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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Dec 20. 2018

아내 없는 48시간... 그래도 지구는 돈다

[엄마의 PLACE-번외편] 애 엄마가 제주도로 MT를 갔다②

by. 주영 남편 털보


아이가 있는 집의 아침은 KBS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처럼 알콩달콩하지도사랑으로 충만하지 않다결코그 순간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개판이다어린이집에 가기 싫은 아이는 잠이 덜 깬 얼굴로 온갖 장난감을 소환하고각종 상황극을 연출한다우리 집 따님은 주로 아침마다 장난감 병원 의사 선생님이 되곤 한다그리고 상황극을 방해하기 위한 전파 공작텔레비전이 요란하게 혼잣말을 한다.


프레디 머큐리 놀이한 날...(먼 산)


이날도 여느 때와 같았다아침부터 의사 선생님이 된 따님출근 준비를 하는 어제의 뽑기 영웅’(1편 참고그리고 딸의 등원을 돕기 위해 아침부터 고생 중이신 장모님문득 계란을 떠올렸다아내는 계란 노른자처럼 영양가 있는 아침을 보내고 있을 것이고나머지는 흰자와 같이 머리가 하얘진 상태였다.
  
우리 집 따님은 잘 때 엄마보다는 아빠를 찾는 편이다어렸을 때부터 나와 잠을 자던 버릇이 들어서다그런데 아침에는 아빠와 엄마 둘 다 찾는다해 떠 있을 때 못 보는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1초라도 더 각막에 새겨놓고 싶어서일 듯하다만 35개월 아기의 갈구는 나의 출근을 더디게 한다돈 좀 벌겠다는 이유로 핏덩이를 똑 떨어트려놓기 미안해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다가 헐레벌떡 뛰어나오기 일쑤다



멍청이가 된 영웅


이날도 마찬가지. 7시 53분에 대문을 나선 나는 장모님 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를 외치며 발걸음을 재촉했고손녀와 함께 집에 남은 장모님은 김서방잘 다녀오게늦어서 어쩌나라고 답해주셨다
  
종종걸음으로 버스를 타고 한숨 돌리는데 카톡이 도착했다멀리 제주도에서여보조금 있다가 세연이 등원하기 전에 영상통화 좀 연결해줘보고 싶네.” 몸은 수백 km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지근거리인가 보다만원 버스 안에서 멋쩍은 아빠 미소를 지으며 난 답했다방금 버스 탔어요장모님께 말씀드릴게.”
  
예상치 못한 카톡이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불과 1~2분 뒤


여보, 오늘 휴가 아니었어? 금요일에 휴가 쓰기로 했었잖아.


... 맞다아내의 제주도 엠티 두 번째 날에 휴가를 쓰고 집에서 따님을 케어하기로 했었지. ‘뽑기 영웅의 영광은 한겨울 입김처럼 날아가고 쉬는 날도 모르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추락은 한순간이다이내 죄책감이 밀려온다회사 안 가는 날인지도 모르고 장모님을 아침부터 고생시키다니



‘영혼의 무게’에 대하여


머리카락도 없는 머리를 긁적이며 장모님께 휴가 사실을 알렸다집 나간 줄 알았던 아빠가 돌아오니 따님은 깜짝 선물이라도 받은 듯 뛰었다장난감 병원 의사 놀이를 30분 정도 더 한 뒤 집을 나섰고어린이집에 골인
  
점심 즈음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발신자를 보자마자 직감할 수 있었다. ‘오늘 휴가도 날아가겠군.’ 그는 며칠 전 기고를 부탁했던 한 정치인그는 아무래도 기고가 어려우니 전화 인터뷰로 갈음하자는 것눈앞에서 뉴스가 사라지는 걸 방기 하면 그것은 직무유기이것은 기자의 운명 같은 것이렷다
  
급하게 인터뷰를 진행하고기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남이 들으면 의아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쉬는 복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상당수 휴가 때 일을 하곤 한다. 

