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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것은 현재뿐

INTO THE WEST_1 | 유라시아 자동차 41,000km

by motif
아내와 함께 '2022년 유라시아 자동차 원정대'에 합류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26개국 41,000km를 자동차로 왕복하는 134일간의 일정입니다. 지구의 반지름이 6,400km이므로 적도 기준 40,192km(2x3.14x6,400)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입니다. 6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질 이 여정을 'INTO THE WEST | 유라시아 자동차 41,000km'라는 이름으로 기록합니다._by 이안수




아내가 이른 아침에 집을 떠나 우이령 입구까지 편도 3km 정도를 자전거로 이동하고 다시 3km의 우이령길을 걸은 다음 같은 순서를 되밟아 돌아오는 것이 매일의 루틴입니다.



그날은 이 아침운동에서 돌아와야 할 시간을 훨씬 넘겨서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떤 변수가 발생했는지 궁금해질 즘 아내가 들어왔습니다.


"궁금하지 않나요? 안 돌아와도..."


평소 집 밖에 있을 때 응급상황이 아니면 전화를 하지말라,는 자신의 당부를 잊었는지 아내는 전화조차 하지 않았음을 타박했습니다.


늦은 아침상을 앞에 두고 아내가 늦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우이령 초입에서 앞서가는 한 분을 뒤따르게 되었어요. 두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달았더라고요. 한참을 가다가 옆으로 다가가 어떤 분인지를 물었습니다. '저는 해를 볼 수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이른 아침에 운동을 한답니다'라는 대답이 내 궁금증을 더 키웠습니다. 그분과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걷다 보니 고개 너머 장흥의 교현리 우이령길입구까지 갔다 오게 된 거예요."



평소에는 우이령 정상에서 되돌아오던 것을 그분과 얘기를 계속하기 위해 편도 6.8km 전체를 왕복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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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만난 분은 아내보다 은퇴가 2년 빨랐던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외동딸은 정년퇴직을 앞두고 들뜬 마음인 부모를 위해 평소 두 분의 소원이었던 제주 1년살기 선물로 휴양 콘도미니엄을 예약해주었습니다.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그분의 누님은 제주 1년살이를 마치자마자 뉴욕에서 적어도 1년 이상은 함께 살고 가야한다며 부부를 위한 집을 준비해놓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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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이 가까워졌을 때 딸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암으로 판명된 지 1년 만에 딸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딸의 갑작스러운 변고는 가정 전체의 삶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분은 딸의 간병 중에 쓰러져 뇌졸중 선고를 받았습니다. 제주나 뉴욕으로 가는 대신 아내의 소원에 따라 딸의 뫼가 있는 양주로 이사했습니다. 부인은 일주일에 3번 딸의 산소를 방문하고 자신은 건강회복을 위해 매일 새벽 우이령길을 왕복한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교현우이령길 입구에서 그분과 헤어지기 전 물었습니다.


"해를 볼 수 없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지요?"

"딸을 먼저 보낸 아비가 어찌 태양을 올려다볼 낮이 있습니까. 하늘에 부끄럽고 딸에게 미안해서 해 뜨기 전 새벽에 우이령고개를 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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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얘기는 내게 여러 가지 의문을 낳았습니다.


딸을 앞세운 것이 어찌 아버지의 부끄러움인지, 이미 떠난 딸을 찾아 일주일의 반을 보내는 어머니의 여생은 어떤 의미일지, 사람에게 계획이라는 것은 어디까지 유효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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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의령길을 함께 걷게 된 분의 얘기는 며칠간 아내와 나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망설이기만 했던 결정을 도왔습니다.


"그래, 더 이상 미루지 맙시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뿐... 지금 송금해요."


아내에게 이체를 부탁했습니다. 이것은 저희 부부가 미래를 위해 함께 비축해두었던 통장 잔고의 대부분을 '그 일'을 위해 비우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은 아내와 내가 아시아의 동단 블라디보스토크 태평양 해안에서 유럽의 서단 포르투갈 호카 곶(Cabo da Roca) 대서양까지 유라시아 28개국 41,000km를 자동차로 왕복하는 133일간의 원정에 합류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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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END… We only regret the chances we didn’t take, the relationships we were afraid to have, and the decisions we waited too long to make. 결국… 우리는 잡지 못한 기회, 두려워했던 관계, 너무 오래 기다렸던 결정을 후회할 뿐이다. _by 루이스 캐롤 Lewis Car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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