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더티브 Aug 22. 2018

존버와 버존 사이, 방황하는 직장맘

퇴사를 꿈꾸는 어느 직장맘의 자아분열기2

이대로 회사에 가도 될까. 사진출처 : pexels


출근 준비를 다 하고 나서려는데 아이가 잠에서 깨지 않는다. 평소라면 새벽 6시부터 일어났어야 할 아이가 7시가 넘었는데도 자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땀을 뻘뻘 흘리고 있길래 부리나케 체온계를 들고 와서 열을 재본다.

 


‘열나면 어쩌지, 회사에는 뭐라고 하지, 어린이집은...’



몇 초 안 되는 시간에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다행히 열은 안 난다. 에어컨을 틀고 거실로 나온다. 소파에는 야근하고 새벽에 들어온 남편이 지쳐 잠들어 있다. 2주 넘게 지속되고 있는 야근. 곧 아이는 깰 것이고 남편은 지친 몸으로 아이 등원 준비를 시켜야 할 것이다.


나는 잠시 고민한다.


 

‘이대로 회사에 가도 될까. 내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한다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직장맘으로 산다는 건 늘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다. 육아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이제 좀 키울 만하다 싶으면 어디선가 변수가 나타나 뒤통수를 탁 친다. '애 키우는 게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았어?' 하고. 




아이라는 변수 


적어도, 적어도 아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 사진출처 : pexels


올해만 해도 아이는 독감과 뇌수막염(바이러스성)에 걸렸고 한동안 어린이집에 가지 못했다.  아직 면역력이 약한 어린 아이는 자주 아프다. 콧물 나고 열 오르고 기침 하면 내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회사는 어떻게 하지, 연차가 얼마나 남았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경우의 수를 생각한다. 친정 시댁 모두 멀리 있고 양가 부모님 모두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죄송해요, 애 때문에...' 부서장에게 메시지를 보내 양해를 구할 때면 자괴감과 무력감이 밀려온다. 당장 내일 출근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직원이라니,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한편으로는 애가 아픈 게 내 탓은 아닌데 왜 나만 이렇게 맨날 죄송하고 고마워야 할까 억울하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씩은 죄송하다는 말을 살짝 빼기도 한다


어린이집 방학, 소풍, 부모참여 수업, 교사 연수, 심지어 어린이집 공사까지. 이외에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거나 내가 회사를 갈 수 없는 상황은 예고 없이 수시로 찾아온다. 심지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문제가 생겨서 한 달간 무급휴직을 낸 적도 있다. 이쯤 되면 내가 퇴사를 고민할 게 아니라 안 잘리고 다니는 게 이상할 지경인가. 


어차피 하루에도 수십 번씩 퇴사를 고민하는데 이참에 확 그만둘까 싶다가도 이렇게 나가고 싶지 않다는 오기가 생긴다. 적어도 아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 "거봐, 애 키우면서 회사 다니기 힘들어서 그만뒀잖아"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그럼 아이를 원망하게 될까봐. 



믿을 수 없는 사람, 불안정한 사람 


8년 전. 3개월간의 수습기간이 끝날 때쯤. 부서에 있던 유일한 여자 선배가 퇴사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선배의 환송회 날, 나와 여자 동기는 술에 취해 오열했다. 3개월간 정이 많이 들어서? 그럴 리가. 말 한마디 제대로 섞어본 적 없는 사인데. 아마 선배가 제일 당황했을 거다(쟤네 왜 저래?)


주로 현장을 뛰는 외근 부서에는 여자 선배가 몇 없었다. (그때만 해도) 여자 자체가 그리 많지 않은 직군이기도 했고. 그런 상황에서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선배가 떠난다는 게 막막했다. 허허벌판에 버려진 가여운 어린 양이 된 심정이랄까.


