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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Sep 25. 2020

90일 아기 안고 펑펑... 날 울린 그림책

[양육자를 위한 그림책] 고희영 <엄마는 해녀입니다>

90일 된 아이를 품에 안고 신나게 책을 읽어주다 마지막 페이지의 한 문장을 다 읽어주지도 못 한 채 나도 모르게 엉엉 울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난다


이 한 문장에 왜 그리도 눈물이 났을까.


일도, 개인적인 것도 느린 걸 견디지 못 하는 편이다. 빨리 알아보고 해버리고 결론 내는 것에 익숙하다. 이런 사람이 아이를 낳고 잠자는 것조차 나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되니 나도 모르게 조급함으로 가득 차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인이 아이가 생기고 이렇게 말했다. “누나, 저는 육아가 취미처럼 잠깐 잠깐 애 보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와~ 이거 장난 아니네요. 아무 것도 못 하네요, 정말.” 


시간과 체력이 가난한 자가 되었지만 뭐라도 하고 싶었다.

 

번역을 좀 했었으니 번역 아르바이트도 가능하지 않을까? 
컨설팅 프로젝트에 시간제로 해보는 건 어떨까? 


아이가 잠들고 한 두시간의 단순 업무라도 ‘내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 할 수 있다면, 잠이 더 부족해져도 좋으니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필요했다. 이런 저런 고민과 상념으로 가득했던 나에게 ‘딱 너의 숨만큼만’이라는 말은 수심 1km 아래로 한없이 가라앉고 있던 나를 물 위로 끄집어 올리며 숨통을 틔게 해주었다.  


조급해할 필요 없어.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 
그걸로 됐어. 
찬찬히 너의 속도대로, 할 수 있는 만큼만 내딛어보자. 
그래도 문제없다. 


스스로 마음이 힘든지조차 몰랐던 나에게 이 얇디 얇은 그림책 한 권은 잠시 멈춰서 나를 돌아보고 숨을 고르게 해주었다. 그리고 가장 필요했을지도 모를 다정한 공감과 위로를 건넸다. 애들만 보는 줄 알았던 그림책에 눈을 뜨게 되는 순간이었다. 애를 보여줄 게 아니라 나부터 제대로 봐야겠다. 내가 필요한 거네, 그림책. 


바다가 지겨워 도시로 떠났던 딸은 살기 위해 다시 바다로 돌아와 해녀가 된다@난다


처음엔 스페인 작가 에바 알머슨과 제주 출신의 고희영 감독이 제주 해녀들의 삶과 함께 하며 그려냈다 하여 구매했던 책이었다(그전엔 에바 알머슨의 그림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 했는데, 엄마가 되고 나니 그녀의 그림에서 한없는 따뜻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문장은 대체 어떻게 나온 걸까. 해녀의 ‘숨’이 궁금해져 알아보기 시작했다. 해녀가 스스로의 숨의 길이를 알지 못 하고 욕심을 내면 ‘물숨’을 쉬게 되고 이는 곧 목숨이 위태로워짐을 뜻한다. 지금 육지에서 편안하게 내쉬고 있는 ‘숨’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해녀들의 삶에 감동받아 회사명을 정할 때 ‘숨비소리’가 후보에 있을 정도였다. 숨비소리는 해녀들이 물질하고 나올 때 내는 휘파람 소리인데, 온 힘을 다해 생명력을 뿜어내는 소리가 아닐까?


얼마 전 싹쓰리의 린다.G(이효리의 부캐)도 방송에서 해녀의 숨을 언급했더라. ‘해녀께서 말씀하셨지. 한번 놓친 전복은 포기하라고.’ 


예전에 다니던 한 회사의 대표님은 개인의 시간을 일하는 데에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셨다. 그래야 뒤에 쫓아오는 후배들에게 뒤처지지 않는다며. 이렇게 우리는 나의 숨 이상으로 더 많이 들이쉬며 멀리 달리고 있다. 그래야 내가 더 나은 숨을 쉴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일하는 엄마일수록 나만의 숨의 길이를 알아야 한다. 지치지 않고 나를 지키며 버티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아이가 아파서, 코로나로 가정보육해야 해서 등등 그나마 일할 수 있는 시간마저 육아에 치이고 내 숨이 코끝까지 올라와 있는 듯할 때는 이 문장을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 숨 이상으로 욕심내지 말자. 
멀리보자. 
하루이틀 하고 말 거 아니잖아? 


그리고 이런 생각은 다시 조급해져오는 숨의 템포를 늦춰준다. 


written by. 조수연(그림책 큐레이션 서비스 북스 대표) 



나를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웹진 '마더티브' 인스타그램  instagram.com/mother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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