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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Aug 14. 2019

두 아이와 제주 여행, 버려야 할 세 가지 욕심

2살, 5살 아이들과 여행하며 겪은 '뻘짓'에서 깨달은 것


둘째 아이가 안정적으로 걷기 시작하면서 우리 가족은 여행을 계획했다. 첫째 아이만 동행했던 지난봄의 베트남 여행을 나름 성공적으로 마친 후였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왔다) 떠남에 대한 갈증이 살아났고 아이 동반 여행에 대한 자신감도 만땅으로 차올랐다.


하지만 두 아이를 데리고 떠난 여행은 또 차원이 달랐다. 우리 부부는 여행 내내 쩔쩔맸다. 아이들은 여행지에서도 역시나 우리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한가득 기대를 안고 오른 여행길에서 마주한 육아는 더 어렵게 느껴졌다.


어렵게 마친 두 아이와의 제주도 여행. 4일을 여행하는 동안 하루, 하루 하나씩 버린 게 있다. 미리 버리고 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던 세 가지 욕심.


맛집 욕심


제주 여행을 끝내고 김포공항에 내리면서 깨달았다. 갈치를 못 먹었다는 것. 심지어 여행 계획표에 갈치 맛집을 두 곳이나 적어뒀는데. 실상 갈치는 고사하고 맛집 근처에 가기도 어려웠다.


전복 김밥을 아침 식사로 정했던 날, 김밥을 먹지 않는 첫째 아이는 이를 완강히 거부했다. 둘째 아이도 맛이 생소했는지 입에 넣자마자 다 뱉어버렸다. 결국 아이들은 즉석밥과 미역국으로 대충 때워야 했다.


오전 내내 제대로 먹지 못한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는데 여행지를 지나다 '부산 밀면' 체인점을 발견했다. 평소 냉면과 메밀국수에 환장하는 아이들이었다. 눈물을 삼키며 차를 세웠다. 아이들은 냉밀면을 각각 한 그릇씩 뚝딱 해치웠다. 제주 바다 앞에 두고 부산 밀면 먹고 있는 거 실화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다행히 맛은 있었다.


돌아보니 지난 베트남 여행에서도 첫째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리조트 조식 뷔페의 크루아상이었다. 아이는 쌀국수, 반미 등 현지 음식은 제쳐두고 매일 여유롭게 모닝 크루아상을 3-4개씩 즐겼다.


첫째 아이는 제주에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으로 초코 아이스크림을 꼽았다. ⓒ 에디터 인성


최근 김민식 MBC PD의 여행 에세이 책을 읽다 저자의 비슷한 경험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나만 겪는 일은 아니구나. 심지어 제주도의 부산 밀면, 베트남의 크루아상은 명함도 못 내밀 것 같았다.


"몽골은 양고기로 유명한데요. 아이들은 특유의 노린내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더군요. 할 수 없이 마트에 가서 한국 라면을 사다 끓여줬어요. 둘째 민서가 특히 좋아했어요. 집에서는 엄마가 금지한 라면을 아빠랑 여행 가서 원 없이 먹은 거죠. 게르에서 끓인 라면을 초원을 바라보며 셋이 나눠 먹었습니다." - 김민식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p214


아이들과 식당에서 우아하게 밥을 먹는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심지어 오랜 대기 시간, 사람들로 북적이는 홀, 쫓기듯 먹어야 하는 식사, 게다가 아이 입맛에 맞지 않는 메뉴라면…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누군가는 애가 잘 먹으면 맛집이라고 하더라. 여행까지 왔는데 밥이라도 편하게 먹는 걸로.


일정 욕심


제주 여행 중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낸 곳은 미로 공원과 함덕 해수욕장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더 많은 곳을 가야 했지만 이 두 곳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그러지 못했다. 아이들이 좋아해 떠나지 못했기 때문.


더도 덜도 말고 오전, 오후 각각 두 곳씩만. 어린아이 둘과 함께 하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일정을 무리하게 잡지 않았다. 적어도 혼자 여행하던 때와 비교해서는. 그렇지만 이것도 많았다.


처음으로 미로를 접한 첫째 아이는 그 매력에 푹 빠졌다. 재미를 북돋아 주기 위해 '대장'으로 불렀던 게 화근이었을까. 요리조리 출구를 찾아 헤매는 모험에 깊이 빠져들었다. 승부욕을 불태우며 출구를 찾기 전까진 나올 생각이 없었다. 작은 규모의 미로를 경험한 아이는 더 큰, 새로운 미로를 원했다. 그렇게 우린 예정에 없던 미로 공원만 이틀에 걸쳐 세 곳을 갔다.


