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자를 위한 그림책] 고희영 <엄마는 해녀입니다>
90일 된 아이를 품에 안고 신나게 책을 읽어주다 마지막 페이지의 한 문장을 다 읽어주지도 못 한 채 나도 모르게 엉엉 울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거라.’
이 한 문장에 왜 그리도 눈물이 났을까.
일도, 개인적인 것도 느린 걸 견디지 못 하는 편이다. 빨리 알아보고 해버리고 결론 내는 것에 익숙하다. 이런 사람이 아이를 낳고 잠자는 것조차 나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되니 나도 모르게 조급함으로 가득 차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인이 아이가 생기고 이렇게 말했다. “누나, 저는 육아가 취미처럼 잠깐 잠깐 애 보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와~ 이거 장난 아니네요. 아무 것도 못 하네요, 정말.”
시간과 체력이 가난한 자가 되었지만 뭐라도 하고 싶었다.
번역을 좀 했었으니 번역 아르바이트도 가능하지 않을까?
컨설팅 프로젝트에 시간제로 해보는 건 어떨까?
아이가 잠들고 한 두시간의 단순 업무라도 ‘내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 할 수 있다면, 잠이 더 부족해져도 좋으니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필요했다. 이런 저런 고민과 상념으로 가득했던 나에게 ‘딱 너의 숨만큼만’이라는 말은 수심 1km 아래로 한없이 가라앉고 있던 나를 물 위로 끄집어 올리며 숨통을 틔게 해주었다.
조급해할 필요 없어.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
그걸로 됐어.
찬찬히 너의 속도대로, 할 수 있는 만큼만 내딛어보자.
그래도 문제없다.
스스로 마음이 힘든지조차 몰랐던 나에게 이 얇디 얇은 그림책 한 권은 잠시 멈춰서 나를 돌아보고 숨을 고르게 해주었다. 그리고 가장 필요했을지도 모를 다정한 공감과 위로를 건넸다. 애들만 보는 줄 알았던 그림책에 눈을 뜨게 되는 순간이었다. 애를 보여줄 게 아니라 나부터 제대로 봐야겠다. 내가 필요한 거네, 그림책.
처음엔 스페인 작가 에바 알머슨과 제주 출신의 고희영 감독이 제주 해녀들의 삶과 함께 하며 그려냈다 하여 구매했던 책이었다(그전엔 에바 알머슨의 그림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 했는데, 엄마가 되고 나니 그녀의 그림에서 한없는 따뜻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 문장은 대체 어떻게 나온 걸까. 해녀의 ‘숨’이 궁금해져 알아보기 시작했다. 해녀가 스스로의 숨의 길이를 알지 못 하고 욕심을 내면 ‘물숨’을 쉬게 되고 이는 곧 목숨이 위태로워짐을 뜻한다. 지금 육지에서 편안하게 내쉬고 있는 ‘숨’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해녀들의 삶에 감동받아 회사명을 정할 때 ‘숨비소리’가 후보에 있을 정도였다. 숨비소리는 해녀들이 물질하고 나올 때 내는 휘파람 소리인데, 온 힘을 다해 생명력을 뿜어내는 소리가 아닐까?
얼마 전 싹쓰리의 린다.G(이효리의 부캐)도 방송에서 해녀의 숨을 언급했더라. ‘해녀께서 말씀하셨지. 한번 놓친 전복은 포기하라고.’
예전에 다니던 한 회사의 대표님은 개인의 시간을 일하는 데에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셨다. 그래야 뒤에 쫓아오는 후배들에게 뒤처지지 않는다며. 이렇게 우리는 나의 숨 이상으로 더 많이 들이쉬며 멀리 달리고 있다. 그래야 내가 더 나은 숨을 쉴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일하는 엄마일수록 나만의 숨의 길이를 알아야 한다. 지치지 않고 나를 지키며 버티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아이가 아파서, 코로나로 가정보육해야 해서 등등 그나마 일할 수 있는 시간마저 육아에 치이고 내 숨이 코끝까지 올라와 있는 듯할 때는 이 문장을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 숨 이상으로 욕심내지 말자.
멀리보자.
하루이틀 하고 말 거 아니잖아?
그리고 이런 생각은 다시 조급해져오는 숨의 템포를 늦춰준다.
written by. 조수연(그림책 큐레이션 서비스 북스 대표)
나를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웹진 '마더티브' 인스타그램 instagram.com/mother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