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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Sep 25. 2019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기 이전에

[마더티브X포포포] 나, 전이수 엄마 김나윤

엄마의 잠재력을 주목하는 잡지 ‘포포포 매거진’과 마더티브가 만났습니다.

포포포(POPOPO)는 한 권의 그림책을 테마로 만드는 독립잡지인데요. 창간호 주제는 ‘오즈의 마법사’입니다. 미지의 세계를 찾아 떠난 도로시와 친구들처럼, 엄마들도 저마다 자신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포포포에 실린 소중한 글을 마더티브에도 함께 싣습니다.




내가 너라도 그랬을 거야


김나윤 작가와 네 아이@포포포


스무 살. IMF의 여파를 고스란히 맞았다.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다.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을 반복했던 김나윤 작가는 삶의 고단함을 먼저 배웠다. 그런 그녀가 무작정 소록도로 떠난 건 순전히 우발적인 선택이었다. 서점에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진열하다 툭 떨어진 페이지에 가슴이 꽂혔을 뿐이다.


소록도의 평상에 앉아 쉬고 계신 어르신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그곳에서의 일 년을 김나윤 작가는 삶을 더 가치 있게,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게 하기 위해 크리스마스처럼 그녀에게 온 특별한 선물이라 기록했다. 이수 엄마가 되기 전 김나윤이라는 한 영혼은 그렇게 사랑의 힘을 배웠다.



더 내려놓기



제가 아이를 셋을 낳고 하나를 입양했는데 하나씩 낳을 때마다 포기한 게 있었어요. 이수를 처음 낳고 포기한 게 청소, 둘째 우태를 낳고 포기한 게 빨래를 개는 일, 셋째 유담이를 낳으면서 정리를 포기했어요.


사실 이런 것들이 아이들보다 중요하진 않거든요. 그래서 제 생각엔 청소 좀 안 하면 어때, 좀 지저분하면 어때, 정리 좀 안 하면 어때, 빨래 안 개면 어때. 이렇게 생각을 바꾸니 제 일도 줄고, 아이들 혼낼 일도 없고, 아이들도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 오히려 서로 좋더라고요. 너무 깨끗하게 키우는 것도 아이들에게 썩 좋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도 그렇게 키우고 있어요.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당연히 할 수 있게 되는 게 많아요. 그 과정들을 부모님이 지켜봐 주시면 좋겠어요.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알게 되는 거잖아요. 근데 혼내고 소리 지르고 키우다 보니까 그런 윽박지름이 아이들을 점점 힘들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 키울 때 화난 적



많죠. 화내지 않고 아이를 키운다는 건 도인과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애들 키우면서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뚜껑이 열릴 때가 많다고 많이 말씀하시는데, 사실 아이들 키우기 너무 힘들죠.


제가 20대 때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는데 그때 아이들 키우는 일을 해봤다면 아이를 낳았을까 싶을 정도로 힘든 일이에요. 그래서 그만큼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화라는 감정을 다스리는 게 정말 힘든 일이에요.


제가 생각할 때 화는 내가 맞고 상대방이 틀렸다는 분별력 때문에 생기는 것 같아요. 근데 화라는 건 어찌 보면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조절해야 한다 생각했어요. 이수 낳고 십 년 동안 저 역시 아직도 훈련 중이에요.


그 십 년을 넘어가니까 습관으로 몸에 배면서 화날 일조차 허허 웃고 넘길 수 있게 되는 경지까지 올라가는 것 같아요. 부모가 화를 많이 내지 않고 키우는 아이들의 성장과 윽박지르고 소리 지르면서 키우는 아이의 성장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어른보다 절제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건 어른들이 통제와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 생각해요. 정말 힘든 부분이지만 엄마가 됐으니까 노력하고 같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남들과 조금 다르게 키우는 것



다르게 키운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걱정하지도 않아요. 꼭 남들과 똑같이 해야만 할까 생각해요. 그 길이 편안하고 좋은 길이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기 때문에, 남들이 다 가기 때문에 안심할 순 있죠. 그런데 남들과 다른 길을 갔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이수가 다른 또래보다 조금 다른 길을 가고 있긴 하지만 그 길이 어떨지는 잘 모르기 때문에 엄마의 역할은 항상 편안하게 해주고 안심시켜 주는 일 같아요. 괜찮다고.


둘째인 우태를 보면 이수보다 훨씬 자유로운 영혼이거든요. 우태는 누가 봐도 노숙자 컨셉이에요. 늘 어딜 가나 노숙자들이 와서 말을 걸 정도로 정말 자유로워요. 파리 여행을 가서도 우태가 길에 누워 있는데 노숙자들이 와서 먹던 빵도 주고 지나가던 엄마들이 안 됐다고 동전을 건넬 정도로 컨셉이 그래요. 남자아이인데도 머리도 이수보다 길고. 오죽하면 갤러리에 온 아이가 우태 그림을 보고 머리를 빗겨주고 싶다고 했겠어요.


