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책장] 그 엄마의 독서법 ② - 애엄마의 도서관 사용법
오후 4시가 되면 어김없이 집을 나선다.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시간. 새싹정류장에서 아이를 픽업하면 곧바로 우리가 향하는 곳은 동네 도서관.
올해 초 둘째 아이를 낳고 다시 육아휴직에 돌입했다. 그런데 둘째 육아휴직은 둘째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 첫째 아이도 함께 돌봐야 했던 것. 그러다 보니 첫째가 어린이집에서 4시에 하원한 후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의 시간이 점점 버거워졌다.
오늘은 뭐 하지?
매일같이 오후 3시가 되면 엄습하는 불안감. 둘째는 아기띠로 안고 첫째를 놀이터로, 문방구로, 마트로 돌리는 나날이 이어지며 점점 지쳐갔다.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소비로 버텨야 하는 일상이 계속되면서 조금 슬퍼지기까지 했다.
그날도 놀이터에서 놀다 다음 목적지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을 거다. 3년을 살았지만 1년은 신혼, 1년은 외국 살이, 1년은 복직으로 제대로 둘러보지 못했던 동네. 아이들과 거닐다 우연히 작은 도서관을 찾았고 발을 들였다. 그리고 그날부터 신세계가 열렸다.
에디터 인성이 오후 4시가 되면 도서관에 가는 이유 세 가지.
그렇게 첫 발을 내디딘 후 난 도서관 중독자가 됐다. 최근 이사를 했는데 동사무소 전입신고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지역 도서관에 방문해 회원가입을 한 것.
광역 단위로 거주 지역이 바뀌었는데 이제 막 신도시가 형성되는 곳이라 그런지 주변에 도서관이 굉장히 많다. 아이와 동네 작은 도서관, 시립 도서관 등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도서관은 부모가 4세 이상의 아이와 놀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요즘 도서관은 아이들 공간이 정말 잘 짜여 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진 낮은 책장에 빼곡히 꽂혀있는 매력적인 책들, 그리고 그 책들을 자유롭게 펼쳐놓고 볼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 공간이라 조금의 소란스러움은 허용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활발한 친구들은 도서관 이용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스스로 보고 싶은 책을 찾으러 이곳저곳 기웃거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고른 책을 넓은 공간에 눕거나 재밌는 모양의 좌석에 앉아서 읽을 수 있는데 이런 공간이라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질 것 같았다.
의외로 평일 하원 이후 시간에 어린이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아이 어린이집 친구들의 엄마들에게 '도서관에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물으면 흔쾌히 수락하면서 '왜 그 생각을 못 했지'라며 그제야 무릎을 탁 친다. 나만 해도 도서관은 주말에도 문을 여는데 가볼 생각을 못 했다.
도서관, 아이와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가본 사람은 없을 것 같을 정도로 아이들이 좋아한다. 내 아이도 그렇고 아이 친구들도 그렇고 한 번 들어가면 끝나기 전까진 나오기 어려울 정도다. 저녁 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 부모들은 난처할 수도 있다.
우리 아이는 4세라 아직 글을 읽지는 못하지만 빼곡히 꽂혀있는 다양한 책들 사이에서 공룡, 번개맨, 알록달록 도형 등 자신의 취향대로 책을 고르는 과정 자체를 아주 좋아한다. 자신이 골랐기 때문인지 이야기에 더 집중하기도 한다. 물론 집에도 전집과 낱권 책이 많지만 한창 새로운 걸 좋아하는 때라 도서관의 책들에 더 흥미를 가진다.
최근엔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지어내면서 혼자 책을 보기도 해서 매우 깜놀. 그래서 이 틈에 내 독서를 하기도 했다. 물론 나의 책도 도서관에서 빌린 책.
아이 때문에 동네 도서관을 찾긴 했지만 몇 번 다니다 보니 나를 위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 한 번은 도서관을 돌아다니고 싶어 하는 아이를 위해 조용히 할 것을 약속하고 여러 자료실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읽고 싶었던 책을 발견했다.
