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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Oct 07. 2019

아이가 건넨 '빨간 열매'... 아, 마음이 뭐길래

[마더티브X포포포] 미야니시 타츠야의 <고 녀석 맛있겠다>

엄마의 잠재력을 주목하는 잡지 ‘포포포 매거진’과 마더티브가 만났습니다. 포포포(POPOPO)는 한 권의 그림책을 테마로 만드는 독립잡지입니다. 포포포에 실린 소중한 글을 마더티브에도 함께 싣습니다.


표지에 떡, 하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누가 봐도 공룡이다. 그것도 몸집이 산 만하고 표정도 험악한 티라노사우루스. 주변에선 화산이 팡팡 터지고 있다. 선사시대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안킬로사우루스가 빠가닥 빠가닥, 하더니 알에서 태어나고 있다. 엄마는 어딜 갔는지, 홀로 태어나 슬피 울면서 타달타달 걸어간다. 그 위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니, 바로 그 티라노사우루스다.


아기 공룡은 한 입 거리도 안돼 보이지만, 아무튼 티라노사우루스가 “고 녀석 맛있겠다!”를 외치며 꿀꺽 삼켜버리려는 찰나, 거대한 다리에 왈카닥 매달리며 아기 공룡이 외친다.


“아빠! 내 이름을 알고 있으니 우리 아빠 맞지! 얼마나 무서웠다고요.”

어리둥절해 하는 티라노사우루스는 아랑곳없이, 아기 공룡은 자기 이름을 ‘맛있겠다’라고 철석같이 믿고 볼을 부비며 덥석 매달린다. 실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 안에 이질적인 두 존재(주로 포식자-피식자라는 대조적 인물 구성)의 난데없고 기막힌 동거는 늘 모티프로 등장하고, 그림책 안에서는 특히 서로 천적 관계에 놓일 만한 존재들(사자-생쥐, 늑대-양, 악어-오리, 거인-작은 소년 등)의 만남이 흔하지만, 아무튼 이 그림책에서도 우리가 쉽사리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설정되고 전개된다.



졸지에 아빠가 된 티라노사우루스


<고 녀석 맛있겠다> 표지(출처 : 달리)


졸지에 아빠가 된 티라노사우루스는 일견 어리둥절한 채로 ‘맛있겠다’를 극진히 돌보기 시작한다. 아기가 먹을 만한 풀을 뜯어다 주고, 아기를 노리는 다른 공룡과 맞서 싸우며, 밤에는 쌔근쌔근 잠든 아기 곁을 지키느라 여념이 없다.


그뿐인가, 공룡으로서 선사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박치기, 꼬리 휘두르기, 울부짖기 등의 생존기술도 꼼꼼하게 가르쳐준다. 실로 멋진 아빠, 좋은 아빠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티라노사우루스는 남몰래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니… 사랑하는 아들이 된 ‘맛있겠다’를 위해서 힘들고 눈물이 나도 참고 견뎌야 할, 꼭 돌아가야 할 삶의 모퉁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모퉁이는 야속하게도 바로 저기, 눈에 보이는 데 있다.


<고 녀석 맛있겠다>는 열두 권의 시리즈물이다. <고 녀석 맛있겠다>를 위시해서 <나는 티라노사우루스다>, <넌 정말 멋져>, <영원히 널 사랑할 거란다>, <나에게도 사랑을 주세요>… 로 이어지는데, 하나같이 달콤한 로맨스 소설 제목으로도 손색없다. 상대에 대한 절절한 사랑과 믿음의 고백이며, 영원히 함께 하고픈 바람의 표현이다.


매 편에 등장하는 작은 공룡은 각각 안킬로사우루스, 프테라노돈, 스티라코사우루스, 마이아사우라… 등으로 다양하지만 큰 공룡 티라노사우루스는 전편에 등장한다.


