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티브X포포포] 경험 많은 사람이 되고 싶어
엄마의 잠재력을 주목하는 잡지 ‘포포포 매거진’과 마더티브가 만났습니다. 포포포(POPOPO)는 한 권의 그림책을 테마로 만드는 독립잡지입니다. 포포포에 실린 소중한 글을 마더티브에도 함께 싣습니다.
서른이 넘고 부터는 문득 떠올린 내 나이가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많다. 내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나이를 말해야 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으니. 누가 어쩌다 내 나이를 물으면 머릿속으로 1초쯤 생각하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 또 생각, 와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흐른 거지?
그동안의 나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수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루트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려고 애써왔다. 때가 되면 다음 스텝을 밟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옆길로 새지 않는 데만 주력했으니 굉장히 제한된 경험을 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주변이 어둑어둑 해질 무렵 퇴근하고, 주말에는 차를 타고 동네 밖을 다니느라 정작 살고 있는 동네를 찬찬히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그저 아이들을, 남편과 나를 챙기기에 바빠 주변에는 뭐가 있는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별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러다 둘째를 낳고 나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이 아니라서 그런지, 육아라는 이름으로 아이와 나를 집에만 가두어 두지 않았다. 사실 육아는 집에서만이 아니라 어디서든 할 수 있었다. 학교, 회사 같은 비슷한 집단이 모이는 울타리를 벗어나 지역 사회로 눈을 돌려보니 모두가 나처럼 판에 박힌 모습으로 살지 않았다. 아이의 등 하원 길이나 놀이터에서 마주치는 다른 부모님들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 아이 또래를 키우는 부모들의 삶을 본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가 주민센터에서 열리는 3개월짜리 캘리그래피 강좌를 들었다. 스무 명 남짓한 수강생들은 대부분 우리 동네에 사시는 분들이고, 30대부터 70대 왕언니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수업 시간이면 여러 주제의 잡담을 나누며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데 정겨운 대화 속에서 동네 어른들의 삶을 듣는다. 주로 가는 소아청소년과의 대기실에서, 단골 빵집에서,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등록한 아이의 학원에서 지역사회의 사람들을 만나고 관찰한다.
캘리그래피 수업에 참석하시는 분을 같은 어린이집 학부모로 만난다거나, 아이 친구 엄마를 약국에서 만난다거나 하는 동네에서 마주치는 우연한 만남도 재미있다. 그런 만남과 대화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가끔은 스스로 놀란다. 아니 ‘이 나이 먹도록’ 이런 것도 몰랐단 말이야? 하는 것을 마주할 때도 있고, ‘아 저런 삶의 방식도 있을 수 있구나!’ 싶은 것도 눈에 보인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마치 하루아침에 모든 게 낯선 나라에 도착한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처럼, 세상이 어제와 다르게 느껴졌고 이것을 계기로 삶의 방향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가야만 한다고 생각한 길을 최대한 안전하게 가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제는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옆길로 새 보기도 하고,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걸어보기도 하면서 많은 경험을 하면서 살고 싶어졌다.
나의 역량 향상을 위한 능력 계발에 시간을 쓰는 것보다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가 다니는 교육기관의 운영위원장을 맡겠다고 자원하기도 하고, 지역 워킹맘 모임에서 만난 분들과 여러 가지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둘째의 입소가 확정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열리는 텃밭 가꾸기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도 지원했다.
엄마라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이 생긴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경험을 쌓아갈수록 다른 시각이 보이고, 생각의 지평이 넓어진다. 이제 시작 단계지만 앞으로 나는 엄마 경력은 더 쌓이고, 나이들 일만 남았으니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정말로 나이가 지긋한 어른이 되었을 때 그동안 쌓아온 경험의 연륜이 내 얼굴에, 몸짓에 묻어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6월경, 회사에서 복직 권유 전화를 받았다. 당초 계획했던 휴직보다 좀 이르게 복직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막상 복직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일하고 있을 때는 그렇게 쉬고 싶었는데 막상 쉬니까 다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을 보면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갈대와 같다.
많은 고민 끝에 휴직을 길게 쓰기보다 빨리 복직을 하는 게 더 낫겠다는 결정을 했다. 이제 휴직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남은 기간 해야 할 일을 챙겨보고 있다. 나는 두 번째기 때문에 첫 번째보다는 수월하지만, 혹시 첫 아이의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면 도움이 될까 싶어 몇 가지 적어본다.
첫째 육아휴직 때도 이 부분에 신경을 제일 많이 썼다. 양가 부모님이 도와주실 수 있다면 걱정이 덜하지만, 그게 아니라 시터를 써야 하는 상황이면 어떤 사람을 선택하느냐가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후보군을 정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하기도 하고, 육아 도우미 소개 업체에 가입해서 직접 연락을 하기도 한다. 풀 타임으로 아이 돌봄을 맡길지, 어린이집과 병행하면서 하원 후 시간만 맡길지에 따라 시간과 급여가 달라지므로 각자의 사정에 맞게 사전에 결정하여 육아 도우미를 구하는 것이 좋다.
첫째는 돌 무렵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고, 따라서 하원 후 육아 도우미가 필요했다. 나는 친구를 통해 소개받은 분과 첫째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4년을 함께 했다.
