는, 있어야 할 대문이 없었다.


대문 없이 현관문만 있는 집. 그래서 누군가가 내 마당을 쉽게 침범할 수 있는 집. 이런 집이 우리 집이었고, 나의 불안은 대문이 없는 집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에서 비롯된 허전함이었다. 집을 지어준 분께 전화를 걸었다.

“대문은 언제 만들어주실 건가요?”

“대문이요? “

“네, 대문이요.”

“대문이 있으면 불편하실 텐데요. “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하는 내내 상대방에 대한 의심이 올라왔고, 전화를 끊고 나서는 더한 의심이 올라왔다. 대문이 있으면 불편하다는 그의 말이, 이윤을 더 보기 위해 대문을 만들어 줄 수는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대문을 그냥 만들어달라고 할 생각은 없었는데… 내가 직접 대문을 만들어야 하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를 만났다. 여전히 똑같은 말을 했다. 대신 구체적 설명이 이어졌다.

“사모님 댁으로 오는 길은 오르막이어서 대문을 달면 차가 들어오는 데 힘들어요. 오르막에 차를 세우고 대문을 열고 대문을 닫고 하는 일들이 생각보다 번거로워요. “

그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사모님, 일단 살아보시고 결정하세요.”


나는 살아보기로 결정했다. 살아보니 그의 말이 맞았다. 아이 둘을 키우려니 하루에도 세네 번씩 들락날락 거리는 날이 많았고, 아이들에게 다른 이슈가 생기기라도 하면 들락날락할 일은 더 많아졌다. 더군다나 오프라인 쇼핑이 불편한 지역에 살다 보니 택배가 자주 와야 했고, 우리가 대문을 만들면 택배기사님이 차를 돌리기도 불편했다. 하지만 여전히 있어야 할 대문에 없다는 것은 허전했고 불안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2년을 궁리하고 또 궁리했다. 고민 끝에 대문이 있어야 하는 자리의 앞마당에 있던 잔디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주차장을 만들기로 했다. 주차장이 생기면 우리 차가 대문 역할을 해줘서 대문이 없어서 생기는 내 불안이 어느 정도 해결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대문이 있어야 할 자리 양 옆으로 나무들을 심었다.


남편과 함께 이 작업을 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고 강한 노동을 요했다. 아이들이 없는 오전 시간에만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은 더 걸렸다. 바깥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본 적은 많지만, 나와 신랑이 주차장 만드는 일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이때 알았다. 이미 자리 잡은 잔디를 걷어내는 일이 얼마만큼의 힘을 요하는 것인지. 잔디 뿌리의 위력 앞에 나의 힘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었고, 잔디의 강력한 끈끈함을 끊어내고 차 2대를 댈 수 있을 만큼의 땅을 만들어야 하는 일은 남편의 몫이 되었다.


주차장을 만드는 일은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잔디를 걷어낸 자리를 평평하게 만들고 마사토와 자갈을 부었고, 테두리에는 디딤석과 시멘트를 사용해서 인도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1톤이 그리 많지 않은 양이라는 것을 눈으로 실감했고, 별 것 아니게 보이는 평평한 디딤석 한 개의 가격이 생각 이상으로 비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경계에 나무를 심는 일도 아파트 베란다에서 하곤 했던 화분갈이랑은 차원이 달랐다. 나는 나무 심을 자리도 팔 수 없는 무력한 존재였다. 그래서 결국 바깥 공사일을 남편이 하는 동안 집안 노동은 오롯이 내 책임이 되었고, 길고 긴 공사기간 내내 삶이 힘겨웠다.


부부가 누구의 도움 없이 어린아이 둘을 양육하기에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 아니던가. 그 버거움에 주차장 공사일까지를 더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내 가족이 사는 곳에 대한 사랑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머무는 곳이 엄마 아빠의 마음에 드는 곳이어야 아이들의 마음도 허전함이 없이 안정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불편함을 참고 살 수밖에 없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기보다는, 불편함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용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 집은 계속 변해가고 있는 중이고, 언젠가 대문이 달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