기사를 거의 마무리할 즈음제주도에 있는 아내가 카톡을 보냈다


여봉❤


이 하트는 주로 아내가 내게 뭔가 부탁할 때 쓰는 특수기호다그녀는 웬만한 일이 아니면 이 특수기호를 쓰지 않는다뭔가 일이 틀어지고 있구나


나 내일 아침 비행기 타고 가도 돼? 오늘 저녁에 못 가겠어. 넘 피곤해잉...


흔들리는 마음... 넌 아니?


정적 속에 카톡창을 바라봤다어떻게 답해야 하나안된다고 할까그러면 약 한 달 동안의 가정생활은 망가진다날씨도 추운데 집안까지 냉랭해질 수는 없다답은 이미 나와있다긍정이다24시간 제주에 더 있는다고 해서 아내가 직무를 유기하는 것도 아니고나 역시 나름 육아로 단련돼 있어 문제는 없다게다가 아내는 얼마 만에 자유를 만끽하는 건가거기에 찬물을 들이부을 수는 없다
  
문제는 그 긍정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가였다너무 경솔하지 않으면서도나의 힘듦이 드러나는 긍정아내의 24시간을 응원하면서도 나의 24시간도 인정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모든 것을 적절히 섞어야 했다게다가 시간을 너무 끌면 안 된다답장 시간이 늦어질수록 부정의 대답으로 아내가 오해할 수 있으니까신속하고도 정확하게
  
그래” 문장을 입력하고 나서 한참 걱정했다. ‘이 하나라 영혼이 없다고 오해하면 어쩌지? ‘이 너무 많으면 가식적으로 보일 것 같아서 하나만 입력했는데세 개는 넣었어야 했나... 


"우리 제주도 가자"


따님은 아빠만 덩그러니 있는 집에서 저녁을 보냈다밥도 먹고장난감도 가지고 놀고뜨거운 물로 샤워도 하고책도 읽었다바다 배경에 야자수가 한 그루 서 있는 그림을 본 따님이 물었다


“아빠, 이거 제주도야?”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건 바다 섬이잖아.”
“아빠, 엄마는 제주도야?”
“웅웅. 엄마는 내일 올 거야.”
“아빠, 우리도 제주도 가자.”
“...”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방 안에서 엄마빨리 와!” 삼창을 함께한 따님과 나는 침대에 누웠다따님에게 물었다


“세연아. 아빠 어제 세연이 새로운 어린이집 당첨됐어. 거기 좋은 곳이야. 세연이도 기분 좋지?”
“아빠, 세연이 잘 거야. 자장가 노래 불러줘.”
“...”


35개월 따님께 칭찬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바랄 걸 바라야지



엄마이기 전에 이주영, 아빠이기 전에 김지현


우리 가족(엄마는 저 뒤에...)


어렵게 든 잠은 금방 깼다해가 짧아졌다는데 참 빨리도 오더라해는 참 빨리 왔는데, ‘의 발걸음은 참 더디게 느껴지더라낮 2시께 옆지기와 따님이 상봉했다아침도 거르고 날아온 터라 옆지기의 밥상을 차리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
  
2박 3참 길었다하지만 아내에게는 참 짧았을 것이다약 3년 만의 외출. 48시간은 아내의 삶을 어떻게 바꿔놨을까옆지기의 광대뼈가 1cm가량 올라간 걸 보니 좋은 인상을 남겼음이 분명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몸은 고됐지만마음은 훈훈하다누군가의 말처럼 그래도 지구는 돈다’. 옆지기가 없다고 해서 육아가 망가지는 게 아니다그 역할을 할 수 있는 내가 있다따님은 따님대로 엄마의 부재를 인정했고그에 맞춰 아빠와 신나게 보냈다그거면 된 거다. 언젠가 내가 자리를 비워도 일상의 톱니바퀴는 서로가 서로를 물면서 원활히 돌아갈 것이다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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