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일기_87
숙소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후아레스 시장(Mercado Juarez)이 있다. 1912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니 111년이나 된 상설전통시장이다. 야채, 과일, 육류, 해산물을 비롯한 식자재와 멕시코의 가정식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있다. 옷가게와 꽃가게, 미용실도 있다. 정 많고 없는 게 없는 우리나라의 전통시장과 동일한 분위기이다. 나도 식사 준비를 위한 장을 보러 몇 번 가다 보니 여러 시장 상인들과도 안면을 트게 되고 총각이 운영하는 단골가게도 생겼다.
오늘은 남편도 함께 가게 되어 생과일주스 가게에서 선인장 열매(prickly pears) 주스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다른 가게 주인들과는 달리 주인아주머니께서는 영어에 능숙했다. 그 연유를 묻다 보니 그녀의 인생에 대해 듣게 되었다.
"저는 푸에블라에 태어나 18살에 미국 샌디에고로 가 가정부로 일하며 20년을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베라크루즈에서 온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세 딸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체류 자격에 문제가 생겨 멕시코로 돌아와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미국에서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곳에 돌아오니 더 좋았습니다. 내 가게를 갖게 되었고 차별을 느낄 필요도 없었고 이웃들도 모두 내 형제자매들로 느껴져서 돌아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2년 전 문제가 생겼습니다. 남편이 자신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으니 떠나야겠다고 했습니다. 나보다 훨씬 어린 35살의 여자와 바람이 난 것입니다. 미국에서 함께 고생하면서 세 아이를 낳았고 이곳에서 이제 그 고생의 보상을 받는 듯 행복한 때에 최고로 불행한 순간이 닥친 거예요. 최대한 이성을 발휘해서 생각해 보니 마음이 떠난 남자를 잡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와의 사연도 따지지 않고 아이들의 양육권을 내가 갖기로 하고 재산을 반으로 잘라주고 떠나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떠나고 나니 그때부터 분노가 점점 더 커지더라고요. 배반감에 잠을 이룰 수 없는 시간을 6개월을 보냈습니다. 어느 순간 내가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자의 식사를 차리거나 세탁을 할 필요도 없어졌고 이미 자기 몫을 해내는 착한 세 딸이 있으며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사업체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내 마음속에 그에 대한 증오로 가득 채우고 산 6개월을 뒤돌아보니 내가 그가 고통받게 한 것이 아니라 나를 고문하고 있었더라고요. 그날부터 나는 웃기 시작했고 가벼워졌습니다. 지금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55살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떠난 남편 덕분에 비로소 내 삶을 살게 되었어요.“
엄마의 얘기를 함께 들었을, 옆에서 숙제를 하고 있던 딸이 함께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현명한 복수는 상대를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사랑하는 것.
20231007
강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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