난 책을 빨리 읽는 편은 아니라 많이는 아니지만 읽고 싶은 책들을 틈틈이 꾸준히 읽고 있다. 대학 때 이후로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종이책이나 e북을 구입해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책은 처음엔 '내 책'이 아니라는 생각에 괜히 혼자 어색했는데 계속해서 빌려 읽다 보니 금방 익숙해졌다. 이젠 도서관 책장의 빼곡한 책들이 다 내 것 같아서 서고에 들어가면 마음이 마구 벅차오르기까지 한다. (웃음)
읽고 싶은 책을 찾기 위해 책장 앞에 서면 비슷한 주제의 책들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한 권 읽을 걸 2-3권 읽게 되는 점이 좋다. 온라인 서점의 관련 카테고리 책 추천 기능과도 비슷하다. 책을 느긋하게 읽는 습관이 스스로 조금 불만이었는데 대출 기간 안에 책을 읽어야 하니 속도가 빨라졌다. 역시 습관을 고치는 데는 강제력만 한 게 없나 보다.
여러 장점이 있지만 그중 내가 가장 크게 느끼는 매력은 함께 읽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다.
내가 읽고 싶은 신간은 대부분 도서관에 알아서 들어오지 않는다. 취향이 딱히 유별난 것도 아닌데. 그래서 언젠가부턴 이 도서들을 도서관에 구입 신청하기 시작했다. 나만 읽기 아까운 책들이었기 때문에 다 같이 보면 더 좋을 것 같았다. 내가 신청한 책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며칠 후 빌리러 가보니 이미 대여가 됐던 때도 있었다. 세상 뿌듯. 하하.
반대로 내가 읽고 싶었던 의외의 책이 도서관에 꽂혀있던 경우도 있었고, 별생각 없이 집었다가 놀라는 책도 있었다. 그것도 동네 작은 도서관에 말이다. 그중 하나는 독립출판 서적이었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구입한 것 같진 않았다. 아마도 누군가 신청해서 도서관에 놓였을 테다. '누군가 나와 같은 고민을 했구나, 그 사람도 이런 문장이 필요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대상도 없는 동질감에 가슴이 뭉클해질 때도 있었다.
그래서 꿈이 하나 더 생겼다. 시간이 허락하는 때가 온다면 지역 도서관 독서모임을 꾸리는 것.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모여 도서관을 어떤 책들로 더 알차게 채울 수 있을지 '작당모의' 하고픈 사심이 생겼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기 시작하면서 오랜 시간 안고 왔던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생활 습관을 얻기도 했다.
내 물건 중 집에서 가장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던 것은 책. 대학 때부터 읽은 책들을 한 번도 정리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신혼살림을 차리며 남편의 책들도 그대로 합친 바람에 똑같은 책을 2권씩 갖고 있기도 했다.
아이들이 생기니 온 집안은 항상 어질러져 있기 일쑤다. 자잘한 것들이 이곳저곳에서 발에 치인다. 아이들 가구와 제법 몸집이 큰 장난감들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집 안의 여유 공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때마침 우리 가족은 이사를 하게 됐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정리의 여신' 곤도 마리에의 말이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사를 하면서 참 많이 버렸다. 미니멀리즘 까진 아니어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알면서 살고 싶었다. 아이들 것도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내 물건도 상당수 정리했다. 대부분 책이었기 때문에 책 정리가 가장 핵심이었다.
더 이상 설레지 않는 책들, 얻었는데 읽지 않은 책들, 감명 깊게 읽었으나 다시 보진 않을 것 같은 책 등을 골라 중고서점에 팔았다. 그렇게 ½ 정도 처분해 키 큰 책장 두 개 중 한 개를 채울 정도만 남겨두었다. 그리고 '앞으론 이 책장 한 개를 넘기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이후 아이와 도서관을 찾을 때마다 책을 빌려보았다.
빌려 읽은 책 중 다시 읽고 싶은 책은 대출 연장을 해서 한 번 더 읽고 그래도 또 읽고 싶은 책, 소장하면서 틈틈이 문장을 빌리고 싶은 책들만 구입한다. 아직까지 다짐대로 책장 한 개를 넘기지 않고 있다.
참, 책값으로 탕진하던 돈이 절약되는 건 덤. 옷 하나를 사도 2박 3일을 꼬박 고민하는 내가 유일하게 덮어놓고 사는 게 바로 책이었는데 덕분에 용돈이 조금 남는다.ㅎㅎ
마더티브 홈페이지 mothertive.com
마더티브 페이스북 facebook.com/mothertive
마더티브 인스타그램 instagram.com/mother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