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꿈꾸는 어느 직장맘의 자아분열기1
육아휴직 후 복귀한 회사는 천국이었다. 무엇보다 월요병이 없어졌다. 주말 동안 아이와 하루 종일 씨름하다 월요일 아침 고요한 책상 앞에 앉으면 비로소 쉬는 기분이 들었다. 어른 사람과 (끊기지 않고) 대화라는 걸 할 수 있고 밥도 우아하게 앉아서 (마시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거기에 커피 한 잔의 여유까지.
육아휴직 기간 동안 누구누구의 엄마로 살아왔다면 회사에서는 온전히 내 이름으로 살 수 있었다. 이래서 워킹맘들이 절대 회사를 안 그만두는 구나. 퇴사라니, 애 낳기 전에 제가 그런 생각을 했었다고요? 회사는 내게 훌륭한 도피처였다. 심지어 월급도 주는.
나의 쓸모
‘복귀뽕’은 오래 가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나를 떠나지 않았던 갈증은 불쑥불쑥 나를 찾아왔다. 그토록 원하던 직장에 입사해 어느덧 8년. 회사를 떠나고 싶은 순간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때로는 일 때문에 때로는 사람 때문에 때로는 조직 문화 때문에.
지금까지 퇴사 고민은 아래와 같은 과정의 무한 반복이었다.
사람이 너무너무 싫다(분노)
->회사 자체가 너무너무 싫다(환멸)
->이런 회사에 계속 다니는 내가 너무너무 싫다(자기연민)
->싫다는 생각은 해서 뭐하나. 8년을 다니고 있으면서 그런 말할 자격이 있냐(자기혐오)
->어차피 못 그만 둘 거잖아. 그래도 이만한 회사가 어디 있어. 그냥 다니자(자기기만)
->확 그냥 오늘 그만 둔다 그럴까(자아분열)
하지만 이번 퇴사 뽐뿌는 예전과는 분명 달랐다. 일이 싫어서도 사람이 싫어서도 조직이 싫어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건조한 마음이었다. 이 회사에서 더 이상 해보고 싶은 게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해보고 싶은 걸 이 회사에서는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여기를 떠나서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건 김태리의 '쓸모'였다. 도시에서는 그냥 비슷비슷,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인력이었던 김태리는 시골에서 정말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간다. 창의성 넘치는 요리를 하고 논밭을 일구고 집을 가꾸고.
김태리가 시골에 가지 않았다면 자신의 쓸모를 알 수 있었을까. 질문은 내게로 돌아온다. 내게도 내가 몰랐던 쓸모가 있지 않을까. 그걸 알기 위해서는 삶의 전환이 필요했다. 적어도 마흔 이후에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다. 내 나이 서른 중반, 시간이 많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이제 막 두 돌 지난 아이를 둔 엄마라는 것(심지어 시댁친정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직장맘으로 살았던 지난 1년,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이러한 삶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출근해서 퇴근만 해도 진이 빠졌다. 이 상태에서 아이를 돌보는 게 즐거울 리 없다. 퇴근 후 영혼 하나 없이 아이와 놀고 있는 내 자신을 보면서 이게 뭐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늘 번아웃 상태에서 일을 했고 아이를 돌봤다.
“균형을 찾는 게 너무 힘드니 하나를 포기해버리는 게 당연해졌다. 평범한 것 같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뼈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 스무 살 때 생각한 상식의 수준이 나노입자처럼 파괴되고 있는 현실. 일과 육아를 같이 할 수 없다는 현실. 할 수야 있지만 너무 힘이 든다는 현실. 그게 진짜 너어무 너어무 아웃 오브 컨트롤 수준으로 힘들다는 현실.” -이혜린 <엄마의 속도로 일하고 있습니다>
회사 다니고 애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허덕이는데, 종종 아니 자주 나가떨어지는데. 새로운 일? 하고 싶은 일?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뭐든 하나는 포기해야만 했다.
남편이 벌어주는 돈
일과 육아에 지쳐 회사를 그만 두고 싶을 때면 전업맘이 된 내 모습을 상상했다. 엄마를 전업맘과 직장맘 이분법으로 나누는 세상에서 직장을 다니지 않는 엄마의 삶은 너무 납작하게 묘사된다. 내가 생각하는 전업맘의 스테레오 타입은 사회가 규정해놓은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 집에서 살림‘이나’ 하고 애‘나’ 키우는 모습. 사회인으로서의 나는 삭제된 채 아이만 남은 삶. 도무지 그런 생활을 할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내 손으로 돈을 벌지 못한다는 건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육아 휴직이 끝난 후 회사를 그만두고 애 둘을 키우는 친구는 말했다. 육아 휴직 급여 나올 때가 그나마 큰소리 칠 수 있는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고.
머리로는 안다. 친구가 수년간 해오고 있는 가사와 육아 노동의 가치를. 그게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사회 구조가 잘못됐다는 걸. 하지만 친구가 커피 값이나 밥값을 나눠 낼 때마다 왠지 친구 남편 돈을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손에 쥘 수 있는 화폐를 벌지 못하는 친구가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됐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돌봄 노동이 있었기에 그 남편이 야근과 출장을 밥 먹듯이 하며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도 기억한다. 육아 휴직이 끝난 후 온전한 한 달 분의 월급이 나왔을 때 느꼈던 그 안정감을. 이 ‘월급의 마약’을 내가 포기할 수 있을까. 월급이 끊기는 순간, 남편과 동등한 관계도 무너지는 게 아닐까.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모두 내가 짊어지게 되면 어쩌지. 물론 8년 넘게 일한 퇴직금으로 얼마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갈까.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아이가 없었다면. 좀 더 선택이 쉬웠을까.
*다음 편에 계속
by. 금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