제주에 미로공원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 에디터 인성


아이들이 해수욕을 하기엔 쌀쌀한 날씨 같았다. 그래서 해수욕장은 여행 마지막 날 오후에 잠시 들리기로 계획했다.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두려움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함덕 서우봉 해변은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해 아이들이 놓기 좋다) 그리고 예상 가능하듯 우린 이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해가 넘어갈 때까지 해변에 머물렀다.


나와 남편은 '이럴 거면 뭐 하러 4일 동안 힘들게 돌아다녔냐'며 '진즉 이곳에 와서 내내 있을 걸 그랬다'고 탄식했다. 아이들은 많은 일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단 한 곳일지라도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놀이를 하면 그만이었다. 지난 베트남 여행에서도 첫째 아이가 물놀이를 너무 좋아해 계획했던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물가에서 놀멍 쉬멍 했던 날이 있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더니, 그새 또 욕심을 부리다 헛수고를 한 꼴이 됐다.


"예전에는 여행을 가면 신기한 풍경이나 재미난 활동을 찾아다녔는데, 요즘은 아이들이 좋아할 것을 찾아다닙니다. 나이 들어 감이 떨어졌는지 여행 가서도 실수가 잦아요. 하지만 여행이란 원래 뻘짓하는 재미로 다니는 거죠." - 김민식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 p216


김민식 PD의 말을 위안 삼는다. 그래, 원래 여행은 '뻘짓하는 재미'지!


완벽 욕심


여행을 완벽하게 준비해 성공적으로 마치고 싶은 욕심. 어쩌다 한, 두 번 지친 삶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비싼 돈 주고 떠나는 여행인데 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 혈혈단신으로 훌쩍 떠나면 그만이었을 땐, 여행지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분 단위로 일정을 계획했다. 완벽한 여행을 꿈꿨다.


제버릇 남 못준다고 아이들과의 여행을 앞두고도 공부하고 계획했다. 이 모든 것이 무쓸모가 될 줄도 모르고. 2살, 5살 아이들에게 유명 관광지는 의미가 없었고, 여행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일도 드물었다.


난 제주에서 아이들과 예쁜 가족사진을 찍겠다고 삼각대, 흰 원피스, 고데기 같은 것들을 챙겨갔지만 캐리어에서 이것들을 꺼낼 일은 없었다. 심지어 가져간 것조차 잊었다. 신이 난 아이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녔고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둘째 아이는 기어코 뛰다 엎어져 입술이 터졌고 남편은 여행 중에 몸살이 났다. 모든 것이 어긋나 버리고 아이들만 쫓아다니게 된 것 같아 속이 상하기도 했다.


그나마 건진 가족사진(?). 아이들을 쫓아 다니느라 바쁘다. ⓒ 에디터 인성


요즘 가장 핫한 여행 에세이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 작가는 한 달 체류를 계획하고 중국 여행을 떠났지만 비자를 준비하지 못해 출국 당일 추방 당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말한다.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 p18-19


예쁜 가족사진은커녕 우리 네 가족이 제대로 찍은 사진 한 장 얻지 못했다. 계획했던 목적은 거의 이루지 못했지만 난 다음 여행에서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하는지 하나는 제대로 깨달았다. 첫째도 무욕, 둘째도 무욕, 셋째도 무욕!


이 세 가지 욕심을 다 버리면 무슨 여행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와의 여행은 참으로 이런 것을 어쩌랴. 나눠서 얘기했지만 강조하고 싶은 단 한 가지는 '욕심을 버리고 절대 무리하지 말자'는 것.


버리고 떠난다고 해서 아이들과의 여행이 텅 빈 여행이 될 것이라 생각하진 말자. 비운 곳에 새로운 것이 채워지는 건 당연한 이치. 전에 느껴보지 못한 여행의 이유를 만나게 될 것이다.


'뻘짓 대잔치'였던 우리 가족의 여행. '실패한 걸까', '역시 애들 데리고 여행해서 남는 건 개고생뿐인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을 때, 첫째 아이가 말했다.


엄마, 아빠! 또 여행 가자!


우리는 다시 여행을 준비한다. 이번엔 많이 버리고, 조금 더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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