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 needs a new stroy] 일하는 엄마에겐 죄가 없다
엄마 같은 엄마가 되면 안 돼.
임신 5주라는 소식을 듣는 순간 머리를 스친 첫 문장이었다. 뱃속에서 고운 생명이 자라날 거라는 기대에 가슴이 일렁이면서도, 이 아이만큼은 나처럼 자라선 안 된다는 불안에 주먹을 꼭 쥐었다.
나의 엄마는 그 시절 보통의 엄마들과 달랐다. 돈을 버느라 바빴다. 아빠와 함께 서울에서 분식집을 운영한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를 유치원에서 일찍 찾아와 놀아주고 먹여주지 못했다. 드문드문 기억나는 과거 속 어린 나는 늘 혼자 있다. 다들 떠난 유치원에서 홀로 엄마를 기다리거나,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쓸쓸히 그네를 타거나.
두 분이 새벽 일찍 시장에서 장을 보고 깜깜한 저녁에 가게 셔터를 내리느라 정신없는 사이, 나는 8살이 됐다. 어김없이 식당 문을 열어야 하는 엄마 아빠는 딸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오지 못했다.
그때 겪은 상대적 박탈감은 시작에 불과했다. 잔인하게도 초등학교는 점심 먹기 전에 끝났다. 집에 가봤자 아무도 없으니 학원 뺑뺑이를 돌았다. 엄마가 손님들을 위해 밥을 짓는 동안 나는 미술학원 선생님들과 배달음식으로 점심을 때웠다. 끝나면 건너편 속셈학원으로 가고, 해가 질 무렵에 다시 태권도 학원 차를 타고...
엄마를 향한 결핍은 머리가 커가면서 ‘왜 우리 엄마는 돈을 벌어야만 할까’라는 의문으로 번져갔다. 나보다 돈이 중요한 걸까. 다른 엄마들처럼 점심을 차려주고 숙제를 봐줄 수 없는 걸까. 엄마에게 “일 안 하면 안 돼?”라고 수없이 물었지만 답은 늘 같았다. "너 먹여 살리려면 돈 벌어야지." 엄마 품을 떠나 친구들 무리 속으로 들어가는 나이가 되면서 더는 그 질문을 하지 않았지만, 외로움은 치유되지 않은 채 남았다.
대학에서 유아교육과 교양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10년이나 지나서 수업 내용은 거의 잊었지만, 당시 교수가 강조했던 한 가지만큼은 또렷이 기억한다.
아이는 무조건 엄마가 키워야 해요. 적어도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정서적으로 안정된, 정상인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 해요.
엄마 같은 엄마가 되지 않겠다는 어리석은 결심은 그때 시작된 걸지도 모른다. 엄마를 향한 짙은 외로움이 뭔지 아는 만큼 그 아픔을 아이에게 똑같이 물려줄 순 없다는, 비뚤어진 각오였다.
애석하게도 난 맞벌이 부부였다. 배가 불러올수록 ‘정상적인 엄마로 사는 법’을 고민하며 여러 시나리오를 짜봤지만 퇴사 말고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일단 경력단절까지 각오하고 기나긴 육아휴직에 들어갔는데, 허무하게도 아이를 돌본 지 1년 만에 다시 회사로 기어나갔다. '독박육아'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누구의 엄마가 아닌 오롯이 이름 석 자로 사람들과 어울리고 일을 하고 돈을 버는 효능감이 너무도 그리웠다. 일단 내가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에 칼같이 복직했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급하게 넣었다.
내가 정한 길인데도 이상하게 확신이 서질 않았다. 결국 엄마 같은 엄마가 됐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회사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경력단절을 고민했다가 집에 돌아와서는 빨리 출근하기를 바라고... 어느 한쪽에도 투신할 수 없는 처지에 끊임없이 갈등하고 괴로워했다.
자아가 분열된 상태로 1년 반을 흘려보내고 나서야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뭘까. 분명 일하기를 원한다. 엄마가 되기 전부터 쌓아온 궤도, 학창시절부터 고민해온 진로와 적성이란 것의 결말이 궁금하기에 그 길을 끝까지 걷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돈 버는 엄마 밑에서 겪은 외로움과 박탈감이 발목을 잡는다.
