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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Oct 12. 2020

엄마가 되었다, 뿔이 사라졌다

[양육자를 위한 그림책] 이진희 <어느 날 아침> 

나의 배에 또 다른 누군가 함께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꾸준히 되뇌었던 말이 있다. “나를 잃어버리지 말자.” 다행히도(?) 지금 우리 세대는 스스로 그리고 서로에게 모든 걸 희생하는 엄마가 되지 말자 격려하고 있다. 새로운 엄마상은 얼떨결에 ‘엄마’라는 존재가 되어 혼란스러웠던 나에게 일종의 진통제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아이에게 내 삶을 헌신하지 않겠어. 멋지게 내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리라.’ 다짐했다. 어느 정도로 내 삶이 송두리째 바뀔지 알지 못한 채. 


내 몸의 둥지에서 아이가 나간 지 꽤 되었지만 여전히 부푼 배를 보며, 여름에 태어난 아이를 위해 시린 목과 무릎, 발목을 담요로 덮어가며 에어컨을 끝없이 틀어야 할 때, 결코 짧은 시간만 아이를 위해 나의 삶을 할당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 내 삶이 많이 달라졌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사라진 나의 뿔


@글로연


어느 날 아침, 눈을 뜬 사슴은 아름다운 뿔 하나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며칠을 울음으로 보내다 안식처였던 숲 속 유리집에서 나와, 뿔을 찾으러 세상으로 나간다. 


내 몸의 일부가 사라진 채로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건 쉽지 않다. 변한 나를 몸과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은 시간이 필요하다. 뒤뚱뒤뚱 걸어가는 사슴의 한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가고 싶어졌다.   



사슴은 다정한 친구들을 만나며 조금씩 성장한다. 개미핥기는 사슴에게 아끼는 나뭇가지를 뿔 대신 선물하고 사슴은 이 나뭇가지로 물에 빠진 쥐토끼를 구해주기도 한다. 저마다의 상실을 경험한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다정한 위로를 건넨다. 반쪽을 잃어버린 달에게 사슴은 머리에 두르고 있던 두건을 둘러주고 돌아온다. 내가 받았던 위로를 달에게 건네며 조금 더 성장하게 된다.  



상실한 자들의 연대


엄마가 되고 난 후, 가장 감사한 것 중 하나는 엄마들의 연대감이다.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스쳐 지나가는 엄마의 어려움과 피로를 느끼며 마음 깊이 응원하게 되는 마음이란. 단 한 명도 아는 이 없는 곳으로 이사와 아이와 집에만 갇혀 있다시피 했던 고립의 시간을 지나, 일을 다시 시작하며 비슷한 공감대를 가진 엄마들을 알게 되었다. 이들과의 대화, 지지는 나를 다시 살아있게 하는 심폐소생기가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두 뿔이 새로 솟아난다


엄마가 되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전에 없던 새로운 여러 뿔이 솟아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출산과 육아를 하며 내가 뭘 좋아하고 힘들어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비로소 나를 알게 되었다. 엄마가 되고서야 보이는 새롭고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말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공감하는 마음 따뜻한 전우(!) 들을 알게 되어 외롭지 않음을. 무엇보다 스스로 속도보다는 방향을, 나 자신보다는 우리를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며. 


어느 날 아침 사라졌던 뿔이 더 튼튼하고 아름답게 돋아나는 것처럼, 

이 책이 ‘아름다운 뿔을 가진 사슴이 있었습니다.’로 시작하여 ‘아름다운 뿔을 가진 사슴이 있습니다.’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우리의 이야기도 현재진행형이다. 



written by. 조수연

그림책 큐레이션 서비스 북스 대표 


나를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웹진 '마더티브' 인스타그램  instagram.com/mother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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