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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Dec 20. 2018

유모차에게 잔인한 도시, 홍콩

[엄마의 PLACE] 유모차로 홍콩을 여행한다는 것

홍콩에 대해 들었던 악명은 대부분 날씨에 관한 것이었다. 날씨가 엄청 덥고 습해서 사우나에서 걸어 다니는 느낌이라고. 남자친구와 함께 홍콩에 다녀온 친구는 길에서 많이싸웠다고 했다. 그래도 먹거리, 볼거리, 쇼핑할 거리가 많다고. 여기까지가 내가 들은 홍콩의 전부였다.

아이를 데리고 홍콩을 여행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3박4일간 여행을 다녀온 후 내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정형외과였다. 무릎이 너무 아파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고, 10만원 주고 도수치료를 받았다. 남편과 다짐했다. 홍콩은 10년 후쯤 애가 혼자서도 잘 걸을 수 있을 때 다시 가자고. 유모차 없어도 될 때.

여행 당시 28개월이었던 아이는 잘 걷는 편이었지만 오래 걸으면 다리가 아프다고 안아달라고 했다. 이미 몸무게가 15kg이 넘은 아이를 수시로 안아줄 수는 없었다. 유모차는 필수였다. 하지만 홍콩은 전혀 유모차 친화적인 도시가 아니었다.

홍콩에 유모차 끌고 갈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홍콩에 유모차 가져갔을 때 생길 수 있는 일들.


1. 소호거리



할머니집은 부산 영도에 있는 산복도로였다. 차를 타고 가면 커다란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데 경사가 얼마나 가파른지 차가 뒤집히는 게 아닐까 무서웠다. 홍콩 공항에서 택시 잡아타고 소호에 위치한 숙소로 가는 길, 20년 전 느꼈던 아찔함을 다시 경험했다.



유모차에 앉아계신 분은 편해 보인다 (feat. 요땡 유모차)


아니 대체 오르막길 끝이 어디냐고요


내려올 때도 도가니 주의



이 좁고 가파른 길을 택시로 간다니... 올라가고 내려갈 때마다 택시가 뒤집히거나 고꾸라지는 게 아닐까 조마조마 했다. 남편은 아이를, 나는 손잡이를 꼭 잡았다. 차도 양 옆, 역시 가파르고 좁은 인도에서 유모차를 끌고 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경사로만 있으면 다행이다. 저 층층 계단은 뭐란 말인가. 유모차를 끈 아빠는 많이 지쳐보였다. 나는 직감했다. 저게 우리 미래구나.

3박4일 일정 중 2박은 소호, 1박은 침사추이에서 보냈다. 예술거리로 불리는 소호 지역은 달동네 같은 느낌이다. 경사가 가파르고 계단이 많다. 길도 울퉁불퉁. 사람도 어찌나 많은지. 세계 인구 밀도 1위를 실감했다.


여기를 유모차로 뚫고 지나가야 한다


사람만 많냐, 차도 많다


아이가 깨어있을 때는 내려서 걸으라고 할 수 있지만 잠들었을 때가 문제였다. 계단이 나올 때마다 남편은 아이(15kg)를 유모차(6kg)에 태운 채로 들어 올렸다. 남편 혼자 힘들 때는 내가 유모차 앞부분을, 남편이 유모차 뒷부분을 잡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계단이 몇 개 없을 때는 유모차 태운 채로 한 칸 한 칸 이동했다. 극기훈련 하는 줄.

이거 실화냐


깨어있을 때는 천만다행


참, 가기 전에 ‘대륙의 실수’라는 요땡 유모차를 7만5천 원 주고 사서 들고 갔는데, 진짜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폴딩형이라 그런지(요땡이라 그런 건가;;) 유모차 뒷쪽에 힘이 안 실려서 계단 오를 때마다 휘청휘청. 이게 활이야 유모차야. 그래도 핸들링은 의외로 매우 괜찮았다. 이건 평지에서만 끄는 걸로. 