다시 말해, 공룡 중의 공룡이며 천하무적인 티라노사우루스를 가운데 두고 그보다 작고약한 다양한 공룡들이 조연처럼 출연해 티라노사우루스와 관계를 맺는 형식이다. 하나같이 우연한 만남, 오해와 착각, 무럭무럭 자라나는 부성애, 기꺼운 희생, 그리고 가슴 아픈 이별을 그리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새롭게 맺어진 관계에서 사랑이 아빠-강자-양육자에서 아이-약자-피 양육자 일방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쌍방향으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모든 시리즈에 등장하는 ‘빨간 열매’는 본래 티라노사우루스의 먹이가 아니라 초식 공룡들의 일용할 양식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안킬로사우루스는 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빠를 위해 먼 산에까지 가서 빨간 열매를 따온다. 작은 몸으로 위험을 자초한 것이어서 티라노사우루스는 화를 내지만, 자신을 위한 안킬로사우스의 배려임을 깨닫고 기꺼이 그 사랑과 정성을 받아먹는다.


작고 약한 것은 일방적으로 양육되고 사랑을 받는 아이의 입장에만 머물지 않고, 그렇게 엄마의 마음이 된다. 이제 눈이 오건 비가 오건 계속해서 언덕을 오르고 낭떠러지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온전한 의탁과 돌봄이 반복되면서 둘은 서로에게 꽃 피울 터전이 되어 주고, 씨 뿌린 들녘이 되어 준다.



아, 이 빨간 열매를 어쩌면 좋을까


이 책의 작가는 말한다,


“마음이라는 것은 참 재미나요. 사람의 마음속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가득 차 있지요. ‘나는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이렇게 대단하다고!’ 하면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 ‘난 너와는 달라!’ 하며 타인에게 지고 싶지 않은 마음, ‘내가 제일이야!’ 하는 자기중심적인 마음.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다정한 마음,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 남을 사랑하는 마음의 감정들도 함께 존재하지요. 마음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이랍니다.”


라고.


작가의 말처럼 마음은 실로 다양한 색깔과 모양으로 존재하며, 사람에 따라 그 결이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우리는 ‘마음’이라는 것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이 아닐까. 가끔은 내가 내 마음을 모르겠고, 상대의 마음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하물며,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일이 간단한 것일 리 없다.


수학처럼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그 보이지 않는 감정의 오고 감, 주고받으면서 커지는 빨간 열매를 어쩌면 좋을지 난감해진다.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작고 소박하게 시작된 관계가 시나브로 커지다가 종국에는 풍선처럼 한껏 부풀어져서 마음을 점령하는 그 상태를 받아들이기조차 쉽지 않다.


더군다나 그렇게 마음을 주고받은 상대가, 무시무시한 티라노사우루스이거나 한눈에 보기에도 초라하고 빈약한 존재라면 어쩌나? 그쯤 되면 “흠, 마음이라는 것이 참 재미나군.” 하고 팔짱을 끼고 만면에 미소를 띤 채로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음은 때때로 성가시다. 뿐만 아니라 복잡하고, 번잡스럽고, 거슬리고, 짜증난다. 그깟 마음이란 것 없으면 좋을 텐데. 티라노사우루스의 입장에서 보자면야 복잡하고 예민한 마음의 결이고 뭐고, 예전처럼 약한 것들이나 잡아먹으면서 살던 대로 쭉 살 수 있다면 좋지 않았을까. 차라리 필요할 때 ‘초콜릿처럼 꺼내 먹’을 수나 있다면 좋겠는데. 아, 어쩌자고.


영화 <오즈의 마법사>


못된 마녀의 술책으로 심장을 잃은 <오즈의 마법사> 속 양철 나무꾼은, ‘심장을 잃자 마음이 없어졌고, 마음이 없어지자 사랑마저 잃어’ 자신을 불행하다 여긴다. 그렇기에 간절히 원하는 것은 ‘마음, 사랑, 그리고 행복’이다. ‘마음을 다시 얻으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누군가를 사랑하면 영원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텅 빈 마음 한구석에 공식처럼 새기고 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거나 비를 맞으면 이음매에 녹이 슬고 금세 몸이 굳으면서도 오즈 일행과 함께 길을 간다. 마음만 있다면 길가에 무심히 핀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세상 어떤 것에도 잔인하거나 불친절하게 되지 않으리라 굳게 믿으면서.


그는 도대체 마음이란 것의 정체를 파악하고,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종국에 사랑을 알고… 하는 일들의 번잡스러움을 모르는 것일까. 티라노사우루스가 안킬로사우루스를 사랑하게 되어 어느 날 올려다본 밤하늘은 속절 없이 아름답고 대책 없이 황홀했을지라도, 바로 다음 순간엔 가슴 아픈 이별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을.


by. 포포포 손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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