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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Jan 08. 2020

한밤중에 사다리 타고 아들 집 찾은 엄마

[그림책 삐딱하게 보기] <Love you forever>

여기 그림책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책이 있다.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원제는 <Love you forever>. 로버트 먼치의 글에 여러 그림 작가들의 버전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안토니 루이스가 그린 버전은 시공간을 초월해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표지만 봐도 이 책이 얼마나 꾸준하게 잘 팔리는지 알 수 있다.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안토니 루이스 버전



1986년도에 출간되어 전 세계적으로 1,500만부 이상이 판매된 고전. 국내에는 2000년 소개되었는데 지금도 이 버전으로 팔리고 있다. 이미 베스트셀러인 책도 계절마다 리커버를 선보이는 지금의 트렌드와 대조적이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잘 팔린다는 자신감이 엿보인 달까.


그러나 이 책을 펼치기까지 나에겐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나를 멘붕에 빠뜨린 그림책 


여기 막 세상에 태어난 아기를 안은 엄마가 있다. 그녀 역시 엄마가 되어 처음 마주한 아이라는 우주에 달떠있다. 경이롭고 신비하고 걱정되고 두려울 것이다. 이 책은 엄마와 아이의 성장과정을 통해 탄생에서 죽음까지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삶을 관통한다.


엄마가 아이를 재우는 장면에서 시작해 훗날 장성한 아들이 엄마를 안고 재우는 장면까지 침대와 자장가는 세트로 등장한다. 단순하지만 입에 착 감기는 멜로디의 자장가는 이 책이 더욱 오랫동안 회자되며 사랑받게 된 원동력이었다.


문제는 내가 처음 접한 책이 안토니 루이스가 아닌 쉴라 맥그로우가 그린 버전이라는 점. 제목이 같으니 표지만 다르겠지 추측하고 주문한 책이었다. 나를 멘붕에 빠뜨린 이 버전은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Love you forever> 쉴라 맥그로우 버전


개인적으로 어린이집 부모 참관 수업에서 원장선생님이 이 책을 소개하며 불러주셨는데 5번 경추를 훑고 지나가는 식은땀에 부르르 떨었다(원장선생님이 읽어주신 책은 한국어로 번역된 안토니 루이스 버전이었다).


스크린만이 어둠을 밝히는 어느 비오는 날의 회의실, 떨리는 목소리로 조근조근 자장가를 불러주신 원장 선생님께는 너무 죄송하지만 순간 뇌리를 스치는 몇 장면 때문에 영화 <올가미>의 최지우가 된 마냥 눈을 부릅떴다. 인간이 얼마나 시각적인 자극에 영향을 받는 존재인지 새삼스레 각성하게 된 계기였다. 쉴라 맥그로우의 버전이 대체 어떻길래.

 




한밤중에  사다리를 묶어요




엄마 품에 안겨 잠들던 아이는 어느덧 자라 집을 떠난다. 출가한 아들이 갑자기 떠올라 사무치게 보고 싶었을 수는 있다. 곤히 자고 있을 아들의 달콤한 잠을 깨우고 싶지 않아 전화를 걸지 않았을 거다.


그렇다고 차에 사다리를 실어서 달밤의 질주를 하는 건 그리움이라기 보단 집착에 가까워 보인다. 거치대도 없는 매끈한 차 지붕에 사다리를 로프로 묶은 것도.


가로등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도로를 질주하는 엄마의 표정은 설렘으로 상기되어 있을까. 적막을 뚫고 힘차게 밟아댈 엑셀의 전율이 심박수의 비트를 쿵쿵 사정없이 올린다.

    




이건 주거침입이잖아요




아들이 보고 싶어 사다리를 타고 2층에 있는 아들의 방 안에 몰래 들어가는 사람. 도둑이 아니라 엄마다. 2층이 아니라 4층일지도 모른다. 1층이 아니라는 것만 확실하다. 늙은 엄마는 곤히 잠든 성인 아들을 깨우지 않고 품 안에 토닥인다.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번째 가정


아들은 잠결에 엄마의 얼굴을 확인하고 안긴 것이다? 그게 더 소름끼친다. 갑자기 한밤중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 온 사람은 엄마다. 비밀 연애중인 줄리엣이 아니라고.


엄마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든 성인 아들의 모습은 당혹스럽다 못해 경악스럽다. 자식은 백발이 되어도 부모에게는 물가에 내놓은 아기처럼 느껴진다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번째 가정


1)엄마가 창문을 소리 나지 않게 열었다.

2)창틀에 오르려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들어왔다(혹시 캣우먼?)

3)심지어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억지로 끼워 맞춰 보려 해도 이런 상황에서 깨지 않는다면


1)수면 마취

2)약물 중독

3)어찌되었던 무의식 상태


중 하나여야 한다.               



안토니 루이스 버전에도 아들이 보고 싶어 찾아가는 엄마가 등장한다. 늦은 밤 버스를 타고 아들이 지내는 집의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달이 떠있긴 하지만 버스가 다니는 시간대에 찾아간다. 물론 스페어 키로 열고 들어간 건지 셰어하우스인지는 알 턱이 없다. 어쨌든 이 엄마도 엄청난 행동파다.





너는 나와 다른 인격체




다시 쉴라 맥그로우 버전. 시간이 흘러 이제는 연로한 엄마를 품에 안은 아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흘러 첫 장에서 엄마 품에 안긴 아들은 여자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엄마와 아들, 아들과 손녀라는 구도가 눈에 띈다. 세대를 이어오는 내리사랑이자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좋은 책이다.


다만 아들을 키우는 엄마이자 누군가의 며느리인 나는 복잡미묘한 양가감정 휩싸였다.


품안의 자식이다. 출가외인이다, 라지만 여전히 금쪽같은 내 새끼를 일상의 매순간에서 지울 수 없는 게 엄마의 숙명일 것이다.


동시에 만약 이 책의 엄마가 우리 시어머니라면? 상상만 해도 머리가 쭈뼛거린다. 조심 또 조심한다고 해도 나도 언젠가 시어머니가 되어 본의 아니게 남의 집 귀한 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지 모른다.      


물론 현실적으로 한밤중에 사다리를 차에 묶어 질주하는 행동파 라이더가 되기엔 체력의 한계에 부딪히겠지만.


먼 훗날 아이가 우주비행사가 되어 미지의 행성으로 탐험을 떠난다 해도 잠든 자식을 먼발치에서라도 보고 싶은 게 엄마의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품 안에 쏙 들어오는 아이를 토닥이며 잠을 재울 때도, 애교에 살살 녹아 껌뻑 넘어 갈 때도 마음속으로 되뇐다.     


내 피와 살로 만들었다 해도 너는 나와 다른 인격체다. 누구보다 너를 사랑하고 내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지만 언제든 네가 자유롭게 훌훌 떠날 수 있도록. 혼자 남아 너를 그리워하고 오매불망 기다리는 고목나무 같은 존재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긴 트랙을 바지런히 걸어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사람이 되겠다고.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엄마인 나의 맘도 다독인다. 너를 위해 엄마의 내일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하겠노라고.



by. 정유미(포포포 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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