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더티브 Jul 12. 2018

욱하는 엄마의 변명

[Mom needs a new story] 완벽한 육아는 없다

아이를 낳기 전 나의 육아 지상과제는 ‘욱하지 말자’였다. 임신했을 때 섭렵한 각종 육아서와 기사들은 엄마가 욱하면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랄 수 없다고 한목소리로 경고했다. ‘아... 우리 엄마가 어렸을 때 나한테 윽박지르고 머리를 쥐어박아서 이렇게 비뚤어진 거구나(참나ㅋ).’ 불룩 튀어나온 배를 어루만지며 엄마 같은 엄마가 되지 않겠다고 비장하게 다짐했다. 


아이가 태어나서야 한 생명을 살려내는 게 얼마나 외롭고 고된 일인지 온몸으로 깨달았다. 목표를 전면 수정했다. 욱하지‘만’ 말자(※남편 제외). 그것조차 지키기 너무 버거웠다. 아이를 보살피느라 쉬지도, 자지도, 먹지도 못하자 정체불명의 분노가 솟아올랐다. ‘그래도 제 팔조차 못 가누는 아이에게만큼은 화내면 안 돼.’ 입술을 꽉 깨물며 버텼다.


아이 때문에 힘들어서 절로 ‘십팔(18)’을 외치게 된다는 ‘마의 18개월’이 되자 입술을 깨무는 것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점에서 급히 ‘육통령’ 오은영 박사의 책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를 사왔다. 성경책 읽듯 소리 내어 읊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욱에는 기다림과 상대 존중이 없다. 우는 아이는 빨리 그쳐야 하고, 잘못된 행동은 빨리 고쳐야 한다는 심보다. 그런데 아이는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여러 번 가르쳐 주고 그것을 뇌에서 처리하기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 부모의 욱 한방에 공든 육아가 한순간에 무너진다.   


그래, 일 년 넘게 개고생했는데 전부 물거품으로 만들 순 없지. 마음을 비우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욱하지 않을 거야!


밥 먹어주는 게 그리 힘든 일이었니


그러나 변수가 있었다. 아이의 내공은 포켓몬처럼 나날이 진화해갔다. 나는 어린이집에서 하원한 아이를 데리고 마트에 간 그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장을 보고 있는데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졸랐다. 곧 저녁 먹을 시간인데... 하나만 사주고 얼른 돌아가서 밥을 주면 되겠지 싶어 수락했다. 마트 안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서 주문하려는데 아이가 쏜살같이 다른 곳으로 튀어갔다. 쫓아가서 잡아왔더니 또 도망갔다. 


육통령의 말씀대로 아이의 어깨를 지긋이 잡고 말했다. “엄마가 집에 가서 네가 먹을 저녁을 만들어야 해. 자꾸 도망가면 그냥...”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사라졌다.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우는 아이를 둘러메고,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제발 한 입만 먹어줘ㅠㅠ(저작권: unsplash)


내 체력은 거의 바닥났고, 남편은 없고,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사주지 않아 화가 잔뜩 난 상태였다. 남은 힘을 끌어모아 후다닥 저녁을 차려줬는데 안 먹겠다며 고개를 돌렸다. “한입만 먹자. 엄마가 열심히 만들었어.” 아이는 식판을 밀어버렸다.      


국이 방바닥에 흩뿌려지는 순간, 겨우 깜빡이던 내면의 필라멘트가 툭 끊어졌다. “지금 뭐하는 거야!” 결국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뒤늦게 육통령 화법으로 달래봤지만 이미 아이는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울고 있었다. 


그날부로 다시 입술을 질끈 깨물며 내면에서 불타오르는 화를 참고 또 참았다. 괜히 훈육한답시고 입을 열었다가 또 욱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 죽을 것처럼 숨이 막히고 가슴이 조여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 심장엔 아무 문제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동네 신경정신과를 찾아갔다. 의사는 이것저것 묻더니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육아스트레스 때문에 나타난 불안 증상 같다는 것이다. 왜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육아가 내게는 스트레스로 반응하는 걸까. 왜 아이를 받아주지 못해 욱하고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걸까. 의사는 말했다.


엄마가 문제라서 그런 게 아니에요.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거예요.

결국 난 욱하는 엄마가 됐지만...


육통령님, 안 되겠어요(저작권: unsplash)


의사 말이 맞았다. 온종일 회사 일을 하다 파김치가 돼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의 속도에 맞춰줄 에너지가 남아 있질 않았다. 특히 남편이 나보다 늦어서 홀로 아이를 돌봐야 할 때면 더욱 그랬다.      


욱하지 않으려면 아이가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지만, 체력이 바닥나니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아이가 밥을 얼른 먹어주길, 일찍 잠들어주길... 내 속도에 아이가 따라오지 못하면 짜증부터 났다. 욱하는 엄마가 안 되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만큼만 열심히 해야 한다는데, 그 최선이 어디까지인지도 혼란스러웠다. 


그제야 나는 어린 내게 욱하던 엄마를 이해하게 됐다. 우리 엄마 역시 독박육아에 지칠 대로 지쳐 벼랑 끝에 몰린 거였을지도 모른다.


며칠 전에도 욱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저녁밥 때문이었다. 국수를 끓여줬더니 안 먹겠다고 했다. 재빨리 새로 밥을 차려줬다. 그랬더니 밥 말로 국수를 먹겠단다. 내가 대신 먹으려고 청양고추를 잔뜩 썰어 넣었는데... 아빠한테 오는 길에 사오라 하겠다고 몇 번을 말해도 악을 쓰며 울었다. 


“그러면 엄마 국수 먹겠다는 거야!!!!!!?”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문장을 사자가 포효하듯이 언성을 높여 말했다. 아이는 장난감을 품에 안고 아동학대 받은 듯한 표정으로 웅크려 덜덜 떨었다. 내가 졌다. 매워진 국수를 물에 씻어 다시 담아줬다. “엄마, 맛있어.” 아이는 배고팠는지 허겁지겁 면을 넘겼다. 진작에 줄 걸... 그게 뭐가 어렵다고 아이에게 소리를 지른 걸까. 또 다시 죄책감이 밀려왔다. 욱한 걸 사과하며 솔직한 마음을 아이에게 털어놨다.     

엄마가 미안해. 네가 밥상을 세 번이나 차려달라고 해서 화가 났어. 엄마도 힘이 들거든.


나도 미안해 엄마... 내가 울어서, 엄마 화나게 해서 미안.


어쩌면 난 평생 욱하지 않는 엄마에 가닿을 수 없을지 모른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내게 늘 버겁고 어려운 과제이니까. 특히 엄마에게 완벽을 요구하는 이 세상의 육아는 인내하기 힘든 지상과제다. 그래서 다시 목표를 수정했다. 때리지만 말자. 아동학대로 경찰에 신고 당하지만 말자.      


하나 더. 잘못하면 바로 사과하자. 말보다 감정이 앞서면 미안하다고 말하자. 나이가 들어 머리가 굳어도 아이에게 고개 숙일 수 있는 엄마가 되자. 그건 인내의 문제가 아니니 할 수 있지 않을까.


덧: 딸아, 그래도 밥상 세 번 차리게는 하지 말렴. 


by. 문복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는 아이를 사랑하고 미워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