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영화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뒤늦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고 푹 빠졌다.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보고 또 보고 원작 <그해, 여름 손님>도 읽어보고, 애 재워놓고 틈틈이 유튜브에 있는 배우와 감독 인터뷰 영상까지 찾아보고 있다. 그야말로 현망진창(현실이 엉망진창).
남편은 내 휴대폰에 저장된 티모시 샬라메 사진을 보더니 이런 애를 좋아하는 건 범죄 아니냐고 말했다. 너무 어려 보인다고. 남편에게 말해줬다.
“응, 니가 티모시의 퇴폐미를 몰라서 그런 거야. 나랑 11살밖에 차이가 안 난다고^^”
나만 망할 수는 없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강력 추천하는 세 가지 이유.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하 <콜미>)은 사랑이 모든 것인 영화다. 어느 여름, 가족 별장에 찾아온 손님과 사랑에 빠져버린 열일곱 소년.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수도 그렇다고 숨길 수도 없는 엘리오는 올리버의 눈빛 하나 손짓 하나에 온 세계가 흔들린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첫 사랑의 감정이 혼란스럽고 올리버도 자신과 같은 마음일지 확신할 수 없어 괴롭다.
영화에는 공주와 사랑에 빠져 버린 어느 기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기사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공주. 어느 날 기사는 공주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말하는 게 나을까요? 죽는 게 나을까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게 죽는 것보다 두려운 마음. 이런 절절한 감정을 느껴본 게 언제더라. 스무 살의 내가 떠올랐다. 남편이 처음 내게 고백하던 순간도.
아이가 태어난 후 남편과 나는 연인에서 육아 동지가 되었다. 스킨십, 설렘? 그게 먹는 건가요? 어느새 우리 관계의 중심은 아이가 되어버렸다. <콜미>를 보며 영영 죽은 줄 알았던 연애 세포가 꿈틀거렸다. 특히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은 가슴이 저릿할 정도로 설레고 또 아팠다.
올리버는 엘리오에게 말한다.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 달라”(Call me by your name)”고. 어쩌면 오글거릴 수도 있는 이 대사가, 이 영화에서는 충분히 납득이 된다. 당신의 이름으로 나를 부르고, 나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르면서 둘의 경계는 사라진다. 그래, 그게 바로 사랑이다.
<콜미>의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는 이 영화를 ‘이상(Ideal)’에 대한 영화라고 말한다. 이상적인 여름을 그린 영화라고.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적인 대목을 꼽으라고 한다면 엘리오와 부모의 관계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명장면으로 꼽는 엘리오와 아버지의 대화 장면. 스물 넷 남자와 아름다운 우정, 그 이상을 경험한 열일곱 아들에게 아버지는 “네가 분명히 느꼈던 것을 느껴라”고 말한다.
“우린 빨리 치유되려고 자신을 너무 많이 망쳐. 그러다가 30살쯤 되면 파산하는 거지. 그러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줄 것이 점점 줄어든단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게 만들다니 그런 낭비가 어디 있니?”
아버지는 엘리오에게 말한다. “우리 몸과 마음은 단 한번만 주어진 것이고, 너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닳고 닳게 된다”고. 그 말을 들으며 3살인 아들을 떠올렸다. 아이는 아직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법을 모른다. 투명한 유리처럼 속마음이 있는 그대로 얼굴에 드러난다. 좋은 건 좋은 거고 싫은 건 싫은 거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잠시도 못 견딘다.
“엄마 좋아~ 아빠 좋아~ 다 좋아~”하며 웃는 아이를 보면 내게도 언젠가는 저런 때가 있었겠구나 싶다. 나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을 아이를 통해 기억한다. 서른 중반의 나는 이제 좋은 것, 싫은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건 어른스럽지 못한 거니까. 언젠가 아이도 나처럼 마음이 닳아버린 어른이 되겠지.
자신의 욕망과 감정에 최대한 충실하려 하는 17살 엘리오. 그 모습이 사랑스럽고 또 부러웠다. 동시에 순수한 영혼이 상처받을까 안타까웠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쿨하지 못한 일, 손해 보는 일이 되어버린 세상. 나는 상처받을까봐 마음을 숨기는 데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게 현명한 줄 알았다. 엘리오와 올리버, 두 사람의 눈부신 사랑을 보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손해 보지 않게 위해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엘리오의 아버지는 보호라는 이름으로 아들의 사랑을 막지 않는다. 오히려 남자와 여자라는 세상의 구분을 벗어나, 아들이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했으니 부럽다고 말한다. 네가 느낀 슬픔도 아픔도 기쁨도 분명히 느끼라고. 그 대사를 들으며 나까지 위로받았다.
나도 나중에 저런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영화의 촬영지는 이탈리아 남부도시 크레마.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실제로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올리버와 엘리오의 뜨거운 사랑은 이탈리아의 햇살과 기막히게 어울린다. ‘가득한 햇살로 그 여린 날들을 축복하다’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한줄평이 딱 들어맞는다.
나른한 여름, 언제든 옷을 벗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 수영하다 책 읽고 음악 듣고 악보 쓰고 낮잠 자고 올리버를 몰래 훔쳐보는 엘리오. 가족별장에서는 매일 만찬이 열린다.
자전거를 타고 그림 같은 마을을 달리는 두 사람. 크레마는 세상의 차가운 시선이 닿지 못할 것 같은 안전한 공간이다. 하지만 세상은 크레마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 슬픈 공간.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 영화 보고 크레마로 여행간 사람들도 제법 많다(나는 언제쯤...).
티모시 샬라메, 아미 해머 두 배우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비주얼이 정말 아름답다. 참고로 티모시 샬라메는 이 영화로 역대 최연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랐다(기승전 티모시).
이런 사람들에게 추천
1. 감정이 메말라 버린 것 같은 사람들에게
2.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부모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3. 아름다운 이탈리아 작은 마을이 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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