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79
오아시스 마을에서의 여드레. 이제 다시 짐을 꾸린다. 모래먼지가 내려앉은 옷들도 빨고 뽀송뽀송한 몸과 마음으로 떠나기 위해 오늘은 강행군을 내려놓았다.
로컬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내가 여행하는 이유의 팔할이다. 늘 새로운 곳을 향할 때 마다 그곳에서는 또 어떤 사람과 조우할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여덟 날 전 이 붉은 화산암 아래의 San Ignacio 모래먼지 날리는 간이 버스정류소(Autotransportes Águila)에 우리만 내려놓고 버스가 떠나자 막막했다. 이 짐을 매고 흙길을 걸어 숙소까지는 얼마나가야 할지 아득해서 잠시 버스가 돌아 사라진 1번 국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들, 어디를 가려는 거야?"
언제 우리 곁에 다가 왔는지 알지 못한 작은 트럭 한대에서 한 사나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주위를 돌아보았다.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분명 우리를 향한 말이었다.
"이 뒤편, 자전거 여행자의 집(La Casa del Ciclista)!"
그가 차에서 내려오면서 말했다.
"그럼, 내가 데려다주지. 짐은 트렁크에 싣고 두 사람은 여기 운전석 옆에 타! 좁다고 불평하면 안 돼!"
"정말? 이런 천사가... 그럼 아내는 당신 앞좌석에 앉고 나는 트렁크에 내 짐과 함께 탈께."
"알았어. 네가 좋을 대로 해!"
이렇게 우리는 첫 번째 천사와 만났다.
우리는 숙소의 가족들과 인사를 마치고 3km 정도 떨어진 읍내의 1728년에 설립된 Spanish Old Mission, 미션 산 이그나시오 카다카만(Misión San Ignacio Kadakaamán)에 들렸다가 인근의 슈퍼마켓(Mercado La Huerta)으로 갔다. 다시 몇 날을 살아갈 식품들을 샀다. 먼 거리를 걸어오기가 싶지 않을 것 같아 몇 가지를 장바구니에 담다 보니 무게가 제법 나갔다. 계산을 하고 장바구니 보관을 부탁했다. 포실한 표정의 할아버지가 '그럼, 문제없지."라고 말하고 장바구니를 자신이 있는 코너로 옮겨놓았다. 우리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사뿐사뿐 동네를 걸었다.
멀리서 말을 타고 오는 카우보이가 보였다. 넋을 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우리 앞에 걸음을 멈추었을 때 여느 말과는 달라 보였다. 귀는 어릴 적 할아버지의 수레를 끌던 당나귀의 그것이었다. 수상쩍어하는 내 표정을 읽은 그가 말했다.
"이 놈은 수나귀와 암말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노새에요."
"그럼 그 반대도 있을 수 있겠네요?"
"물론. 암탕나귀와 수말 사이에 난 놈은 버새라고 하죠. 하지만 노새가 더 힘이 세어 쓸모가 더 많죠."
채찍이나 총 대신 스마트폰을 든 카우보이는 말과 당나귀와 노새와 버새의 차이를 가르쳐 주고 떠났다.
식수 공급사무실에서 총총걸음으로 나오며 한 여성이 우리를 보고 반겨 인사했다. 동네 사람이 처음 본 이방인을 이처럼 반겨주는 것에 감읍하면서 우리부부도 그녀의 허그에 안기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허그를 푼 그녀가 말했다.
"저 모르겠어요?"
"오늘 당도한 이 동네 부인을 어떻게 알아요? 전 이곳이 난생 처음이에요."
"그럼, 알지요. 그렇지만 나는 알아야지요. 나는 당신이 3시간 전에 체크인 한 숙소의 안주인이에요요. 그때 볼 인사까지 했잖아욧!"
아뿔싸. 흰 블라우스 유니폼입으로 갈아입은 그녀를 이 식수공급 회사의 여직원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실수를 그녀의 미모를 과장하는 것으로 모면하려고 했다.
"아, 미안해요! 당신 집에서는 나무 그림자 아래라서 당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지금 이렇게 화장을 하고 흰 블라우스를 입고 있으니 천사가 강림한 것 같아요."
그녀는 구테여 천사 같다는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근무 출근 중이에요. 아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의 행정실에서 근무 중이거든요. 오늘은 오후 근무라 밤 9시 반에 퇴근입니다."
"알았어요. 천사! 집은 우리가 잘 지킬게요."
마을 도서관은 개인 집의 서재처럼 아담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벽에 게시된 모습으로도 공공도서관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는 스페인이 건설한 미션들(Spanish Old Missions)들 정리한 장엄한 책을 발견했다. 스페인의 영혼 구원을 위한 포교로 세워진, 실상은 식민지 침탈과 압제의 거점으로 기능할 수 밖에 없었던 영욕의 미션에 대한 이해 없이 Alta California와 Baja California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에 대한 버드아이뷰의 시각을 제공하는 책이었다.
이 작은 마을에도 ATM은 있었다. 마을 깊숙한 안쪽, 야자나무 잎으로 지붕을 얹은 초가집 은행이었다.