그런 우태를 관찰해 보면 학교 대신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걱정스럽지 않아요. 우태가 처음 홈스쿨링에서 글짓기 수업을 했을 때는 한 문장도 제대로 못 썼어요. 한 문장을 쓰고 이제 다했다 하고 뛰쳐나갈 정도였는데 6개월이 지나고 나니 어느 순간 종이에 뭔가를 끄적이다 던지고 가요. 어떻게 이런 글을 썼지 할 정도로 좋은 시를 쓰기 시작하더라고요.


지금은 본인이 글짓기 노트에 꼬마 시인 전우태라 쓰고 글을 적기 시작했어요. 제가 한 건 아이를 계속 기다려주고 용기를 북돋아 준 것밖에는 없어요. 처음에 한 문장 쓰는 것도 정말 잘했다고 칭찬하니 우태가 기분이 좋고 으쓱으쓱해서 그다음 날 두 문장을 쓰려고 하고. 형아가 하는 걸 따라 하더니 이제는 그림도 글도 제법 형 못지않게 잘해서 새로 출간되는 <마음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에 우태의 시도 15편 싣게 되었어요.


우태의 시는 간결하고 짤막하면서 마음을 울리는데, 이수는 수필처럼 긴 글 안에 이야기를 넣어 감동을 주는 식이거든요. 우태가 1년 동안 이렇게 성장한 걸 보면 제가 다르게 키우는 것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가 걱정하면 그걸 아이들이 고스란히 느끼니까 저는 각자의 행복한 길을 찾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이수에게 궁금해하는 것



이수가 그림책을 만드니까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는지 지금도 그런지 많이 물어보세요. 이수가 처음 <꼬마 악어 타코>라는 책을 만들었을 땐 한글도 제대로 못 뗀 상태였어요. 책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맞춤법도 많이 틀려있어요.


이수가 그때까지 읽은 책이 몇 권 안 될 거예요. 아이 머릿속에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많이 채우려고 하니까 그걸 받아들이는 아이 입장에선 생각하는 힘을 점점 잃어버리는 것 같아요. 반대로 이수와 우태 같은 경우는 아는 걸로만 안 되니까 자꾸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아이들이 없던 걸 만들어 내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싹트고. 그런 점들이 다른 아이들과 다른 부분으로 나타나니까 그게 눈에 띄기 시작한 거죠.


많은 부모님들이 자식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닌 걸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 같아요.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아이들이 지금 더 행복한 방식을 고민하고 더 많이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수가 말을 잘하지 못할 때부터 이야기를 많이 나눴거든요. 결국 그런 시간이 자기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기 이전에



아이를 양육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역지사지’, 나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말하는 것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죽을 때까지 머릿속에 잊지 말고 상대방을 대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두 번째는 ‘어질 인’이에요.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보다 친절했으면 해요. 그 친절함은 머리로 배워서 나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나의 습관으로 몸에 배어 있어야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아도 다른 사람한테 욕을 먹지 않는다고. 그런 마음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어요.



“내가 너라도 그랬을 거야”라는 마법의 주문



“엄마가 제 마음 알아주는 게 제일 좋아요.”


이수는 엄마의 이런 점이 가장 좋다. 김나윤 작가가 어렸을 때 간절히 바라던 세 가지.


“내가 일어설 때까지 믿고, 지켜봐 주는 것. 기다려주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어린 시절 바라던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아이에게 지킬 수 있다는 것. 그 특별함이 지금의 이수를 만든 비옥한 토양이었으리라. 김나윤 작가의 책 <내가 너라도 그랬을 거야>에는 이런 엄마의 고민이 담겨있다.


“훗날 선생님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어떤 교사가 되고 어떤 대통령이 되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결과만이 아니라 그 과정이 공부가 되고 그것이 삶의 목표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의 삶의 목표는 어떤 ‘것’(thing)이 아니라 ‘함’(doing)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롯이 열매만 맺겠다는 목표로 씨를 뿌려야 한다면 그 즐거움은 어디에 있을까? 내 삶의 과정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야 모든 것이 즐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인을 요청했다. 그녀가 책에 남긴 이 문장을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고단한 하루의 끝자락에서 오늘도 고민하고 불안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붙들고 있을, 엄마의 내일과 앞으로를 응원하며.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을 하고 계세요. 힘내시고,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by. 포포포 매거진 정유미





새로 나온 포포포 매거진에는 마더티브의 글이 실렸습니다. 텀블벅에만 있는 특별한 리워드와 함께 포포포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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