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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Aug 07. 2019

아이와 한 달 여행할 때 알면 좋을 4가지

4살 아이와 여행 메이트가 되는 방법

지난봄, 우리 세 식구는 한 달 여행을 다녀왔다. 수백 시간의 초과근무가 쌓인 남편에게는 긴 휴가가 생겼고, 마침 나도 퇴사와 창업을 거치며 많이 지쳐있던 때였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삶의 전환이 필요했다. 어린이집 최소 출석일수에 맞춰 여행 날짜를 잡았다. 발리에 가장 오래 머무는 일정이었고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도 갔다 왔다.


여행을 계획할 때만 해도 한 달이나 여행을 간다는 사실에만 들떠 있었다. 그런데 여행 날짜가 점점 다가올수록 너무나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이번 여행에는 상전님이 계셨다. 바로 평균 이상의 에너지와 활동성(feat. 진상력)을 가진 세 돌 아이.


이... 이런 느낌? 신발은 어디 갔니...


그때쯤 나는 진심으로 육아가 힘들었다. 남편의 야근과 주말근무가 몇 달간 누적됐고 아이는 엄마에게서 한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자기 곁에 계속 머물며 수시로 상호작용 해주기를 바랐다. 가끔씩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엄마 너무 힘들다고, 제발 혼자 놀라고 아이에게 애원하기도 했다. 아이가 그런 자비를 베풀 리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 한 달 여행이라니… 어린이집도 없이 아이와 24시간 내내 한 달을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여행 전날, 불안감이 극에 달한 나는 짐을 싸다 가출을 감행했다. 딱 2시간만 마지막으로(!) 혼자 있다 오겠다고.


여행은 물론 힘들었다. 내가 미쳤지 왜 애 데리고 한 달이나 여행을 왔을까 자책하고, 육아 스트레스 푼다는 명목으로 가열차게 마신 맥주 덕분에 옆구리는 두둑해졌다. 하지만 나의 육아력은 (잠시나마) 한 단계 상승했고, 우리 가족은 세계여행을 꿈꾸기도 했다. 잠시, 아주 잠시.


아이와 한 달 살기, 아이와 한 달 여행을 꿈꾸는 당신에게 조언하는 네 가지.  


1. 수영만이 살길이다


사누르 비치

여행지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수영이었다. ‘수시로 수영할 수 있는 곳인가.’

 

우리가 택한 여행지 중 한 곳인 발리 사누르는 숙소에 수영장이 있었고 걸어서 5분 거리에 해변이 있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수영장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사누르에 간 지 며칠 만에 아이는 처음으로 혼자 팔 튜브를 끼고 수영하는 데 성공했다. 남편과 나는 그저 옆에서 아이가 안전한지 지켜보기만 해도 됐다. 물론 계속 “엄마 아빠 일루 와~”하며 놀아달라고 하기는 했지만.


너의 첫 수영


물속에서는 부력 덕분에 물밖에서 보다 훨씬 적은 힘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 물밖에서 아이를 안고 걷는 것과 물속에서 아이를 안고 걸어가는 것을 생각해보라(애 몸무게 16kg…). 물리적인 힘이 적게 드니 아이 보는 게 훨씬 수월했다. 육아와 걷기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쓸 일 없던 비루한 몸뚱이를 가볍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수영시간은 남편과 나의 휴식시간이기도 했다. 한 사람이 아이를 보면 다른 한 사람은 번갈아 가면서 혼자 수영을 하거나 선베드에 누워 책을 읽고 잠을 잤다. 일 년에 책 한 권 읽는 것도 어렵던 남편은 이번 여행에서 무려 책 두 권을 읽었다는 후문(올해 읽을 책 다 읽었…). 남편과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함께 읽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수영을 끝내면 에너지 소모가 엄청났다. 아이는 낮잠과 밤잠을 푹 잤다. 수영하는 순간만큼은 아이도 남편도 나도 공평하게 행복할 수 있었다.


2. 동영상, 단 것... 마음을 내려놔라


<여행의 이유> 책 표지의 최후...


육아가 힘든 건 아이와 나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기 때문이다.


아이는 여행지에 가서도 아침 6시만 되면 귀신같이 일어났다. 체내 알람시계 같은 게 있는 걸까. 밤 8시 취침, 아침 6시 기상. 우리의 일상이었다. 책 읽기, 스티커 붙이기, 그림 그리기, 역할극… 아이와 하루 종일 놀아줄 수는 없었다. 에너지 소모가 큰 수영을 계속할 수도 없었다. 밖은 덥고 습했다. 하지만 아이는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끊임없이 놀아달라고 했다.


오후 시간이 특히 힘들었다. 아이는 유모차에서 실컷 낮잠 자고 에너지 충전해서 일어났는데 남편과 나는 유모차 끌고 다니느라 진이 다 빠진 상황. 점심에 맥주까지 마시고 나면 오후에 몸이 축축 처졌다(그래도 맥주를 포기할 수 없었다, 사랑해요 빈땅).