미션 앞 광장 끝 여행사 사무실에 들렸다. 적막했다. 지금은 시즌이 아니라 찾는 이도 없지만 중년 여성 한 분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아메리카 최초의 벽화 예술로 알려진 산 프란시스코 산맥의 원시 동굴벽화를 보러 갈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비시즌이라 어떻게 가이드를 수소문할지 막막했던 것이다. 비용이라도 알고 싶다고 하자 몇 장의 문서를 보여주었다. 이 산맥 속에는 11개의 캐니언이 있고 그 캐니언에 흩어진 수백 개의 동굴에 벽화가 있으며 그중에서 다시 수십 개를 추려놓은 것이었다. 그곳은 노새를 타고 2박 3일을 트레킹 해야 하는 곳부터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는 곳 까지 다양했다.
그렇게 동내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슈퍼마켓으로 가서 사 놓은 식재료들을 챙기고 보니 무게가 적지 않았다. 그것을 지고 십리를 걸어 숙소로 되돌아갈 생각을 하니 힘이 빠졌다. 계산대 할아버지께 택시를 부를 수 있는지를 물었다. 진열대 끝 창고쪽을 향해 큰 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한 청년이 오자 말했다. "이 분들, 집에까지 모셔다 드리고 오너라!" 이렇게 두 번째 천사를 만났다.
늦은 아침 식사를 위해 한 간이 식당을 방문했다가 주인부인에게 산 리노 마을의 성당에 대해 물었다. 내가 물을 때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서 되물어 대답을 해주었다. 도대체 그 모든 것의 답을 알고 있으며 여러번의 전화를 거절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제 시어머니, Sofia셔요."
"정말 놀랍습니다. 작은 성당의 사소한 사연까지 모두 알고 계신 것도 놀랍지만 며느리의 연거푸 다섯 번의 전화에도 귀찮다 여기지 않는 모습이 더 놀랍습니다. 고부 사이는 가깝고도 먼 사이인데 이렇게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지혜를 소피아에게 들어보고 싶습니다. 저를 만나줄 수 있을 지를 물어봐주세요."
그렇게 해서 다음날 우리는 세 번째 천사, Lidia의 시어머님을 만나고 또다시 의용소방대장인 소피아의 큰 아들, Antonio Berrelleza와 소방대원인 작은 아들, Juan M Berrelleza를 만났다. 네 번째 천사 Juan은 자신의 휴가를 모두 써가며 우리를 아내해주었다. 첫날은 회색고래의 번식지 산 이그나시오 석호(Laguna San Ignacio)까지 왕복 160km를, 둘째날은 산 프란시스코 산맥의 원시동굴벽화의 하나인 박쥐동굴변화(Rock Paintings of the Sierra de San Francisco)까지 180km를, 셋째날은 세처녀봉(Las Tres Vírgenes)의 화산과 구리광산(Unidad Minera El Boleo)까지 190km를 자신의 차로 운전해서 안내해 주었다. 다섯 번째 천사 Antonio는 우리가 당도할 라파스(La Paz)에 자신의 집이 있으니 그곳에 묵으라고 했다.
우리가 여행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무심한 선의를 발견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세상에는 이렇듯 무심한 선의가 하늘의 별처럼 많아서 다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우리 부부가 평생을 바쳐도 별의 지도를 모두 그릴 수 없듯이 이 선의의 지도를 완성할 수 없을 것이다.
후안은 지난밤에 당직으로 뜬 눈으로 밤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떠나는 것을 배웅하겠다며 버스 정유소로 나왔다. 당신의 잠을 희생하지 말라,는 우리의 강경한 사양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바닷가 마을이다.
***
나는 왜 도요새의 삶을 택했는가?
천국에서 안온하기보다 지옥에서 천국을 발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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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화 다섯 달 된 큰뒷부리도요가 알래스카에서 호주 태즈메이니아까지 1만 3560km를 중간 기착 없이 11일 1시간 만에 도달했다는 비행기록을 읽었다. 그들이 지구의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 위험한 비행에 목숨을 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각기 다른 대륙을 부유하는 것에 불편과 위험과 비용을 감수하는 것도 도요새가 이동하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여행은 그곳에 가야만 뇌가, 가슴이 새롭게 깨어나고 그것이 내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그곳의 가혹함과 숭고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음은 내가 유목민으로 사는 이유이다.
✱내가 얻은 현생에서 여러 생을 살기 위함이다(한 사람의 진솔한 영혼과 마주할 때마다 내게 또 하나의 삶이 더해진다).
✱천국에서 안온하기보다 지옥에서 천국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지식으로 가득한 머리가 아니라 그 지식을 실행하는 몸이 되기 위함이다.
✱익숙한 장소에서 습관화된 내가 아니라 낯선 장소에서 낯선 나를 만나기 위함이다.
✱규율과 관습과 범절의 틀 속에서도 그것에 갇히지 않는 자유를 누리기 위함이다.
✱부자여서 풍요로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빠듯함 속에서 넉넉한 마음을 갖기 위함이다.
✱생계를 위한 힘겨움 속에서도 창조적인 여백을 가진 표정을 만나기 위함이다.
✱유령처럼 모습이 없는 '행복'이라는 관념의 감옥에 갇히지 않기 위함이다.
✱모호한 현실을 견디는 구체적인 삶의 태도를 갖기 위함이다.
✱화려함과 뚜렷함보다 소박함과 희미함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함이다.
✱무심한 선의를 발견하기 위함이다.
✱구차한 형편에도 변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마음을 갖기 위함이다.
✱갑작스러운 상실에도 다급하지 않는 마음을 갖기 위함이다.
✱주어진 상황을 탓하기보다 그 상황을 발판으로 승화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함이다.
✱그 모든 것이 마음의 작용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_by 이안수(https://www.travelo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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