요땡에겐 너무 버거운 아드님


소호까지 왔는데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안 타볼 수 없다. 800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옥외 에스컬레이터로, 영화 <중경삼림>에도 나왔단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이 에스컬레이터는 출퇴근 시간을 고려해서 오전 6시~10시는 하행, 오전 10시~밤 12시는 상행으로 운행한다. 

한마디로 올라갈 수는 있어도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없다는 말씀(오전 10시 이전에는 반대). 에스컬레이터 타고 신나게 올라갔다가 중간에 내려서 또 다시 유모차를 들고 계단으로 내려왔다는 슬픈 이야기.

탈 때까지만 해도 좋았지


저 계단을 유모차 들고 내려온다면


이후에 간 침사추이는 명품거리답게 길이 널찍하고 평지라 비교적 유모차 끌고 다니기 편했다(이곳은 워낙 넓어서 유모차 필수!)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소호다. 


아이 자는 틈 타서 백종원이 먹었다는 토마토 라면 영접(뒤에 또 계단...)


아찔한 고층 빌딩과 쓰러질 듯 허름한 집과 한창 공사중인 건물이 공존하는 곳. 힙하고 핫한 카페, 메뉴판을 막 던지는 오래된 식당, 생기 넘치는 시장이 전혀 위화감 없이 어울리는 곳. 가장 홍콩스러운 곳이었다. 언덕과 계단이 많아서 내 무릎은 비명을 질렀지만 이 골목을 지나면 또 뭐가 있을까 기대하며 걷고 또 걸었다(그래서 무릎 완전 나갔...).


2.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


주말이면 이주여성 출신 시터들이 지하철역에 나와서 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홍콩 지하철역에서는 기본적으로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를 찾기 어려웠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도 곳곳에 계단이 있고, 우회로가 없는 곳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유동인구가 많고, 유모차를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오히려 한국은 괜찮은 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죽하면 남편과 그런 이야기를 했다. ‘여기는 인구밀도가 높아서 애가 안 태어나도 상관없는 거 아닐까…’

지하철역에서 엘리베이터를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좁고 가파르고 또 매우 빨랐다. 아이는 잠들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랬다가는 목숨이 위험할 것 같았다. 결국 자는 아이를 남편이 유모차에서 꺼내서 안고, 나는 유모차를 들고 계단으로 올라갔다.


3. 디즈니랜드


미키마우스 열차 타고 추울발!


홍콩에서도 유모차의 천국인 곳이 있었다. 바로 디즈니랜드! 디즈니랜드에서는 표 받을 때 유모차 이름표도 함께 준다. 놀이기구 앞에 유모차 주차장이 따로 있을 정도다. 게다가 모두 평지. 홍콩에서 가장 유모차 친화적인 곳이었다.

평지다!


평지라구 ㅠㅠ


아이가 아직 어려서 놀이기구를 탈 수 있을까 했는데 돌아가는 컵을 두 번이나 탔다. 나는 타기만 해도 어지러웠는데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신나 했다. 30분 정도 하는 라이온킹 공연을 봤는데 노래와 춤이 정말 고퀄이다. 시간표 확인해서 꼭 보길. 모아나 공연도 재밌었다.

아이는 곰돌이 푸와 사랑에 빠졌고, 스타워즈 덕후인 남편은 기념품 숍에서 영혼을 뺏겼다. 어린 시절, 일요일마다 TV 앞에 앉아 디즈니 만화를 보던 시절이 떠올라 즐거웠다. 아이와 함께 간다면 디즈니랜드는 꼭 들르길. 놀이기구 못 타도 볼거리 가득하다. 


아이와 유모차로 홍콩 여행할 때 TIP

1. 기본적으로 동선이 길고 경사로가 많아서 유모차를 안 가져갈 수는 없다.
2. 유모차를 못 타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으니 휴대가 편한 유모차로(튼튼하면 더 좋다).
3. 극기 훈련이 두렵다면 디즈니랜드와 대형 쇼핑몰을 공략하는 것도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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