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 안내서>를 만들게 된 이유
일하지 않는 나를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엄마가 되고 난 후 일하는 하루하루가 도전이었습니다. “엄마 회사 가지 마” 우는 아이를 뒤로하고 나서는 출근길과 아이들을 재우고 늦은 밤 다시 책상에 앉는 건 일상이 되었습니다. 일이 산더미여도 아이들이 아프면 모든 걸 멈춰야 하고 평일 저녁 시간과 주말은 ‘아무것도 못 한다’가 기본값입니다. 잠을 줄이고 이동 시간도 틈틈이 쓰면서 일에도, 육아에도 열심이지만 그래도 어딘가 부족하고 미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집에서 일에 몰두했던 어느 날, 아이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뭐 대단한 일 한다고 애 울음소리도 못 듣나’ 나쁜 엄마가 된 것 같아 눈물로 밤을 새웠습니다. / 인성
서울, 부산, 대구를 옆동네처럼 누비며 교통수단별 시간 활용팁이 쌓여갑니다. KTX에서는 집중해서 일하고, 운전 중에는 장시간 통화가 필요한 업무나 팟캐스트 청취의 시간으로, 심야 귀가 시에는 별다방 프라푸치노 한 잔 값을 아껴 리무진 버스로 체력을 축적할 것. 서울역 택시 승강장에서 집으로 향하는 기차까지 2분 만에 질주하며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달리기 능력을 발견합니다.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를 생각하면 초인적인 힘이 솟아납니다. 그럼에도 늘 미안하고 부족한 엄마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속상하지만, 오늘 엄마가 하원시간에 못 온 이유를 아이에게 설명하며 스스로 다짐합니다. 너를 위해서 엄마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고. / 유미
아이가 콧물이라도 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내일 출근할 수 있을까. 이렇게 계속 일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링거를 맞고 위산제를 털어 넣던 어느 날, 9년 다닌 회사에 사표를 냈습니다. 퇴사한 지 2년, 이직과 창업을 거치는 사이 아이는 훌쩍 컸지만 여전히 일-가정 양립은 위태위태합니다. 하고 싶은 일도 있고, 최선을 다하면 잘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늘 시간 부족에 허덕입니다. “엄마는 맨날 놀아주지도 않고 일만 하니까 어린이집이나 가야겠다”는 5살 아이의 푸념을 들으며 내가 너무 욕심부리고 있는 게 아닐까. 가족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게 아닐까. 수시로 죄책감과 회의감이 밀려옵니다. / 현진
왜 이렇게 어려울까? 나만 어려울까? 나만 포기하면 되는 걸까? 고민은 끝이 없었지만 어디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방황하면서도 우리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내 일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나를 지키고 싶은 엄마를 위한 웹진 <마더티브>, 엄마의 잠재력에 주목하는 <포포포 매거진>. 엄마들의 서사를 담는 우리는 그 해답을 직접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인터뷰 시작을 코앞에 두고 코로나19 확산이 다시 극심해졌지만 엄마들은 발이 묶이는 상황이 익숙했습니다. 밤 10시, 아슬아슬 아이를 재우고 비로소 혼자가 될 수 있는 시간에야 우리는 컴퓨터 앞에 앉아 서로를 마주했습니다. 비록 온라인이었지만 진심 어린 공감과 위로를 나누며 인터뷰는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습니다.
직장맘 20년, 엄마가 된 후 성취감의 기준이 달라진 이혜선님
육아휴직 1호, 재취업… 다양한 현실 조언 대방출한 최유진님
5년 경력 공백을 딛고 전공과 경력을 이어가고 있는 안자영님
동네 사진관을 운영하며 또 다른 꿈을 탐색 중인 이민정님
사이드 프로젝트 ‘밀키베이비’를 내 일로 확장한 김우영님
이직만 6번, ‘일-가정 양립’ 위해 분투 중인 송지현님
‘워킹맘 불모지’ 국회에서 살아남기로 결심한 장명희님
창업과 동시에 임신해 아이와 회사를 동시에 키워낸 조현주님
엄마로 시작된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애플맘’ 정민지님
책방을 아이와 엄마가 함께 자라는 공간으로 만든 박성혜님
30시간의 인터뷰에서는 사적이지만 그래서 더 필요한 구체적인 경험담과 현실적인 조언들이 쏟아졌습니다. 뒤에 올 엄마들의 절실한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10명의 인터뷰이는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가 명쾌한 해답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당장 이직이나 재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이 책이 우리 뒤에 올 여성들이 나아갈 길 위의 돌부리 몇 개를 치우고, 몇 가지 방향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되길 바랍니다. 조금이나마 우리보다 덜 넘어지고, 덜 헤매도록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