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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Oct 16. 2020

조금 다르게 시골에서 살아도 괜찮아

[엄마의 책장] 마스다 미리 <주말엔 숲으로>

안녕하세요. 마더티브 에디터 홍입니다. 


여백 없이 빡빡한 글을 읽는 게 지치는 날 있죠. 요즘 제가 그래요. 한동안 편집 작업 때문에 하루 종일 글자를 보고 또 봤더니 글은 꼴도 보기도 싫은 거 있죠. 가뜩이나 머릿속도 복잡한데 읽는 책만큼은 무겁지 않았으면 했어요. 


그럴 때 우연히 만나게 된 책이 <주말엔 숲으로>였어요. 


아날로그 감성이 느껴지는 표지에 귀여운 일러스트만 보고는 흔한 힐링 만화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삼시 세끼>나 <리틀 포레스트>처럼 도시를 떠나 숲에 갔더니 진짜 행복을 찾았답니다^^ 느낌적 느낌? 왠지 밀짚모자 쓰고 밭 일굴 것만 같고, 왠지 직접 지은 농작물로 건강한 요리 해 먹을 것 같고 말이죠. 


책을 펼치자마자 예상은 완전히 깨졌어요. 프리랜서 번역가인 하야카와는 어느 날 갑자기 시골에 가기로 결심해요. 시골에서 살아보겠다는 확고한 의지라기보다는 “되는 대로 해보자"“한번 해보지, 뭐!”라는 마음으로요. 


<주말엔 숲으로> 책 표지@이봄 



1. 뭐야, 슬로우 라이프라니 


@이봄


하야카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지 않아요. 본업인 번역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주민회관에서 ‘기모노 입는 법'을 가르치고 동네 중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해요. 채소는 택배로 배달해서 먹고요. 언제 도시로 돌아가고 싶어 질지 모르니 애완동물을 키우지도 않죠. 


하야카와에게는 마유미와 세스코라는 두 명의 친한 친구가 있어요. 셋 다 비혼이에요.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마유미와 세스코는 주말이면 따로 또 함께 하야카와의 시골집에 놀러 와요. 손에는 도시의 유명한 맛집 음식이 들려있어요(일본 맛집 이름이 줄줄이 나오는데 언젠가 꼭 가보고 싶더라고요).


친구들도 처음에는 하야카와의 시골 생활에 대해 의아해해요. 이런 곳에 살면 채소도 직접 키우고 그러는 거 아니냐고 말이에요. n잡으로 바쁜 하야카와에게 그건 전혀 슬로 라이프가 아니지 않냐고 반문하기도 해요. 하야카와는 느긋한 표정으로 말해요. 


“뭐야, 슬로 라이프라니. 거북이도 아니고.
우린 ‘싸움에 진 다람쥐 탐험대'라고~” 



‘싸움에 진 다람쥐 탐험대', 귀엽지 않나요? 시골에서는 꼭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정답지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살아야 할 필요도 없고요. 너무 애쓰지 않고 자신만의 여백과 속도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하야카와의 모습이 묘하게 위로가 됐어요.  



2. 띵, 띵, 띵언 


@이봄


이젠 좀 쉬워질 때도 된 것 같은데 왜 사는 건 갈수록 어렵기만 한지. 사실 이 책을 읽을 때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에 휩싸여 있었어요.


하야카와는 친구들과 함께 숲을 걷고 노를 저으면서 무심하게 선문답 같은 말을 툭툭 내뱉는데요. 그 말이 오래오래 여운이 남더라고요. 


마유미와 함께 카약을 타면서 하야카와는 말해요. “손끝만 보지 말고 가고 싶은 곳을 보면서 저으면, 그곳에 다가갈 수 있어"라고요. 세스코, 마유미와 함께 카약을 타면서 하야카와는 또 이렇게 말해요. “똑바로 나갈 것인지, 작게 회전하면서 빠져나갈 것인지, 상황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라고요.  


마유미는 출판사 경리부에서, 세스코는 여행사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있는데요. 직장 생활이 누구나 그렇듯  일 때문에, 사람 때문에 힘들어해요. 이 일이 과연 내게 맞는 걸까 의심하기도 하고요. 꼭 제 모습처럼요. 그때마다 두 사람은 숲에서 하야카와가 건넨 메시지를 떠올리며 위안과 힘을 얻어요. 현재에만 매몰되지 않고 조금 더 멀리 보면서 완급을 조절하면서 노를 저어 보기로 하죠. 



3. 애는 없어도 친구는 필요해

 

@이봄


이 책의 작가 마스다 미리는 ‘수짱 시리즈',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등을 통해 비혼 여성의 삶을 만화와 에세이로 그려왔어요. 일본 여성들의 정신적 지주, ‘국민 언니'로 불린다고 하네요.

 

책에서 세스코는 이렇게 말해요. 어른이 되면 뭐든지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세계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어른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고요. 그러자 하야카와는 “우리는 아이도 낳은 적도 없고, 평생 모를 수도 있고"라고 덧붙여요. 세스코는 말해요. 한 가지는 알겠다고요. 아이가 없더라도 친구는 필요하다는 걸요.  


사실 아이를 낳아도 어른이 된다는 게 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더라고요. 기혼은 기혼대로, 비혼은 비혼대로 고충이 있을 거예요. 누구든 가보지 않은 길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주말에 시골 사는 친구 집에 찾아가 함께 숲을 거닐고 코타츠에서 맛있는 음식 함께 먹으며 수다 떨 수 있는 자유가 살짝, 아니 많이 부럽기는 했어요. 언제든 쉽게 연락하고 볼 수 있었던 그 친구들은 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마음이 조금이 헛헛해지기도 했고요. 


이 책을 읽고 저는 마음속에 작은 숲길이 하나 생긴 기분이었어요. 현생에 지쳐, 코로나에 지쳐 오랫동안 못 본 친구들에게 연락 한번 해봐야겠어요. 


이런 엄마들에게 추천

1. 방구석에서 숲을 보고 싶다면 
2. 삶에 여백이 필요할 때 
3. 육아 이야기가 지겨울 때 



Written by. 에디터 홍

화가 나면 글로 풉니다. 기획하고 연결하는 사람.   


마더티브 인스타그램 instagram.com/mother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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