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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Jul 10. 2018

엄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

[Mom needs a new story] 모성신화라는 개소리

나는 세상에서 나 자신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늘 많았다. 이런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아낌없고 헌신적인 사랑을 아이에게 줄 수 있을까. 세상이 말하는 모성애가 내게 없을까 봐 나는 두려웠다.

아이를 낳기 전 마지막으로 읽었던 책은 <모성이란 무엇인가>였다. 모성이란 결코 본능이 아니라 국가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근대의 산물이라고. 모성애란 감정은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고 심지어 존재했으나 사라질 수도 있다고. 책에 밑줄을 그으며 나는 나만의 면죄부를 만들었다.


아이가 태어나자 내게도 모성이라 부를 수 있는 감정이 생겨났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종류의 사랑을 아이에게 느꼈다. 내 생살을 찢고 나온 아이는 내 젖과 시간을 먹고 무럭무럭 자랐다. 그때 깨달았다. 이 아이와 나는 징글징글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겠구나.

늘 모성애가 샘솟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는 유난히 자는 걸 힘들어했다. 등 센서가 심해 생후 9개월까지 낮잠 자는 내내 품에 안고 있어야 했다. 밤에 수십 번씩 깨는 날도 있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고비는 매번 얼굴을 바꿔 찾아왔다. 내 컨디션이 좋을 때는 참을 만했다. 잠이 부족하고 몸이 안 좋을 때는 그냥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아이의 울음도 엄마 찾는 목소리도 모든 게 다 버거웠다.

이기심의 망령

나만 유난히 육아가 힘든 걸까. 나는 아이를 낳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괜한 욕심 때문에 아이를 낳아서 아이도 나도 고생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죄책감이 수시로 나를 뒤덮었다. 잠든 아이를 보고 있으면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내가 이런 엄마여서.

아이는 정말 예뻤다. 아이 키우는 건 정말 힘들었다. 두 가지는 결코 상쇄되지 않았다. 예쁜 건 예쁜 거고 힘든 건 힘든 거였다. 그러나 세상은 엄마가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했다. 아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 넣는 엄마. 그렇지 않은 엄마는 개념 없는 엄마, 자격 없는 엄마가 됐다.

엄마로 사는 일과 내 욕망은 자주 충돌했다. 처음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아이와 떨어져 있던 30.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는 해방감과 함께 내가 이래도 될까하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아직 말도 못 하는 애를 어린이집에 보내?” 주변의 비난은 덤이었다. 모유 수유를 중단했을 때, 시판 이유식을 먹였을 때, 어린이집 보내는 시간을 늘렸을 때, 잠시라도 내 시간을 가지려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줄 때. 늘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아이보다 내가 먼저 가 되는 순간 이기심의 망령도 함께 찾아왔다.


길리건은 여자들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덕목, 즉 '자기희생'이라는 악의적이고 집요한 믿음이 여자들을 '이기심의 망령'에 시달리게 만든다고 했다. 자신이 이기적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욕구를 완전히 매몰시키게 만든다는 것이다.-<빨래하는 페미니즘> p.377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엄마가 된 후 끊임없이 좋은 엄마 콤플렉스와 싸워야 했다아이에 대한 엄마의 양가감정을 다룬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라는 책이 있다제목이 너무 공감 가서 사놓고도 나는 이 책을 집안에 몰래 숨겨놓고 읽었다이런 제목의 책을 읽는다는 것만으로 나는 나쁜 엄마라고 광고하는 것 같았다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쓸 때면 그럼에도’ 늘 내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간증하며 마무리했다마치 일기 검사받는 초등학생처럼.

엄마로 사는 건 왜 이렇게 힘든 걸까잠든 아이를 품에 안고 페미니즘 책과 엄마들의 에세이를 미친 듯이 찾아 읽었다밖에서 엄마들과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그리고 알게 되었다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엄마 됨’이 힘든 사람이 나만은 아니라는걸. 
아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엄마에게만 전가하는 사회에서 육아가 힘든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걸. ‘82년생 김지영’으로 대표되는, 여자도 남자와 다를 것 없다고, 여성에게도 사회적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배워온 요즘 엄마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애 낳기 전 한 번. 애 낳고 또 한 번 <빨페>


엄마 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스테퍼니 스탈은 <빨래하는 페미니즘>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류 시인 에이드리엔 리치가 말한 어머니에 대한 고정 관념, 즉 ‘모성 신화’ 때문에 느끼는 고립된 기분을 나는 절절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실비아를 사무치게 사랑한다. 하지만 모성 신화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사랑에 기초하지 않는다. 모성 신화를 떠받치는 기둥은 어머니는 더 이상 자신만의 야심도 호기심도 욕구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믿음이다. p.88


엄마들의 글을 읽고 엄마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느꼈던 것은 안타까움이었다. 다들 이렇게 아이 키우는 게 힘든데 속으로만 곪아가고 있었구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면 '맘충'이 되는 사회에서 엄마들은 집안에 갇힌 채 독박 육아를 한다. 육아서와 SNS 속 완벽한 엄마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한다. 모성 신화는 엄마를 고립시킨다.   
 
하지만 엄마 역시 '야심과 호기심과 욕구를 느끼는' 인간이며, 어느 책 제목처럼 처음부터 엄마였던 사람은 없다. 무엇보다 한 생명을 기르는 일은 정말로, 정말로 고된 일이다. 

막 아이를 낳은 친구들에게 나는 말한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힘든 건 당연한 일이라고. 무엇보다 네 몸을 돌보라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하지만 때로 미워하기도 한다고. 가끔은 엄마 됨을 후회하기도 한다고. 그리고 생각한다. 더 많은 엄마들이 자신의 힘듦을 당당히 이야기해야 한다고.

엄마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by. 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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