아이를 맡기는 것이므로 무엇보다 신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함께한 4년 동안 이유 없이 픽업에 늦거나 빠지는 일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하원 후에는 항상 사진을 보내주셨고, 아이의 상태나 기타 전해야 할 말씀이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메시지를 보내셨기 때문에 나도 마음을 터놓고 잘 지낼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둘째도 어린이집과 하원 도우미 체제로 영유아기를 보내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빠른 만 7개월에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을 때 주저하지 않고 등록할 수 있었다. 3월부터 학기가 시작되는 어린이집 특성상, 둘째가 돌이 되는 8월에는 자리가 날 확률이 희박하므로 자리가 있을 때 먼저 등록해야 한다는 경험치가 있어서다.
복직 시기를 정하자마자 첫째를 돌보아 주셨던 이모님께 연락을 드려 다시 아이들을 돌봐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았다. 다행히 내가 원하는 시기에 다른 계획이 없어 가능하다고 답을 주셔서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어린이집 등원은 우리 부부가 직접 하고, 하원 후 퇴근까지는 이모님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세팅이 완료되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다니는 유치원이라면 다른 이야기이지만, 만 36개월 이전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어린이집은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을 추천한다. 물론 보내려는 기관의 평가인증, 원의 분위기, 원장 선생님 및 보육교사의 인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해야 하겠으나 같은 조건의 여러 곳을 두고 결정해야 한다면 나는 무조건 근거리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
집에서 물리적으로 가까운 곳이(같은 동네) 아이의 심리적 안정에도 도움이 될뿐더러, 바쁜 출근 시간을 쪼개 직접 등원을 할 때도 도움이 된다. 하원 후 육아 도우미의 도움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다. 첫째는 만 12개월부터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가정 어린이집에 다녔는데 집에서의 거리뿐 아니라 출근길 동선까지 고려해서 결정했다.
그곳에서 2년간 무탈하게 잘 생활하고 우리 나이로 네 살이 되었을 때 직장 어린이집으로 옮겼다. 집에서 버스 3정거장 정도의 거리가 아무래도 부담이 되어서 우리는 결국 어린이집까지 걸어갈 수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둘째는 다행히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어 또다시 이사를 할 필요는 없지만, 아이가어릴수록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보육기관을 선택하는 것이 아이와 부모의 피로도를 줄이는 방법이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같은 조건이라면’ 더 가까운 곳이 낫다는 것이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데 가까운 곳이라고 해서 보내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첫째 휴직을 마무리하고 복직한 뒤 6개월 동안은, 우리의 결혼생활에서 유례없이 많이 싸운 나날이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대체로 가사 분담의 모호함에 따른 불만에서 오는 것이었다. 또 서로가 생각하는 가사의 수준이 달라 맞춰 가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당시 나는 집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사무실로 통근했는데 회사를 다녀오면 기진맥진하여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매일 저녁 식사도 차리고, 집 안은 늘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남편의 기준을 도저히 맞출 수 없었다. 반찬은 사 먹고 청소는 주말에 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면서 평일의 여유를 다소 확보할 수 있었다.
이번 복직 이후에도 아이들 반찬은 내가 만들겠지만, 우리가 먹을 반찬은 사고, 청소와 집안 정돈을 쉽게 하기 위해 최대한 짐을 늘리지 않는 방향으로 조율했다.
법정 육아휴직 기간인 1년을 꽉 채워서 쓴다면, 복직을 앞둘 무렵이면 단유를 하거나 이유식에서 유아식으로 넘어가는 시기라 아이 돌보기가 조금은 수월해진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운전 연수를 받을 계획이고 모유 수유 때문에 할 수 없었던 피부과 치료를 예약했다.
특히 운전 연수의 경우 이제 아이가 둘이나 되었고, 첫째가 제법 커서 가고 싶은 곳이 많아지자 내가 운전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올해는 꼭 운전 연수를 받아서 나도 거리로 나가야지. 열의를 가지고 하다가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아픈 바람에 중단하게 된 중국어 공부도 마무리해야겠다.
책을 읽고 블로그에 기록을 남기는 것도 많이 밀렸는데 조금이라도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때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서 시간을 쏟고 싶다.
누구보다 나의 휴직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은 첫째 아들이다. 아침마다 엄마와 떨어져 지내다가 최근 1년을 엄마와 함께 어린이집을 오가고, 평일에 놀이터에서 실컷 노는 즐거운 경험을 했는데 얼마나 아쉬울까. 남은 휴직 기간에는 아이들과 더 많이 살을 부비고, 좋은 음식을 자주 해줘야지.
아침에 여유있게 식사를 하고 천천히 어린이집에 가는 생활을 이어가면서 하원 후에는 간식거리를 싸 들고 놀이터에 가서 열심히 놀게 해줘야지. 둘째는 이제 이유식이 끝나가고 있는데 유아식이 시작되면 맛있는 음식을 다양하게 해주고 많이 안아줘야겠다. 까맣고 예쁜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얘기해 줘야지.
엄마가 된 이상은 중간에 그만두거나 끝낼 수 없다. 휴직이 끝난다고 해서 전업 엄마의 역할 모두를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 상태에서 사회인으로 해야 할 역할이 추가되는 것뿐이다. 물론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지겠지만.
첫 번째 휴직이 끝날 무렵에는 매일 밤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보며 눈물짓곤 했다. 예쁜 아이를 두고 회사에 나가는 일이 마치 내 의무를 저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두 아이를 키우며 회사에 다니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겠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항상 옆에 있어도 아이는 때가 되면 아플 것이고, 회사에 있느라 함께 해주지 못해도 아이는 때가 되면 성장한다. 중요한 것은 늘 마음으로 생각하고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
by. 포포포 임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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