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없으면 도망갈 수 없다.

<전원주택 현실육아>

by 나은진

남편이 출근을 했다. 아이를 품에 안고서 남편의 출근길을 한참 바라보았다. 내 마음에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전기가 나가기라도 하면 어쩌지?’

‘아이가 갑자기 아프면 어떡하지?‘

‘벌레가 들어오면 큰일인데…’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웬 아주머니 다섯 분이 현관문 앞에 서있었다. 내가 인터폰으로 누구인지 살펴보는 동안 그녀들은 이웃주민이라며 현관문을 치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몹시 화가 나 있는 듯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이유식을 먹이고 있던 나는 급하게 문을 열었다. 그녀들은 나와의 대화를 원했다.

“수영장을 만들면 안 됩니다.” 대장인 듯 보이는 아주머니가 말했다.

그랬다. 나는 수영장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고 있는 중이었다. 이 날은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며칠 동안 땅을 파던 포클레인 기사님도 오지 않았고 파다만 땅 옆에는 기사님이 남겨놓은 무기 같은 포클레인 기구들만 덩그러니 있을 뿐, 내 주변에는 익숙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화가 난 그녀들이 무서웠고, 그녀들 사이에 나와 아이 둘만 있는 상황이 극도로 공포스러웠다. 내가 왜 모르는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주었을까 후회가 밀려왔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녀들에게 수영장을 짓지 않겠노라 약속을 하고 돌려보냈지만 나의 공포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 날의 공포스러운 감정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선명히 각인되어 있다.


그녀들은 내가 지은 전원주택 주변에 사는 분들이었고, 모두 여자들이었다. 나에게 화를 내기는 했지만 신체적 위협을 가하지도 않았고 집안의 기물을 파손하지도 않았다. 나에게는 분명 전화기가 있었고, 만약에라도 그녀들이 집에서 나가지 않기라도 한다면 불법점거로 경찰서에 신고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이 정도까지의 공포를 느낄 필요가 있었을까? 그녀들이 떠나고 나서 한참 동안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남편이 출근한 이후부터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계속 불안해했던 내가 떠올랐다. 불안한 상태에서 들이닥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나를 더 공포에 휩싸이게 만든 것 같았다.


나의 불안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건 바로 이 집에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이동수단인 자동차를 남편이 가져갔기 때문에 생긴 불안이었다.


외진 곳에 집을 지었고 그래서 집 근처에는 대중교통수단이 없었다. 버스를 타려면 20분은 걸어 나가야 했고 또 하루에 6번밖에 버스가 다니지 않아 버스시간을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택시를 부를 수는 있었다. 하지만 택시를 타고 나가도 나에게 익숙한 서울집까지 가려면 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야 했고 지하철 운행 간격도 넓었으며 무엇보다 지하철을 타서도 여러 번 환승을 해야 했다. 지하철을 타는 시간만 2시간. 두 돌도 안된 아이를 데리고 이 험난한 길을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남편을 서울로 보내며 속으로 바랐다. 내가 이 집에서 빠져나갈 일이 제발 생기지 않기를…. 전기가 끊어지면 추워서 빠져나가야 하고 아이가 갑자기 아파도 빠져나가야 하며 내가 처리하지 못할 무서운 벌레가 들어와도 도망가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그녀들은 나에게 위협 그 자체였다. 그녀들이 나에게 위협을 가하기라도 하면 나는 도망갈 수단이 없었다. 나 혼자라면 걷기라도 했으니까 빠져나갈 수 있다지만 걷지 못하는 아이를 둘러업고 오랜 시간을 걷고 뛰어야 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서울에서는 설사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아파트만 빠져나가면 흔해빠진 것이 대중교통수단이고, 관리사무실을 비롯해 경비아저씨 청소아주머니 옆집사람까지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아이와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외로움은 있을지언정 비상사태에 대한 대비가 되지 않아 두려움을 느낄 일은 없었다. 하~ 전원주택에서의 삶은 달랐다. 차가 없으면 도망갈 수 있는 수단은 내 다리밖에는 없었다. 달리기에서 늘 꼴찌를 하게 만들어주었던 내 다리를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일이 있은 후 결국 차가 2대가 되었다. 원래 새 차를 뽑고 쓰던 차를 중고로 팔 생각이었지만 팔 생각을 접었다. 대부분은 남편과 내가 함께 다녀서 쓰던 차를 운행할 일이 드물지만, 그래도 언제든 각자가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또 밤사이 눈이라도 오면 2-3시간 눈을 치우지 않고서는 아이들 학교를 데려다 주기 힘들기 때문에, 눈 오는 날 아이들 등교시간을 맞추려면 차 한 대를 제설차량이 지나가는 곳에 주차해놓아야 한다. 어린아이 둘을 키우다 보면 급하게 나갈 일이 한두 번이 아니고, 차 한 대로는 전원주택에서 아이 둘 케어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전원주택에서 육아를 하려면 차량 구입 및 유지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