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PLACE-번외편] 애엄마가 제주도로 MT를 갔다①
10월의 어느 월요일, 그날은 무슨 이유인지 작두 탄 듯 일에 홀려 있었다. 옆에서 앉은 후배 조가 “선배, 부담스럽게 왜 그러느냐”라고 물을 정도로. “월급쟁이는 열심히 살아야지”라고 웃는 낯으로 답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일상의 잔잔한 바다가 크게 출렁일 줄은.
점심도 못 먹고 일하고 있었던 오후 1시 22분, 휴대전화가 ‘카톡’ 하고 울렸다. 보낸 이는 ‘주영이’, 옆지기. 메시지를 읽어 내려가는 내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여봉 ㅠㅠ 정치부는 엠티 안 가? 우리 부서는 엠티 간대 ㅠㅠ 제주도로 ㅠㅠ
카톡에서 아내는 울고 있었다. 아마 미안함 때문이리라. 외딴집에 아이와 함께 남은 내가 힘들어할 것이라는 우려, 흡연자 사위 때문에 몇 시간 간격으로 집으로 찾아올 친정엄마에 대한 걱정... 무엇보다 부채감이 컸으리라. 옆지기와 나는 최대한 n분의 1 육아를 지향하기 때문에. n이 2가 아니라 1이 되는 상황을 자신이 만드는 거니까.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현실에서 아내는 울면서 웃었을 것이다. 아마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해방감 때문이리라. 외딴섬에서 멍 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도둑처럼 찾아왔으니까. 담배 피우는 미개인 밖에 나가는 거 신경 안 써도 되니까. n분의 1 육아는 잠깐 깨지지만, 이것은 내 의사가 아니니까. 불가항력적이니까. 크나큰 권력(aka. 부장님)의 명령이고 지시니까.
나는 이렇게 답했다.
우린 엠티 없지 ㅋㅋㅋㅋ(엠티라니 대단하구만)
조심히 잘 다녀와요!!(좋겠다, 즐기다 와)
비행기표 예약이 관건이겠구먼 ㅋㅋ(표 없으면 못 가는 거지?)
일정은 11월 마지막 주 목금토 2박 3일. 아내는 “죄짓는 것”이 싫어서 1박 2일만 하고 조기 귀환하기로 했단다.
나는 아무 문제없다는 듯 허락했지만, 속 마음은 걱정으로 가득 찼다. 잘할 수 있을까, 아이와의 일대일 승부에서 흰 깃발을 들고 투항해 괜스레 텔레비전만 틀어놓는 건 아닐는지, 밥 먹이다가 장난치는 아이에게 상처 받아 우울해하진 않을지, 피우지 못할 담배는 또 어찌할는지... 날짜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비장함은 더해졌다.
하지만 난 웃었다. 출산 후 제대로 콧바람도 못 쐬어본 옆지기였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나는 옆지기에게 크나큰 빚이 있었다. 옆지기는 해산 후 곧바로 육아휴직에 돌입해 1년간 전업으로 아이를 돌보며 가장 힘든 영유아 시기를 책임졌다. 말이 조금 통할 때 꼴랑 육아휴직 4개월을 했던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너무나도 식상한 표현, 하지만 무척이나 적확한 묘사, ‘창살 없는 감옥’에서 1년 여를 버텨온 아내였다. 그런 아내가 바람 좀 쐬러 가겠다는데, 쪼잔하게 구는 건 안 된다. 그것은 죄다.
11월 29일, 아내가 제주도로 떠나는 날. 그녀는 내게 분명히 이렇게 인사했다. "미안해요, 여봉. 잘 다녀올게. 우리 내일 만나자." 나는 답했다. "웅웅! 여기 생각은 한 톨도 하지 말고 제주를 느끼고 와! 이런 기회 또 없어. ‘내일’ 보자!"
그렇게 아내는 깃털처럼 날아갔고, 나는 납덩이처럼 집에 앉았다. 왜 납덩이냐고? 아내가 부러워서가 아니다. 내 심장 속 납의 절반은 다가올 밤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고, 또 다른 절반은 이날 저녁 6시 30분 00초부터 시작될 어린이집 입학 확정 추첨 때문이었다.