몇 년 후 나도 현장을 떠나 내근직으로 옮기게 됐다. 내가 여자라서는 아니었다. 업무가 맞지 않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결혼하니까 내근직으로 가는 구나’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참 기분이 나빴다). ‘그래 애 키우면서 회사 다니기에는 내근직 만한 데가 없지.’ 아이를 낳고 나서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바뀐 업무에 만족하면서도 늘 여자 후배들에게 미안했다. 육아 휴직이 끝나고 복직하고 나서는 더욱 그랬다. 나름 업무에 최선을 다해 충실하고자 했지만 늘 ‘2등 직원’이 된 기분이었다(그 전에도 1등은 아니었지만^^). 


퇴근 시간이 되면 뒤도 안 돌아보고 회사를 나서야 했고 회식이나 MT는 상상도 못 했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늘 시간이 없었다. 으쌰으쌰 호기롭게 일을 벌였다가도 아이에게 일이 생기면 바로 올 스톱.  


‘믿을 수 없는 사람, 불안정한 사람. 저렇게까지 힘들게 회사를 다녀야 할까...’ 아이를 낳기 전, 직장맘 선배들을 바라보던 내 시선이 떠올랐다. 아마 여자 후배들도 나를 그렇게 보고 있지 모른다. 내 모습이 바로 본인들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며 불안해하면서. 



나만 죽도록 버티면 되는 걸까 


가만히 앉아 있을 기운도 없어 수액 맞던 날. 이렇게 꾸역꾸역 버텨서 내게 남는 건 뭐가 있을까


아이가 둘인 한 직장맘 후배는 말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회사에서 버텨서 중요한 의사결정권을 가진 자리까지 올라가고 싶다고, 그래야 후배들에게도 롤모델이 되고 조직을 바꿀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세 돌만 지나도 괜찮아져, 다섯 돌만 지나도 괜찮을 거야.” 직장맘 선배들은 말했다. 아이가 엄마를 필요로 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고. 그때가 됐을 때 엄마가 일을 가지고 있어야 엄마도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고. 그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라고.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내게는 지금 이 순간도 중요하다. 몸도 마음도 지쳐서 병원과 약을 달고 살고. 이렇게 사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번번이 회의하게 되는데. 내 안의 소중한 것이 망가지는 걸 매일매일 목도하는데. 그럼에도 버티기만 하는 게 옳은 걸까. 이러다 내가 닳아 없어지는 건 아닐까. 


여름이면 시간은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처럼 녹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그런 날들을 보내고 나면 한 살 한 살 들어차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그저 닳아 없어지기만 할 것 같았다. <경애의 마음> p.597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버텨내는 것이 일과 육아를 도저히 함께 할 수 있는 부당한 체제에 투항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이렇게 꾸역꾸역 버텨서 내게 남는 건 뭐가 있을까. 일과 가정의 양립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나 혼자만 죽도록 노력하면 되는 걸까. 그보다는 기존 체제를 거부하고 새로운 롤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닐까. 적어도 후배들은 나보다 나은 환경에서 일과 육아를 함께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렇게 사는 건 아니다 싶을 때, 나는 이반 일리치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를 떠올린다. 이 책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은 "지금 내가 가난한 것은 로스앤젤레스에 살면서 35층 고층건물에서 일하느라 두 발의 사용가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라는 대목이다. 이반 일리치는 현대화와 함께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주목한다. 다음은 내가 이 책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위기에는 꼭 그런 의미만 있을 리가 없다. 관리를 가속하기 위해 무턱대고 돌진하는 것만을 의미할 리 없다. 우리에게 위기는 선택의 순간일 수 있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스스로 만든 새장에 갇혀 살았다는 걸 깨닫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기적의 순간이 될 수 있다.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p.22


일과 육아에 지쳐 그렇고 그렇게 스러져한 또 한 명의 여성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버티기만 하는 것도 해답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삶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까. 퇴사를 하면 답이 있을까. 


*다음 편에 계속 


1편 보기 : 엄마의 퇴사는 왜 이토록 어려운가 https://brunch.co.kr/@mothertive/6


by. 금복



매거진의 이전글 더는 엄마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