생각의 꼬리를 이어나가다가 문득 외로움의 정체가 낯설어졌다. 아빠들은 아무 죄책감 없이 일터에 나가는데, 엄마들은 왜 죄인처럼 일터에 나가야 하는 걸까. 엄마 아빠가 같이 일을 했는데 어린 나의 외로움과 상대적 박탈감은 왜 엄마만을 향해 있던 걸까.
바로 그거였다. 아빠와 엄마의 결정적 차이. 아이는 부부가 같이 만들었는데 정작 애 키우는 건 엄마의 몫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회, 부성신화는 없지만 모성신화는 넘쳐나는 현실, 거기서 내 불행의 역사가 시작된 거였다.
아빠‘도’ 육아에 참여하는 시대라지만 ‘애는 아빠가 키워야지’ 같은 신화적 기준이 그들에게는 요구되지 않는다. 21세기에 접어들어도 남성의 육아 참여시간은 고작 하루 평균 6분(2016년 기준)이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당연시되는 세상이지만 ‘애를 너무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면 안 된다’는 모진 말은 여전히 엄마들을 겨냥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일하는 여성이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적었고 모성 신화도 그만큼 더 굳건했을 테니, 그 기준에 벗어난 나의 엄마와 그 밑에서 자란 내가 ‘비정상’이 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을 테다. (참고로 엄마가 나를 낳은 1987년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45%, 내가 아이를 낳은 2015년은 51.9%였다.) 엄마가 해줬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식에 혼자 갔던 그해, 담임 선생님이 일하느라 정신없는 엄마를 교실로 불러 얘기했단다.
어머님. 애보다 돈이 더 중요하세요?
그날 엄마는 많이 울었다고 한다. 아빠의 일은 '희생'으로, 엄마의 일은 '패륜'으로 바라보던 그 시절. 우리 모녀는 모성신화의 피해자가 아니었을까.
<악어 엄마>라는 그림책이 있다. 엄마 악어는 새끼를 위해 포근히 안아주거나 먹이를 잡아주지도 않는다. 우리가 아는 모성의 기준으로 보면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일 테지만 악어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자신의 울퉁불퉁한 몸에 다칠까 봐 새끼를 안아주지 않고, 험한 정글에서의 생존력을 길러주기 위해 어린 것들을 일찍부터 강물에 빠뜨린다. 그렇다고 엄마 악어가 새끼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이 세상에는 엄마가 아주 많고, 저마다 모성의 모양새가 다를 뿐이다.
모성애가 좀 덜한가 봐.
복직한 후로 간혹 들은 말이다.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다. 나의 모성이 부족한 거라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다. 나는 아이를 정말 사랑한다. 그리고 그만큼 나도 사랑한다. 엄마로서의 이타심과 나의 이기심을 사이좋게 공존시키는 것이 내 모성을 지키는 방법이다. 나가서 돈을 벌고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늦게 찾아온다고 해서 모성애가 적은 엄마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전업맘이나 주부로서의 삶을 깎아내릴 의도는 전혀 없다. 서로 다른 엄마의 꼴을 인정해주자는 뜻이다. 엄마의 삶이 제각각인 것처럼 육아의 방식도 서로 다른 게 정상이다. 굳건한 모성신화를 무너뜨려야 엄마들도 죄책감을 덜고, 아이들도 상대적 박탈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는다.
애초에 나의 엄마에겐 잘못이 없었다. 돈 벌러 나간 엄마가 아니라 돈 버는 엄마를 죄인으로 만들어버리는 세상에 따져 물을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의 엄마는 어린 시절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나이 오십 넘은 지금 손녀의 어린이집 등·하원을 대신 도맡아준다. 당신도 여전히 워킹맘이면서 딸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 황혼육아에 몸을 갈아 넣는 불쌍한 나의 엄마.
더는 엄마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에게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솔직히 두려움은 여전하다. 애초에 이 죄책감은 엄마의 결심만으로 해소될 계제가 아니다. 사회가 일하는 나를 정상으로 받아들여줘야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내가 아이에게 죄인이 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본다.
by. 문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