따님은 만 3세가 지났다. 지금 다니던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다른 어린이집으로 가든, 유치원으로 가든 택해야 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집 근처 근로복지공단 어린이집에 입학 지원서를 넣었는데, 운이 좋게도 1차 서류전형을 통과했다. 이제 남은 관문은 2차 추첨. 세 자리를 두고 10명의 학부모가 싸워 합격 여부를 가려야 했다. 하필이면 옆지기가 집을 비우는 날, 나는 어린이집 추첨에 참가해야 했다.
제주에 도착한 아내는 꽤 들떴나 보다. 이런저런 사진을 보내왔지만, 내 모든 신경은 어린이집 추첨에 쏠려 있었다. 우리가 지원한 어린이집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교육비가 적게 들고, 양질의 환경을 조성해놓은 시설이었다. 박용진 3법으로 사립유치원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을 때라 합격만 한다면 걱정은 저기 멀리 훠이 던져버려도 될 곳이었다. 마음속으로는 ‘반드시’를 외쳤다. 하지만 제주에 취한 아내는 어린이집의 ‘ㅇ’도, 추첨의 ‘ㅊ’도 먼저 꺼내지 않았다.
오후 5시 55분, 벌써 깜깜하게 어두워졌다. 비장한 표정을 한 아저씨 하나가 불 켜진 어린이집 앞에 섰다.
"아버님, 추첨하러 오셨어요? 6시 30분 정각에 맞춰서 시작할 테니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그곳은 전쟁터였다. 엄마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어머님들 사이에 홀로 아저씨였던 나는 소리 없는 총성이 울리던 대강당에서 평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백마고지 같은 곳이 너무 적막하고 외로워 옆지기에게 추첨장 사진을 찍어 보냈다. 하지만 말풍선 앞의 숫자 1은 사라지지 않았다(...).
6시 30분 00초가 되자, 전사들 앞에 선 원장이 운을 뗀다. "먼저 가위바위보로 추첨 순서를 정한 뒤, 순서대로 탁구공을 뽑겠습니다. 그 탁구공에 적힌 번호가 대기번호 숫자이고요. 현재 3명을 뽑아야 하니 1, 2, 3번은 당첨. 4번부터 10번은 대기입니다."
그때 알았다. 내 심장이 얼마나 건강한지.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가위바위보를 했지만, 결과는 뒤에서 두 번째. 패장의 얼굴을 하고 추첨 줄 끄트머리에 섰다.
난 알고 있었다. 영웅과 역적은 한 끗 차이라는 걸. 이 자리에서 당첨되면 난 교육비 수백만 원을 절약시켜준 영웅이 되는 것이고, 아니면 더도 덜도 아닌 ‘실패자’가 된다. 그런데 추첨 순서가 뒤에서 두 번째라니... 앞선 사람들이 모두 당첨되면 뽑아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떨궈야 했다.
"어머어머! 됐어!", "세상에!" 앞선 두 어머님이 짧은 환호를 질러댔다. ‘이제 마음을 내려놓자, 대기번호나 받아놓자’라고 생각하며 공을 뽑았다. 두꺼운 손가락에 가려진 번호. 노름꾼이 화투장을 서서히 밀어 확인하듯 손가락을 떼었더니...
1
됐다. 됐어.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한다. 이 소식을 옆지기에 알려야 한다. 숫자 1이 잘 보이게 사진 찍어 옆지기에게 카톡을 보냈다. “여보ㅠㅠ 됐어ㅠㅠ”
이번에는 금방 말풍선 앞 숫자가 사라졌다. “여보가 해냈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저 멀리서 답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흥겨워 전화를 걸었지만 전우는 받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내 카톡이 왔다.
여보! 나 문어숙회 먹고 있어ㅋㅋ 나중에 전화할게 ㅋㅋㅋ
그리고 그날 옆지기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축하 없는 승리에 무척이나 어둡고 추운 밤으로 기억한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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