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애니 삐딱하게 보기 ①] 엉뚱발랄 콩순이&친구들 편
청소하거나 외식할 때 잠깐잠깐 아이에게 만화를 틀어주는 엄마 문복씨. 딸의 최애 캐릭터는 다름 아닌 콩순이! 딸 가진 엄마들은 한번쯤 보여줬을 법한 국민 애니메이션 <엉뚱발랄 콩순이와 친구들>(아래 <콩순이>)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아이와 <콩순이>를 정주행하던 문복씨.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왜 콩순이 아빠는 집안일을 안 하지?
왜 콩순이의 무기는 프라이팬이어야 하지?
그래서 <마더티브>가 준비했다. 국민애니 삐딱하게 보기! 한 많고 할 말 많은 엄마 넷이 모여 <콩순이> 에피소드 속 불편한 지점들을 콕콕 집어봤다.
<콩순이> 2기 1편 ‘하늘을 나는 자전거’는 가부장제 아빠의 전형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들이 대거 등장한다.
동물병원 원장인 콩순이 아빠는 늘 바쁘다. 어느 주말, 엄마는 친구 모임에 나가고 아빠는 콩순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기로 한다. 그런데 모처럼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한 아빠는 아침부터 늦잠을 자서 콩순이의 애간장을 태우더니, 소파에 누워서 느긋하게 스포츠 경기를 본다. 실망한 콩순이가 우울한 노래를 한 곡 부르니 그제야 나간다.
거의 반강제적으로 나가 자전거를 가르쳐주던 콩순이 아빠에게 갑자기 동물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강아지 누렁이가 위독하다는 소식이다. 전화를 끊은 콩순이 아빠는 사명감에 찬 눈빛으로 콩순이에게 말한다.
아빠가 누렁이를 살리러 동물병원에 가봐야 하니 엄마 올 때까지 기다려.
그리고는 외출한 엄마를 소환한다. 아빠는 ‘큰일’ 하는 사람이니까 가족들이 희생하고 이해해줘야 한다는,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점이다. 아빠가 콩순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가 잠깐 기다리게 했다면 일와 육아의 병행에 찌든 콩순이 엄마의 자유시간을 끝까지 지켜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빠가 콩순이를 홀로 놀이터에 두고 가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극중에서는 콩순이가 하늘을 나는 자전거를 타고 아빠에게 가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유치원생 혼자 그렇게 두면 아이가 낯선 곳에 갈 수도 있다.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부모가 콩순이와 동생 콩콩이를 두고 나가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콩순이 엄마가 남편에게 우산을 가져다주기 위해 아이들이 자는 틈을 타 잠시 집을 비우는 식이다. 남편이 잠깐 비를 맞는 것보다 취학 전인 아이들을 홀로 집에 두는 게 더 위험 부담이 큰 상황이 아닐까.
21세기 애니메이션답게 콩순이 캐릭터에서는 기존의 여성성과는 다른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분홍색이 아닌 보라색 옷을 입었고, 구두가 아닌 운동화를 신었다. 조신하고 얌전한 소녀가 아니라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 엉뚱발랄 콩순이 그 자체다.
또한 기존의 애니메이션 속 여자아이들은 공주 드레스를 입거나 남자의 도움을 받는 수동적인 역할로 그려진 반면, 콩순이는 자기 자신을 지킬 줄 아는 능동적인 캐릭터다. 한때 콩순이도 예쁜 드레스를 입는 공주가 되고 싶어 했지만, 왕자 대신 용감하게 용을 물리친 경험을 계기로 드레스 대신 빨간 망토를 두르며 다짐한다.
나 이제 공주 안 되고 싶어요. 언제 어디서나 약한 사람을 구해주는 슈퍼 콩순이가 될 거예요.
엄마의 캐릭터를 ‘인간적으로’ 묘사한 부분도 칭찬할 만하다. 콩순이 엄마는 다른 만화 속 엄마들처럼 항상 웃고 상냥하고 착한, ‘신화적 존재’가 아니다. 애를 보다가 힘들어서 짜증냈다가 나중에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보통의 엄마다. 특히 집에서 애 둘 보면서 시간에 쫓기며 그림책 그림 그리는 일을 하고, 그러면서 요리와 살림까지 해내는 장면들은 이 시대의 엄마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하다.
시즌 4로 갈수록 노력하는 부분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콩순이>. 시즌 5에서는 더욱 평등하고 인간적인 내용들을 담아서 돌아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