발리에서도 힘이 되어준 맥스터핀스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 구세주가 되어준 건 유튜브였다. 여행 전, 유튜브 오프라인 영상을 잔뜩 저장해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숙소에 있는 TV를 틀어줬고, 밥 먹을 때도 영상을 보여줬다. 한숨만 자고 싶을 때, 쉬고 싶을 때도.


한국에서보다 영상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을 때면 죄책감이 몰려왔다. 내가 이러려고 애 데리고 해외까지 왔나…


하지만 남편도 나도 쉬어야 했다. 여행은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냥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가 영상을 너무 오래 보면 지겨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동남아는 정말 더웠다. 중간중간 시원한 당 충전이 필요했다. 주스, 젤라토, 아이스크림… 아이는 당 섭취를 원 없이 했다. 아이가 영상을 보며 달다구리를 먹는 동안 우리는 잠시라도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대신 밤마다 양치를 열심히 해줬다.


3. ‘여기까지 왔는데’ 그런 생각 노노


여기 와서도 소방차


사누르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시간을 떠올려 보면 사누르 해변에 있을 때도 아니고 숙소 수영장에 있을 때도 아니었다. 키즈카페 ‘피카부’에 갔을 때다.


아이와 키즈카페에 온 엄마들을 보며 역시 엄마 노릇은 세계 어디나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유럽에서 온 것 같은 한 엄마는 우리가 있는 세 시간 내내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책을 읽었다. 정말 지쳐 보였고, 이렇게라도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았다.


노트북 들고 와서 일하는 엄마, 커피 마시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엄마, 각각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함께 놀고 수다 떠는 엄마… 세계 각국의 엄마들이 모인 발리 키즈카페의 풍경은 한국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번갈아 가면서 소파에 누워 쉬기도 하고 스마트폰을 하기도 했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읽었다. 키즈카페에는 놀거리가 많았고 무엇보다 시원했다. 아이는 정말 신나 했고 그 후에도 몇 번이나 “키즈카페 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아이와 여행을 다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욕심을 낼 때가 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생각. 하지만 욕심을 내면 무리하게 되고 아이도 부모도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럼 아이에게 계속 짜증을 내고 화를 내게 된다.


발리 식당이나 카페는 키즈 프렌들리인 곳이 많았다


하루는 사누르 인근으로 택시투어를 간 적이 있다. 아침 일찍 출발해 가루다 공원-울루와뚜 사원-순다라 비치클럽까지 가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교통체증 때문에 출발하자마자 길이 막혔고 날까지 더우니 아이는 많이 힘들어했다.


가루다 공원은 생각보다 많이 넓었다. 영화 <빠삐용> 배경이라는 울루와뚜 사원에서 원숭이까지 보고 오자 우리는 모두 지쳤다. 비치클럽까지 갈 기운이 없었다. 비치클럽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과감히 일정 하나를 포기했다.


그다음부터 남편과 나는 여행지에 대한 욕심도 내려놓았다. 발리 여행객 대부분이 인생 샷을 건지기 위해 찾는다는 렘푸양 사원도, 발리 스윙도. 모두 스킵. 최대한 무리하지 않는 심플한 여행 계획을 세웠다. 아이도 우리도 지치지 않도록.


4. 아이를 여행 메이트로 인정하라  


아이와 함께 본 석양


네 살 춘기를 맞은 아이는 자기 고집이 부쩍 늘었다. 하루 세끼 밥 먹는 것부터 전쟁이었다. 이전에는 식당에서 저지레 하는 게 걱정이었다면 이제는 식당에 들어가는 것부터 난관이다. 덥고 배고파 죽겠는데 아이는 식당에 안 들어가겠다고 떼를 썼다. 이래저래 설득하다 결국 나는 화를 내고 만다.


“너는 배 안 고파도 엄마 아빠는 배고프다고! 들어가서 밥 먹기만 해 봐! 가만 안 둬!”(유치뽕짝...)


아기띠에 대롱대롱 매달려 다니던 아이는 이제 당당한 여행의 일원이 됐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주장할 줄 알고 여행을 즐길 줄 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7군데의 숙소를 이용했는데 그때마다 아이는 새집이라며 신이 났다. 아이는 여행 체질이었다.


우붓에서 벌레와 파충류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는 나와는 달리 아이는 밤마다 꿀잠을 잤고, 모든 생명체에 포용적인 태도를 보였다. 우붓을 떠나면서는 도마뱀이 귀엽다며 나무로 된 도마뱀 조각 인형을 사기도 했다(한국에 가기도 전에 꼬리가 부서졌다는 슬픈 이야기…)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아이가 짐처럼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 달간 여행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와 나 그리고 남편 세 명이 제법 괜찮은 팀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우리 세 사람 사이에는 단단한 무언가가 쌓였다.


“엄마랑 아빠랑 날날이랑 같이 여행하는 거잖아.
우리 친구잖아. 그러니까 날날이가 엄마 아빠 도와줘야 해.”


나는 아이에게 자주 이렇게 말했다.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아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 목이 메었다.  



에디터 홍의 한 달 여행기가 더 보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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